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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지키는 감사 (골2:1-8) [2018년 10월 21일, 성령강림 제22주]
2018-10-20 16:49:25
박신진 목사
조회수   14
설교일 2018-10-21
설교말씀 골2:1-8
설교제목 영혼을 지키는 감사

영혼을 지키는 감사

2:1-8

20181021[성령 제22]

 

가을 속회심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심방에 기도제목을 적어오도록 광고를 했습니다. 온 성도의 기도를 모아 하나님께 아뢰는 중보의 사역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다가 몇 속 지나가면서 간구의 기도와 함께 감사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예배 직전에 지난 한해에 대한 감사를 나누었습니다. “건강이 안 좋았는데 잘 고치는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고비를 넘겨 감사해요. 아이들 가정에 아기 돌볼 사람이 없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감사해요. 등등그냥 매일 만나는 생활에서 감사를 나누었을 뿐인데, 마음이 따뜻해지고 말씀에 대하여 마음이 열리며 우리 영혼이 하나님과 소통하게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옆에 있던 제 아내도 비슷한 소감을 얘기하더군요.

오티스라는 엘리베이터 회사가 있습니다. 1853년 세계 최초로 안전장치가 달린 엘리베이터를 생산한 미국 회사입니다. 엘리베이터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밧줄이 자주 끊어지는데,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어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오티스 엘리베이터지요. 그런데 시장의 반응이 별로였다고 해요. ‘속도가 너무 느려 걷는 것보다 못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엘리베이터 속도를 더 높일 수 없었기 때문에 회사는 큰 장벽에 부딪쳤습니다.

한 여성관리인이 이걸 잘 관찰하더니, 이용객들이 엘리베이터 속도에 불만을 가지기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 일 없이 기다리는 것을 못 견딘다고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거울을 엘리베이터에 붙여놓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는 동안 엘리베이터 속도를 느끼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속도는 같았지만 내부에 거울을 달아 이용자가 자기를 돌아보는 동안 도착하게 했더니, 불만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거울을 본다는 게 뭡니까? 잠깐 동안이라도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 요즘 애들 말로 자뻑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긍정적인 면, 잘 생긴 면, 좋은 면을 보면서 잠깐의 만족과 감사를 느끼는 사이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는 논리입니다.

얼마 전까지 제일 유행했던 단어 중 하나가 금수저, 흙수저였습니다. ‘금수저라는 말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영어속담에서 유래했습니다. 과거 유럽 귀족층은 은식기를 사용했고, 귀족집에 자녀가 태어나면 유모가 은수저로 젖을 먹이던 풍습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최상류층은 금수저, 상류층은 은수저, 보통 동수저에 최하위층은 흙수저까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는 계층을 타고난다는 불평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수백억을 받고 타고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거기에 달려있을까요? 아니지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행복하고, 흙수저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흙수저라고 한탄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생이 불행을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를 거울에 비쳐보며 이만하면 어디냐, 잘 생겼다 하면서 자신을 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인내하고 노력하면 기회가 찾아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누구 탓을 하지 말고,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면서 도전하고 전진하면 수많은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오늘 여러분 집 거울 앞에 서서 자기를 비쳐보며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을 멸하려는 대적의 군대가 삼척을 에워쌌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이 도시에는 도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적의 동조자들도 함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적이 들으면 견디지 못하고 뒷걸음치게 할 곡조의 노래를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적들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노래를 부를수록 여러분의 삶은 더욱 든든해지고 담대해질 것입니다. 이런 노래가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배우고 싶을 것입니다. 자리에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거리에서 이 노래를 읊조리지 않겠습니까!

우리 생활은 매일이 영적 전투입니다. 우리는 사탄과 그의 군대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요 택한 백성들을 위협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무너뜨리려 하는 거예요. 우리 안에는 대적에게 동조하는 옛 자아도 있습니다. 옛 자아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죄악을 통하여 사탄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이러한 대적을 무너뜨릴 수 있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찬송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영혼을 지켜 보호하는 데 감사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밝혀주고, 여러분 안에서 이 감사에 대한 생각을 북돋우도록 인도합니다.

 

이 서신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격려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1) 이어서 2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서로를 향한 사랑과 확실한 이해는 모두 그들로 위로를 받게 하려 함입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리고 4절을 보면, 성도를 격려하기 원했던 바울의 원래 의도가 나타납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바울의 관심은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사랑과 확실한 이해에 이르게 하고, 결국 속임수로부터 지켜내려는 것입니다.

누군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두 도시에 있는 성도들을 거짓으로 인도하려 했습니다. 그들의 영혼을 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우선 그들을 위해 자신이 애쓴 일을 언급함으로 마음과 마음이 연합하게 합니다. 이러한 사랑의 연합을 기초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 이르며, 이 사랑과 이해는 성도를 굳건한 믿음 위에 서게 합니다. 결국 거짓 가르침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게 하는 것이죠. 희생적인 고난이 사랑에, 사랑은 이해에 이르고, 이해는 믿음의 격려에, 그리고 결국 이러한 믿음의 격려는 그들을 거짓 가르침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5절을 보면 왜 바울이 성도들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속지 말기를 원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바울은 성도의 견고한 믿음과 질서를 볼 때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교회가 다다른 굳건한 믿음은 그에게 큰 기쁨과 영광이 된 것입니다.

6-8절은 기본적으로 1-4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8절과 4절은 내용이 서로 상응합니다. 모두가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주의하라는 경고이지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4절은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두 구절 모두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철학, 혹은 속이는 말들을 주의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6-7절은 2-3절에 상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네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를 배워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그들은 주를 받아들였습니다. 셋째, 그들은 주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았습니다. 넷째, 주 안에서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또한 감사로 넘치는 삶에 이르게 합니다.

2절과 3절을 보면,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든든한 마음의 위로를 준다고 합니다. 한편 5절과 7절에 언급된 그리스도에 뿌리박고 세움을 입을 때 넘쳐나는 감사 또한 우리를 거짓으로부터 보호합니다. 2절에 나오는 위로7절에 나오는 감사’, 이 두 가지가 우리 영혼을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이 위로와 감사는 어떤 관계일까요? 미국 베들레헴교회 존 파이퍼 목사는 이 부분에서 감사는 위로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위로를 받으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을 수 있어요.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서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갖게 되었는데, 어떤 좋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위로는 2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과 같은 위로가 아닙니다. 여기서 성도가 받는 격려와 위로는 분명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완성되는 거룩한 위로겸손한 위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로 우리 심령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이 감사로 충만하지 못할 때 사탄의 먹잇감이 됩니다.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 이 감사의 노래가 불리지 못할 때 성 밖의 대적은 우리 영혼을 도적질하기 위해 속이고, 우리 안에 있는 적의 동조자들 또한 날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조용히 서서 거울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우리 자신의 영혼이 안전하기를 원한다면 감사로 여러분의 심령을 채우셔야 합니다! 감사는 우리 영혼을 지키는 방패입니다!

 

감사는 우리 믿음의 꽃입니다. 저는 이번 달과 다음 달에 가을 단풍과 열매를 보면서 감사에 대하여 설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거의 참회의 심정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에게 감사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아름다운 가을에 살아있으면서 감사할 줄도 모른단 말입니까! 하늘은 가없이 높고, 하루도 쉬지 않고 광합성으로 나무를 살리고 대지를 비옥하게 하던 이파리들이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마지막 힘을 모아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 온 산을 수놓습니다. 생명의 신비와 영원한 질서 앞에서 우리는 감사하며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21을 보면 만물 속에 깃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확인하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 구절을 보면,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어두워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감사가 메마르면 자신을 사탄의 어두움에 내어주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영혼의 등불을 지키는 파수꾼과 같습니다! 파수꾼이 실패하면 등불이 꺼집니다. 감사로 자신의 영혼을 보호하십시오!

감사와 우리 영혼에 관하여 성경이 말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습니다. 우선, 감사함으로 기도에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골로새 42절을 보면 깨어 있음과 감사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위로와 격려로 새 힘을 얻을 때, 그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감사가 살아있고 충만할 때 우리 영혼은 깨어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깨어있기 때문에 절대 죄악과 사탄에게 당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둘째로,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기도생활이나 영적 전투에서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미덕입니다. 에베소서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5:4) 어찌하면 우리가 자신을 어리석고 누추한 말에서 지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비방과 원망, 분노와 냉소로부터 우리 입술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술을 감사로 가득 채우라는 것입니다. 몇몇 사람이 모이거든 감사의 말을 먼저 하십시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은 대개의 경우 최악의 상황에까지 내려가지 않습니다. 감사를 통해 우리 모임은 죄악에서 보호받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결코 다른 이들을 해치는 데 마귀에게 동조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감사는 겸손한 마음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나는 그렇게 믿음이 좋고 고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면서 살 수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감사만 하며 사는가, 그것은 위선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존재들이거나 깊은 신앙의 경험을 쌓은 경건한 사람들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똑똑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나 신학생들, 목회자들은 항상 감사합니까?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겸손한 사람들이 감사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겸손을 가지고 자기를 낮추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 가운데 감사의 말이 혀가 풀리듯 풀려날 것입니다.

아직도 스스로 입술에 감사의 말이 담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오늘 이후에 친구를 만난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해보세요! “너 때문에 하나님께 정말 감사해!” 곧 분위기는 달라지고 둘 사이가 발전할 것입니다. 어떤 고상한 수준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마음 하나면 됩니다. 감사가 영혼의 파수꾼입니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안에 낮추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풍성함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세요. 마음을 은혜로 채우고, 입술을 감사로 채워, 심령을 든든하게 보전하기를 바랍니다.

 

신사가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이발소에 가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발사가 말이 많았습니다. 신변잡기로부터 시작하여 정치, 경제 이야기 등 계속해서 떠들었습니다. 신사는 듣기 싫어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발사가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세상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잘못됐지요, 선생님?” 그러자 신사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시는 것을 제가 별로 정신 차려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발사가 벌컥 화를 냈습니다. “아니, 말을 듣지 않으려면 왜 여기에 앉아 있습니까?” 이 사람은 왜 여기에 앉아있습니까? 불평을 듣고 맞장구치려고요? 아니지요, 그는 이발하기 위해 앉아있는 겁니다. 장보다가 불평하고, 심방하러 가서도 신세타령 하고, 일하다가도 원망하고, 그러면 우리 영혼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매일의 생활에서 저는 경험합니다. 불평하면 사탄이 확 다가옵니다. 원망하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마귀는 불평과 원망의 영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며 찬송하면 어둠이 사라집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요즈음 생활에서 찬양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낍니다. 기타를 치며,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며 가정에서 찬양을 많이 했고, 두 주간에 하루씩 목사합창단에서 찬양했었는데, 귀찮아서 안하다보니 찬양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교회에서 찬양하지 않으면 찬양이 사라질 판입니다. 생활에서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찬양하면 마음에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아집니다. 감사하며 찬송할 때 마귀는 떠나가고 성령이 다가옵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여러분, 감사할 때 우리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 유혹 많고 힘든 세상에서 성도들의 믿음이 너무 연약하고 쉽게 넘어지는 것을 매 주간 보고 있습니다. 참 염려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로 감사하세요. 또 형제와 이웃에게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랑하세요! 감사하는 부부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형제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야 맙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 가을에 감사가 여러분의 영혼을 지켜 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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