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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자들의 감사 (시107:1-9) [2018년 11월 18일, 추수감사절]
2018-11-17 10:22:19
박신진 목사
조회수   133
설교일 2018-11-18
설교말씀 시107:1-9
설교제목 구원받은 자들의 감사

구원받은 자들의 감사

107:1-9

18. 11. 18. [추수감사]

 

2018년 가을,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살 만 하십니까?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의 양면을 보고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보람과 낙심을 함께 경험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또 한 번의 감사절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감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함께 모이면 주로 불평을 하고 어떤 요구 조건을 내세웁니다. 얼마 전에도 전국 노조가 모여 피켓과 깃발을 들고 노동조건을 개정하라고 요구하였고, 지난 주간에는 의사들이 모여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농민들도 농산물 가격을 보장하라고 시위합니다. 또 여성들이 모여 여성들의 권익을 보장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요구가 일리가 있고, 사회가 발전하려면 때로 모여서 함께 불편사항을 알리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함을 압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감사하고 기뻐했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하였습니다. 현대로 올수록 똑똑해진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감사하고 기뻐하는 일은 사라지고 모이기만 하면 자기 가족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불평하고 요구조건을 내거는 살벌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함께 모이기만 하면 모두가 더 가져야겠다 더 받아야겠다는 사람뿐이지, 이만하면 되었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살기 좋아지고 편해지고 넉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점점 빈약해지고, 금방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힘들다는 불평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우리에게 감사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감사할 수 있다고, 감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편에 있는 여러 개의 감사시편 가운데 우리는 시편의 5권을 시작하는 첫 시편인 107편에서 도입 부분과 네 개의 주제 부분 가운데 첫 번째 부분을 읽었습니다.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은 우리에게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자고 청하는 말씀입니다.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여서 함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7절까지는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는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지를 그려주고, 8-9절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권유합니다.

두 주 전부터 감사절 시편으로 이 구절을 암송하도록 청했는데요, 여러분 암송하실 수 있겠습니까? 다시 시편 오늘의 말씀을 암송하거나 낭독해봅시다. 가능하면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낭독]

사실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 그리 부요하지 못했습니다. 정치적으로 그리 안정되지 못했으며, 주변 강대국인 바벨론이나 이집트에 비하여 대단히 내세울 만한 문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요. 도저히 그들은 수많은 역사를 이어가며 살아남을 만한 조건을 가진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끈질기게 살아있게 했으며,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세계 역사에 영향력 있는 민족이 되게 했을까요? 그것이 오늘의 시편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들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동영상: 감사의 프레임으로 인생을 보자.]

 

1. 있음, 살아있음을 감사하자.

지금 여러분의 처지에서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좋은 일도 있었고 어렵고 힘든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신앙적 모범을 따라 우리도 과거의 모든 일을 바라보면서 살아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쓰라린 일도 생각해보면 감사합니다. 실패도 감사하고 가난도 감사하지요. 과거는 잃어버렸을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으며 이 모든 일을 통하여 지금 우리를 완성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니 하나님께 아무 내놓을 것이 없어 빈 바구니밖에 없지만, 지금 존재하고 있으니, 살아있으니 감사합시다.

이 시편은 예배제도가 완성된 시점에 드려진 것으로 보아 다윗 시대 이후의 노래로 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과거는 한마디로 고난에 찬 세월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와 광야의 유랑시절을 거쳐, 겨우 가나안에 정착해서도 원주민들과 계속 싸워야 했고, 사사시대와 왕조시대까지 사실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삶에도 적고 큰 전쟁을 치러야 했고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 도망과 유랑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발견하고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넉넉하고 넘쳐날 때의 감사가 아니라, 눈물과 고난의 땀이 배어있는 감사입니다. 편안하고 형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의 한 가운데를 지났지만 그 고통의 바다를 긍정적으로 감싸 안고 품는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수 있을 때 그들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조상들이 감사할 수 있었을 때 그들은 위대한 아메리카의 새 역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씨가 노년에 이르러 주님께로 돌아와 진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에게는 영원을 향한 소망이 있다는 인문학적인 성찰에서부터 온 것도 있지만, 사랑하는 딸이 불치의 병에 걸려 죽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깨달음도 크게 자리하였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깨달음은 인간에게 현재를 감사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습니다. 내게는 지금 현재가 있습니다. 이것을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 구원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리자!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2-3)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 찬송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대적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각 지방에서 흩어진 이들을 모으셨습니다. 구원하여 주의 백성 삼으신 은혜가 어찌 감사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우리 인생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감사하고 있습니다. 존재의 근원이시오 우리 삶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농사를 지어서 풍년제를 지낸다면 기후와 절기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생각하며 감사한다면, 가정의 인연을 맺게 하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셨습니다.

만약 자녀들이 어버이날이나 부모님 생일에 부모에게 감사드리지는 않고, 자기들에게 작은 호의를 베푼 이웃이나 다른 사람에게만 감사를 드린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가 베푼 사랑이 어찌 다른 사람이 베푼 사랑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 특별히 죄와 저주와 죽음에서 구원해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뜨겁고 풍성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런 감사를 주께 드릴 때 우리 영혼이 잘될 것이며 삶에 평안과 복이 임하게 됩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6-7)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대단히 중요한 절기입니다. 우리가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정식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이 어려움과 질병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주님이 시련과 역경과 실패와 허무에서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8-9) 그래요!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드립시다! 때 우리 삶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우리 영혼이 삶을 긍정적으로 품게 되며,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됩니다. 주님께 깊고 풍성한 감사를 드릴 때 우리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주님께 감사드릴 때 우리 산업을 주께서 복 주시며, 가정에 함께 하시어 자녀들을 책임져 주십니다.

 

3. 거주할 성읍이 있게 하셨음을 감사드리자.

매일이 기적이요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생활 속에서 돌보십니다. 가려움을 긁을 수 있는 것이 큰 은혜라고 하는 장애인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 시시콜콜한 편리와 구색이 갖추어져 있음에 대해 감사합시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엘르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전신마비가 온 뒤에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게 감사할 일입니다! 몸을 의지하고 살 집, 함께 할 가족이 있는 것이 크게 감사할 일입니다.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일곱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지난 주 어느 날 새벽에 화재가 났는데, 피해자 일곱 명이 주로 일용직 노동자나 기초생활 수급자들이었습니다. 화재가 나서 자다가 연기를 마셔 위급해졌는데, 병원에 가서 소생술을 했으나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희생자가 모두 창이 없는 방에 있는 사람이었답니다. 신주거난민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신주거난민은 2016년 말 한국도시연구소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으며 주거 환경이 열악한 쪽방, 고시원 등에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번 화재로 거주할 집이 없거나 열악한 사람들이 사회적 관심분야에 올랐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고시원 거주자 중 70%2-30대입니다. 월평균 소득이 백만 원대 초반입니다. 더 어려워지면 고시원에서 여관방으로 옮겨간다고 합니다. 고시원 거주자는 2평에서 4평 미만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 면적인 4평에 못 미치는 고시원 거주자가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서울 고시원의 월세는 30-50만원인데, 방 내부 시설 중 창문이 없는 곳은 거의 반이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7절과 9절에 두 번 나오는 거주할 성읍은 거창한 성이나 도시가 아닙니다. 그 당시에 보호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면 어디나 성읍이라고 했습니다. 그저 사람 사는 지역, 동네를 가리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노숙자가 되지 않고 고시원, 원룸이라도 있으면 감사드렸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보다 더 어렵게 살면서도 수시로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민족이었어요. 그들은 절기로 모여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성회로 모여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수천 년 세계로 흩어져 있으면서도 강한 민족이 될 수 있는 저력입니다!

우리 선조들도 단오절, 추석명절, 설이나 그밖에 절기의 축제를 통해 감사를 드러내고 행하였습니다. 조상들은 콩 한쪽을 나눠 먹으면서도 먼저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풍년이 들면 물론이지만 흉년이 들었을 때에도 풍년제를 꼭 드려 감사와 기쁨을 표하고 더 열심히 농사지을 것을 다짐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정 주셨음을 감사합시다. 거할 곳에 사람들이 모여 어울려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시다.

감사는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감사함으로 사람은 삶의 진정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모든 것이 넉넉하고 넘쳐나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은 가난하고 불행합니다. 아무리 힘들다 해도 시각을 바꾸어보면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넉넉하게 편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감사를 찾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동안 우리 마음에 감사가 차고 넘치도록 하고,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활 속에 감사가 충만하도록 합시다! 우리 자녀들에게 넉넉한 재산을 물려주기 전에 먼저 함께 감사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물려주도록 하십시오.

 

가을이 깊었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오면 또 한해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과거로 묻혀버릴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깊은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불평하며 원망하며 남탓하며 살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의 감사를 따라, 우리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구원하여 주셨음을 감사하고, 살 터전과 가정 주셨음을 감사합시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세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나아갈 때 우리 삶에 위대한 가능성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 인생을 축복하십니다. 과거에도 도우신 하나님께서 이제와 영원히 우리 생명과 가정과 산업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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