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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의 하나님 (스바냐3:14-20) [2018년 12월 16일, 대림절 셋째주일]
2018-12-15 14:17:54
박신진 목사
조회수   97
설교일 2018-12-16
설교말씀 스바냐3:14-20
설교제목 임마누엘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스바냐3:14-20

20181216[대림절 셋째주일]

 

연말 분위기로 들뜨거나 성탄에 놀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이때 마음을 주님께로 모아 기다림의 신앙을 바로 갖는 것이 큰 유익이 됩니다. 성탄의 계절에 성탄송과 성탄불빛에 휩싸여 어어...” 하다가 보내지 말고, 여러분 마음과 생활에 주님이 찾아오시는 진짜 성탄절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임마누엘의 성탄절이 될 텐데, 그때 우리 삶은 새로워지고 평안하며 거룩함과 존귀,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임마누엘의 의미를 좀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사형언도가 있고 사형집행이 있습니다. 이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죠. 언도는 사형을 결정하여 판정을 알리는 것이고, 집행은 그 사형을 실행하여 목숨을 뺏는 것입니다. 안된 말이지만 인간은 모두 사형 언도를 받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왜 그러냐 하시겠지요? 성경은 그것을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모두 죽을 존재인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사형집행이 죽는 날, 혹은 세상이 끝나는 날 일어나는 겁니다. 사실 어두움과 죄악에 포로잡혀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사형집행이 된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죽기 전에 이미 영이 죽은 것이죠.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기 위하여 죄지은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죄와 입술의 죄, 행위의 죄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죄는 온 세상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살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아이가 큰 잘못을 해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되었을 때, 잘못의 결과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려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지요. 이와 같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를 살려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죄지은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기까지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거의 포기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정말 그럴 수 없는데, 이스라엘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입장과 원칙을 거의 포기할 듯이 용서하시며 사랑하신다는 것이지요. 엄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얼마나 이스라엘에게 융통성 있게 대하시는지, 사랑으로 품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공의가 신약시대를 열었습니다.

사형언도 받은 인생에게 사형집행을 면케 하시려고 하나님은 드디어 특별조치를 취하시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입니다.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 말도 안 되는 원칙파괴를 하여 인간을 살려주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거룩한 비리입니다. 이 사랑이 바로 성탄, 임마누엘입니다.

 

스바냐라는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는 요시아왕 시대 활동하던 예언자입니다. 요시아왕은 어릴 때에 왕으로 부임하여 처음에는 나라를 잘 못 다스렸습니다. 선왕들의 잘못을 답습한 것입니다. 그러나 직전 왕 므낫세 시대에 숨겨놓았던 신명기 역사서 말씀 두루마리를 헌금궤 안에서 발견하고는 요시아가 바뀝니다. 정말 말씀으로 변화된 왕인 것이죠. 그때부터 요시아는 그 말씀대로 나라를 치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요시아 왕의 회개와 종교개혁운동의 배경에는 스바냐 선지자의 활동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서의 주제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날은 죄인과 악인들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남은 자들, 믿음을 바로 지킨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14절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시고, 형별을 제거하였고 화를 당하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17절을 보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고 기뻐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니 그분 때문에 우리도 기뻐하며 행복합니다.

한마디로 심판을 앞에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바로 하나님이 너희 중에, 혹은 너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 구원을 베푸실 자가 너희 가운데 계심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앞에 두고도 그 사랑과 돌보심에 감사하여 기뻐합니다. 본문은 스바냐가 선포한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그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입니다(17).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신약시대 천사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예언한 말씀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하나님이 함께 계시어서 우상을 숭배하고 죄와 악을 일삼던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은 스바냐 시대 남러시아를 넘어 쳐들어온 흉악한 스키타이족이거나 새롭게 북쪽에서 일어나 세력을 확장하던 바벨론의 세력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흉흉한 징조와 소문 가운데 하나님이 임하시어 심판하실 것이지만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1.그러므로 우리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의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스코트(W. D. Scott) 박사는 실업계의 성공과 실패는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이끌어가십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책임져주지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주님만을 믿고 의지합니다. 어디로 이끄시든지 주님만 믿겠습니다.’ 하고 염려 없이 살아가십시오. 이런 긍정적인 마음이 우리 삶을 평안하게 하고, 우리 믿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출애굽 시대에 광야에서 12명의 이스라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은 백성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곤란에 이르게 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나안을 점령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었습니다. 왜 부정적인 생각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 판단이나 생각을 하나님의 계획과 뜻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여 현실이 됩니다. 영어로 impossible(불가능한)이란 단어가 있는데, 거기에 긍정적인 나, 대문자 내가 있으면, I’m possible(나는 가능하다)가 됩니다. 여러분, 긍정적인 생각으로 안 된다가 아니라 된다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부정적인 생각의 지배를 받으면 혼자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고 가슴이 뛰고 마음이 괴롭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마음을 다스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평안합니다.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잖아!’ 이렇게 스스로를 다스리며 기도하면 파도치던 마음이 잔잔해지고 새 힘이 솟는 겁니다. 지난해와 지지난 해, 두 해는 우리 삼척이 참 힘들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경기가 바닥을 쳤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두시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시잖아요! 생각하면 감사할 것뿐입니다. 내년부터 삼척과 동해의 경기는 분명히 되살아날 것입니다. 발전소, 국방과학기술연구소 등의 건축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철도 건설이 시작되고 서울 경강전철이 삼척입구까지 연결되면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죠. 우리 삶의 모든 분위기도 점점 좋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교회도 수년 내에 위대한 부흥의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2.우리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생각에서 말이 나오니 믿음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씨뿌리는 사람들은 늘 행복한 말, 되는 말을 합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라는 말을 했다는군요. 사람이 말을 하지만, 자기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그 사람의 생활과 인격, 존재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을 먹고 그 말에서 자며 그 말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말을 지혜롭게 긍정적으로 하십시오.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우리는 지혜의 책인 잠언의 말씀을 읽는데, 엊그제 읽은 잠언 10장 말씀에만 봐도 말에 대하여 가르치는 많은 구절이 있습니다. 6, ‘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잘 받는데 입으로 어리석게 반발하는 사람은 망한다는 거죠. 11,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입조심하지 않으면 멸망에 가깝다는 거예요. 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입술을 제어하면 복이 있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어요. 20,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

말을 부정적으로 함부로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지혜롭게 하십시오.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1820절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잠언의 말씀은 이것이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여러분, 제발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말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풍성히 누리기 바랍니다.

 

3.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행동을 긍정적으로 합니다. 언제나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무엇인가 새로움을 찾습니다. 삶은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현재입니다. 항상 우리는 현재에 살지만, 과거가 밀어주지 않으면 현재란 없는 것이죠. 그런데 과거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늘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면 창조적이고 위대한 미래를 향해 나갈 힘을 내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라는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였습니다.

어느 한 소년이 큰 바위를 옮기려고 여러 방법을 쓰면서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마침 옆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야! 너의 모든 힘을 다 동원하여 보아라.” 아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다시 시도하였어요. 그래도 안 됩니다. 돌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물었습니다. “네 힘을 다 사용하였니?” “, 더 이상 힘이 없어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조용히 말을 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너에게 주어진 힘을 다 사용하지 않았단다. 넌 아직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잖아?”

사람이 일생을 사는 데에 혼자 힘만으로는 절대 부족합니다. 새가 공중을 날아가는 것도 자기 날개 힘으로 날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착각이죠. 공기가 있기 때문에 기류를 타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이 소년도 아버지의 힘을 빌려야 했어요. “아버지 도와주세요, 아버지와 함께 할래요.” 아마 그랬더라면 소년은 큰 바위를 옮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년에게는 아버지의 힘도 빌릴 수 있는 자기의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저는 설교에서 우리 가족 얘기를 가능한 한 많이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잘못 말하면 자랑 같고 잘못 말하면 스스로 흉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말씀에 도움이 된다면 한 번 얘기해보려 합니다. 곧 아우를 보게 된 우리 외손자가 두 돌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모든 아기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 할아버지 눈에는 하는 행동과 태도가 얼마나 우습고 귀여운지 매일 그놈 때문에 웃곤 합니다.

한번은 제 엄마가 짧은 동영상을 하나 보냈는데 창가에서 무얼 만지다가 엉엉 울어대는 겁니다. 손을 막 휘저으면서 웁니다. 장난감 차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고 올려놓은 것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장난감이 보기 좋게 잘 쌓여있어야 할 텐데 막 엉클어져 있으니까 속이 상한지 막 울어댑니다. 그러자 엄마가 태오, 천천히! 울지 말고 해봐, 그러면 돼~” 하고 달래며 격려합니다. 그러자 정말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더니 차분하게 차를 제자리로 올려놓는 겁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을 보기 좋게 정리하였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칭찬을 하고 아이는 기뻐서 폴짝폴짝 뛰어와 엄마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알고 보면 믿음의 삶이란 단순한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십니까? 그런데 왜 걱정하십니까? 왜 근심하십니까? 그 정도 일이 잘못되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왜 그리 울상이십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시며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내 아들아, 내 딸아, 왜 근심하고 걱정하느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손을 내밀어 시작해봐라!” 하십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보세요. 긍정적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십시오! 이제 해보십시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늙었다고요, 병들었다고요, 화났다고요? 그래도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까?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바나 320, 마지막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서 구원의 일을 행하심으로,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흉악의 결박에서 풀으시며 영원한 형벌에서 사면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형벌에서 사하심을 얻습니다. 그러나 독감예방주사가 무료라고 독감에 안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보건소나 병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아야 효력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이치로 구원받으려면 교회에 꼭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 이름만 걸어놓으면 절대 안 됩니다. 예방접종을 받아야 독감에서 자유함을 얻듯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구원한다는 것을 시인하는 지적 동의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회개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믿음으로 행해야 구원받은 것이고 헌신할 때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미국 갈 때 비행기 타지 말고 차타고 가세요 합니다. 그러나 차 타고는 못 갑니다. 그건 미국을 모르고 하는 소리지요. 인간이 잘 산다고 나름 나아가는 길이 많습니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길은 오직 예수로만 가능합니다. 예수께서 몸을 입고 임마누엘의 주님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기독교는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타협이 없다고 비난합니다.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 임마누엘 예수의 능력이 사면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 때문에 염려없이 할 수 있다!”고 외치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로 사면을 받았으며 저주에서 벗어났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긍정적인 말을 하고, 긍정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이루실 위대한 일을 통하여 명성과 칭찬을 얻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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