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19-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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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누가5:1-11 |
설교제목 | 인생의 소명 |
인생의 소명
누가5:1-11
2019년 2월 10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소명이 있는 삶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태어났습니까? 인생을 다 미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인생의 소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이것을 위해 산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기 전에 불러야 할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인생을 마친다면, 흠이 없이 잘 살았다 해도 후회 없이 살았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은 새봄이 오기 전에 우리 생의 소명에 대해 성경 말씀에 비추어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서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이들의 죄책과 허무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에 속한 육신의 저주에서 벗어나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가치 있는 삶, 하늘에 잇닿은 인격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거듭났다고 합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영에서 난 것은 영’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음으로 하늘로부터 난 것이지요.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왜 사느냐에 대한 대답을 찾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할 길을 찾게 됩니다. 말하자면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따라 보람 있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을 두 번째 거듭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 거듭나는데, 그렇다면 소명을 발견함으로 거듭남을 실제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려면 소명을 분별하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천국 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문지기 베드로는 “특별한 공을 세운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어요. “예, 하나 생각납니다. 폭주족들이 아가씨를 위협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지요. 저는 즉시 아가씨를 놓아주라고 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가장 덩치가 크고 문신을 많이 새긴 놈에게 가서, 그의 뒤통수를 갈기고 오토바이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그의 코걸이는 낚아채어 땅바닥에 던지고는 ‘지금 당장 이 아가씨를 놔 주지 않으려면 나랑 붙자!’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깊은 인상을 받고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언제 그랬습니까?” “바로 몇 분 전이죠. 그래서 여기 온 겁니다.”(존 오트버그, 단순하게 믿으라! p.51)
소명은 충동과는 다릅니다. 남의 말에 금방 휩쓸리는, 귀가 얇은 사람은 소명과 일시적인 충동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사람은 귀가 너무 얇아 남의 얘기를 듣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그것이 소명이라 생각하여 충동적으로 나섰다가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내가 감동하여 갑자기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셔서 정말 내 생애에 꼭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의 소명입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이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소명을 발견해도 그 길로 가지 못한 채 그냥 머물러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디가 진짜 감옥일까요?’ 현대 직장인들은 종종 회사를 감옥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회사와 감옥 중 어디가 더 좋을까요? 감옥에서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4평짜리 방에서 보내고, 회사에서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1평도 되지 않는 책상에서 보냅니다. 감옥은 하루 세 번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지만, 회사는 하루 한 번 식사시간을 줄 뿐 식사비는 개인부담입니다.
감옥에서 착실하게 고분고분 생활하면 예정보다 일찍 보내줍니다. 회사에서 착실하게 고분고분 생활하면 대개는 더 많은 일을 시킵니다. 감옥에서는 예전과 달리 TV도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근무시간에 TV를 보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감옥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주 면회를 가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가족 또는 친구와 전화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합니다.
감옥에서는 모든 사람이 항상 편안한 옷차림으로 생활합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뻣뻣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졸라매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거의 매일 갈아입어야 합니다. 감옥에서는 옆 감방에 있는 친구를 식사시간 또는 운동시간에 만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를 사적으로 만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옥에서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합니다. 회사에서 주는 쥐꼬리만 한 월급도 세금 명목으로 원천징수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며 철창 안에서 보내고,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며 술집에서 보냅니다. 영화에서 보면 감옥에는 가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교도관이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런 부류의 사람을 우리는 상사라고 부른답니다.(앞의 내용, 인터넷에서) 감옥보다 못한 회사 생활! 이게 보통 사람들의 일생이라면 얼마나 따분합니까! 두 번째 거듭남을 통해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 수는 없을까요?
소명을 발견한 베드로
본문은 베드로가 부름 받아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아 주님과 함께 나아가게 됩니다. 베드로는 어부를 그만 두고 사도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우리가 어부든, 직장인이든, 가정주부든 사정은 같습니다. 인생의 소명을 발견할 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주의 뜻에 맞게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공무원이든 교사든 예술가든, 목수나 요리사나 건축가든지, 그 안에서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 삶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 정말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인생의 소명을 발견했을까요?
1. 말씀을 통하여 발견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무리가 몰려와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은 호숫가에서 배를 띄우고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그 의미와 방향을 내 생활에 적용하십시오! 말씀을 실천하는 생활을 할 때, 우리는 말씀 속에서 인생의 소명을 찾게 됩니다. 회중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또 베드로에게 찾아와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밤새도록 고기를 잡아도 잡지 못한 실패의 상황에서 순종하여 실천하기가 어려웠지만, 순진하고 착한 어부 베드로는 즉각 순종하고 실천합니다. 그때 베드로의 마음속에 인생의 소명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말씀을 잘 받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성경공부 한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행17:11).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집중하여 경청해야 합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유럽선교의 대로가 열렸습니다. 대개 설교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신앙생활에서 은혜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립니다. 말씀을 들을 때 습관적으로 멍하니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중하지 않고 부주의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말씀 듣는 자리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 실제로 일하시고 움직인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말씀은 살아 생동하는 능력입니다! 지금도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우리의 생활과 인격을 새롭게 하십니다. 자기 선입견을 가지고 말씀을 비판하기에 급급한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 앞에 너무 분주하고 바쁘면 안 됩니다. 말씀을 충분히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 때 꼭 아이 데리고 드나들고 교회 일에 여기저기 참견하는 젊은 집사가 있었습니다. 결국 신천지 이단에 빠지고 말더군요! 아무리 우리 생각이 바르고 훌륭할지라도 주님이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들어 응답해야 바른 신앙인이 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말씀을 잘 듣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그 말씀에서 길을 찾고 방향을 발견하여 생의 소명을 알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무엘도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 함으로 말씀 앞에 응답할 때, 그날 밤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될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도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함으로 성모의 소명을 발견하게 된 것 아닙니까!
1이란 숫자는 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수를 나타냅니다. 그에 반해 0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존재의 의미로 인간을 뜻합니다. 0과 1의 수학 공식은 재미있고 의미 있습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0.1, 0.01, 0.001, 0.0001…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10, 100, 1000, 10000… 그 수는 엄청나게 커집니다. 이것이 인생방정식입니다.
올해도 주일 설교만 52번, 오후예배, 수요강해와 새벽기도 말씀 등, 하나님께서 종들을 통하여 오늘에 선포되는 말씀을 주십니다. 이 말씀이 교회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귀기우려 받으십시오! 말씀 듣기를 소홀히 하면 절대 큰 믿음, 바른 믿음 가지기가 힘듭니다. 인생의 소명을 확실하게 발견하려면 이런 말씀 듣는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인생의 소명과 구체적인 방법들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2. 실패를 통하여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소명을 알게 된 그날은 공교롭게도 실패한 날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대답하기를,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였습니다(5절).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의 소명을 발견하고 기꺼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갈 때는 밤새 실패한 날 아침입니다.
우리 시대는 성공신화를 신봉하고 성공 대박에 울고 웃는 성공지향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소명은 성공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성공만큼 실패가 있습니다. 어쩌면 여러번 실패 끝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실제로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실패를 잘 대응하고 실패를 잘 관리하는 것이 인생의 의미를 찾고 소명을 발견해가는 데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실패는 참된 인생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정교사입니다. 사람은 한번 실패하면 마음에 상처를 받아 용기를 잃어버리고 의욕이 땅에 떨어져 새롭게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때에 용기와 의욕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하면서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 실패를 극복할 길을 찾으면 그때는 진정으로 성공할 뿐아니라 참된 길을 찾게 되기 때문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제가 박사과정을 할 때, 사례연구를 해야하는데, 교육프로그램을 잘 구성하여 교회와 교인들에게 적용해보고 그 케이스를 이론 검증의 바탕으로 삼는 것입니다. 저는 도전적인 그 프로그램이 실패할까봐, 실패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우렸습니다. 그러자 그때 제 논문을 지도하던 윙가이어 박사님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도 굉장히 좋은 연구다, 문제는 그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하여 왜 실패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진정한 성공을 위한 좋은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도전을 받아 정확하게 자료를 모으고 준비하여 모험적인 성경공부 프로젝트를 시행하였는데, 첫 번 시도는 실패였지만 결국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믿음과 생활의 길에 실패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공부에도 적고 큰 실패가 있고, 취직에도 잘못 선택할 때가 있으며, 심지어 인간관계나 자녀들의 선택 문제에도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실패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오히려 참된 길이 발견되고 인생의 소명을 찾는 것을 경험합니다. 실패했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실패를 통하여 생의 소명을 발견하십시오!
부끄럽지만 제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는 경북 안동에서 중학교 입시에는 수석합격이라는 영예를 얻지만, 고등학교를 서울로 가기 위해 시험을 보았을 때 전기시험과 후기시험에 둘 다 낙방하는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재수를 하고 시험을 보았는데, 자신했던 시험에 지각하여 또 떨어집니다. 저는 크게 낙심하여 병이 들어 두 주간을 앓아 누워있었습니다. 인생이 앞이 보이지 않고 완전 무너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실패의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신학교의 소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을 통해 저를 인도하셨으나, 후에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실패의 때에 참된 소명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3. 능력을 통하여 인생의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삶에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과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기적이나 큰 변화를 주실 때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5절) ‘그대로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6절)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까지 불러서 잡은 고기를 채우니 두 배에 고기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부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과, 제일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은 두 가지 점에서 기적입니다. 하나는 이미 그들이 밤새도록 그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도 잡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없던 고기가 어디서 그 바다에서 이렇게 오는 겁니까? 놀라운 일이지요! 또 하나는 보통은 적당하게 얕은 데에서 고기가 잡히는 법인데, 깊은 데에서 고기가 많이 잡혔다는 점입니다. 두 배가 잠길 정도의 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케 하심으로 개입하십니다. 기도할 때 불치병이 낫거나, 사업적인 어려움이 기적적으로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인생에서 될 일을 안 되게 하심으로 개입하십니다. 계속 일이 안 되면 우리는 진지하게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님께 묻게 되겠죠... 하나님은 때로 예기지 못한 변화나 충격적인 일로 내 삶에 개입하십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보여주시는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는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기적이나 특별한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후회없는 생의 소명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기쁨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곳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사람들과 활발하게 함께 일하시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당신의 양무리를 인도하십니다. 목수시며, 농부, 예술가, 목자, 토기장이, 왕, 건축가이십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일하십니다. 따라서 지음 받고 구원 받은 우리도 일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창조하고, 인도하고, 공부하고, 조직하고, 고치고, 개발하고, 가르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받은 재능을 사용하여 세상을 섬기고, 그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복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소명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듣고 그대로 사는 일은 쉽지 않아요. 어린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도 누구에게 주시는 메시지인지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은 거죠. 그렉 르보이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종종 이름을 두 번씩 부르신다고 지적했습니다(앞책, p.58).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야곱아 야곱아, 모세야 모세야!” 한 번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두어 번 소명을 일러주시는데, 그때 진지하게 깨닫고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타고난 성격과 재능, 바램들을 이미 아시고,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여 세상과 사람을 유익하게 살아야 하는지 아십니다. 소명이란 “마음 깊은 곳의 기쁨이 세상의 깊은 필요와 만나는 곳”이라고 존 오트버그는 말했습니다(앞책, p.58). 세상의 깊은 필요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쉽게 만납니다. 어떤 이는 ‘가난한 노숙자를 도와야 할 텐데…’, 어떤 이는 ‘방황하는 청소년을 돕고 싶어…’, 어떤 이는 ‘교회 부흥이 필요해…’, 어떤 이는 퀼트를, 어떤 이는 차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어떤 이는 미술을, 음악을, 독서를 통해 인생 성취감을 느낍니다.
어려운 것은 나의 깊은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기쁨을 느끼십니까? 어떤 일을 할 때 열정이 일어나 사는 것 같은 보람을 느낍니까? 거기에 바로 여러분의 소명이 있는 겁니다. 어떤 젊은이는 얼마든지 공무원이나 교사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결혼도 하지 않고 대안학교에서 일반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거기에 소명이 있기에! 소명이 항상 기쁜 것은 아닙니다. 고통스러울 때도 있어요. 그러나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거기에 내 젊음과 인생을 투자할 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바로 소명이라고 보아도 됩니다!
현대 사회는 이제 소명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경제력을 주는 직업을 많이 얘기합니다. 우리 인생의 일은 대부분 직업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직업이야말로 사람들이 경배하고 시간을 바치는 새로운 종교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색을 하고 여러분께 말씀드리는데, 여러분의 직업을 소명이 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여러분의 직업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삶 전체가 소명이 되고 기쁨이 되고 보람이 될 수 있도록 살아가십시오! 후회 없는 인생, 보람찬 인생, 기쁨이 충만한 생애가 되기 위해 소명을 발견하고 소명의 길로 달려가십시오! 말씀을 통하여, 실패의 경험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볼 때, 소명을 발견하고 인생의 소명 가운데 올해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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