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설교전문

설교전문

주의 날을 기다리라! (야고보서 5:7-10) [2019년 12월 15일, 대림절 셋째주일]
2020-01-06 11:24:02
관리자3
조회수   44
설교일 2019-12-15
설교말씀 야고보서 5:7-10
설교제목 주의 날을 기다리라!

주의 날을 기다리라!

야고보5:7-10

20191215[대림절 셋째주일]

 

지난 주간에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미래가 불안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염려하는 UN 안보리를 소집했다는 소식입니다. 그 전 주간에 북한에서 ICBM 즉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엔진시험으로 짐작되는 시험을 함으로, 핵무기 도발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였던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는듯하여 요즘 마음이 착잡합니다. 위기의 시대입니다. 전쟁이 오지는 않겠지요? 이런 때면 사람들은 누구나 역사의 종말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됩니다.

초대교회 시절도 매우 시절이 하수상하던 때였습니다. 그들은 살아생전에 예수님이 구름 타고 세상에 오셔서 세상 질서가 다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르고 제자들도 하나둘 다 주님 품에 안기기까지 예수님이 오시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성서 기록이 시작된 시절부터 나중에 씌어진 복음서인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서는 재림지연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강력한 로마 나라가 망하고 헬라시대가 왔어도 주님은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말하자면 재림이 연기된 것이죠. 재림신앙이 그 시대에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 말구유에 태어나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30세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바로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활하시어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예수는 역사의 종말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모두 심판하시고 새 역사를 여십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교회는 오랜 역사에서 재림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교회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를 살아가는 믿음과 소망의 공동체입니다.

여러분은 재림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시대의 재림신앙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현대 교인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재림이 아주 늦어졌으므로 재림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역사의 종말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종료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 문제에 있어서 예수님이 심판주로 재림하시어 모든 악인과 불신앙자를 심판하시고 주의 백성들을 새하늘과 새땅으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가까이 온 종말

먼저, 우리는 구원이 가까웠다는 것을 믿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하면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13:11)고 말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빛의 갑옷을 입자.’(13:12)고도 합니다. 이 말씀들은 종말이 멀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도 종말이 멀지 않았어요! 세상도 종말이 어떤 형태로든 멀지 않아 오게 됩니다.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시간과 씨름하는 사람들입니다. 시인 스티븐슨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일이 끝나기도 전에 저 일몰의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까봐 속을 태운다.”고 노래했습니다. 시험에 임한 학생은 시험시간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에 답을 다 쓰려고 안달을 합니다. 지구생명을 위해서도 앞으로 10여년이 지구가 존속할지 멸망할지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1.4후퇴 때 한 군용트럭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려는 사람을 가득 실었습니다. 1945년부터 북한은 공산치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에 한국전쟁이 터지지요. 공산치하에서 그들의 무서운 행태를 본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남하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군용트럭에 가득 사람을 채워 내려오는데 화장실에 간다고 나간 딸이 오지를 않는 겁니다. 트럭은 막 출발하려고 하는데 딸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운전수에게 말합니다. “우리 딸이 지금 화장실에 갔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올 것입니다.” 그러자 운전사는 지금 한시가 급한데, 빨리 가야해요!” 소리를 지릅니다. 이때 딸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알고 보면 인생의 날들도 그렇습니다. 금방 지나기요! 예수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병들어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이웃 가족 가운데 몇 년 병으로 앓으시다가 돌아가시는데, 막상 믿음에 대해 준비하고 얘기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시간에 쫓겨가며 믿음을 확인하고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였습니다. 재림이 연기되고 있고, 이미 수천년 연기되었지만 곧 우리 앞에 닥칠 것입니다. 또 우리 개인의 종말도 멀지 않아 다가옵니다.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내가 이렇게 금방 그 연세가 되었나 하시잖아요? 금방입니다. 이처럼 그날도 금방 닥칩니다.

신자는 이제 낡은 질서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는 지나갈 밤에 속하지 않고 이미 동이 튼 낮의 백성으로 삽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빌립보서 320절에서 말씀합니다. 바울이 처음에 서신을 쓸 때는 이 세상이 예수님의 재림으로 끝나게 될 터인데 그때가 아주 가까웠음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성도들의 생활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것으로 조금 바뀝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이 늦어지고는 있으나 우리에게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수필가 피천득 씨는 살아생전에 평생 첫사랑의 사진을 가지고 다녔다고 해요. 중국 유학시절에 상해 호강대 영문과를 다녔는데, 그때 그 첫사랑을 만났답니다.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96세가 된 할아버지 때에도 그 사진을 수첩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것도 짝사랑이었고 중국 여학생이어서 변변한 사랑도 못해봤답니다. 가정을 이루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가족이 이해를 해준 모양입니다. 그 여학생을 생각하면 80년의 세월이 정지된 것 같다는 것이어요. 기억이 생생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간은 객관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이 서로 역동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종말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시간의 신비 속에서 우리 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종말이 멀지 않습니다! 심판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대로 살다가 죽을 때 되면 정신 차리고 잘 살아보지 뭐, 그러다가 아뿔싸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현재적 종말의식을 가지십시오! 지금부터 깨어있어야 합니다. 심판주 그리스도께서 문 밖에 와 계십니다. 지금부터 바르게 거룩하게 참되게,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길이 참아: 인내

다음으로, 성서에서는 주의 재림이 가까우니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합니다(8). 길이 참아야 합니다. 여러분, 복된 성도는 시간 안에서 너그럽게 참으며 기다립니다. 참고 기다리되 성도답게 거룩하게 반듯하게 기다립니다. 성도의 기다림은 그냥 시간만 때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세월만 기다리는 것은 성도의 기다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잘 기다리십시오! 적극적인 믿음의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잘 기다리면 아름다운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 앞에 환란이 있음을 성서는 예고합니다. 사람도 죽기 전에 질병이나 어려움이 대부분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것이지요. 이슬람권에서는 지금 반미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9.11사태입니다. 반미적인 이슬람권 운동단체가 비행기를 납치해서 미국의 심장부를 비행기로 자폭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무슬림의 순진함>이란 반무슬림 영화가 나왔는데, 그 예고편을 보고 흥분한 무슬림들이 미국대사를 비롯하여 4명을 살해했는데, 그때 죽은 스티븐스 미국대사는 친 무슬림 미국인으로 리비아를 짝사랑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전 세계의 일류국가로 힘을 행사하고 있지만 언제 환란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겸손히 깨어있어야 합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대학생 때 비오는 날 길을 걷다가 갑자기 천둥번개가 쳐서 같이 가는 친구가 즉사하는 사고를 당합니다. 이때 루터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결국 이 일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면서 신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원래 루터의 아버지는 법관이 되기를 바랐는데,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가 됩니다. 환란이라는 것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릅니다. 전쟁, 질병, 사고, 불황은 언제 닥칠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 우리는 기도가 필요함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과 역사의 종말 앞에서 잘 기다리려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종말의 때에 충실한 재림신앙을 가진 사람은 기도로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한 신실한 여교사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사는데, 경찰 남편이 성격이 과격하여 아내에게 폭행을 하고 했습니다. 3남매가 이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비뚤어질까 염려되어 이혼하였습니다. 이 여교사는 재혼도 안 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며 살았답니다.

그런데 유치원에 들어간 아들이 주의력결핍행동장애(ADHD)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부를 못하고 산만한 겁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요! 3남매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살았는데, 이런 일이 있다니요! 상담 선생님께 찾아가니 아이의 마음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게 수영이라는 조언을 듣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수영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물이 코에 들어온다고 수영을 안하겠다는 거예요. 두 누나가 그러면 코를 하늘로 들고 하는 수영인 배영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배영을 시작한 아이가 점점 수영을 잘하게 되어 미국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고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18개를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펠프스입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종말을 앞에 둔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담대함

성서가 재림신앙을 가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오래 참으라, 인내하라는 것과 함께 마음을 굳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을 굳게하라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굳게 하라는 헬라어로 스테라조인데, ‘세우다, 고정하다, 강화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야고보는 주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며 재림이 더딜지라도 믿음을 바로 지키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굳게 하라는 것은 담대하라, 마음을 크게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 너무 좌지우지 되는 좁은 마음이어서는 못씁니다. 작은 한두 가지 일에 너무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딱 잡고 좀 큰마음을 가지십시오! 담대하세요! 바쁘다고 예배도 못 드리고, 피곤하다고 기도도 못하고, 힘들다고 봉사 한 번 못한 채 여유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니 마음만은 담대하고 통 크게 가지십시오! 그래야 재림을 준비하는 승리의 사람들이 됩니다.

21세기 삶의 소용돌이를 겪는 우리는 담대하라는 말씀을 잘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담대하라는 말씀을 총 365번이나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의 현장에는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마음이 약해지게 만들며, 어렵게 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러나 담대하십시오! 주 안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능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니 제인 크로스비는 맹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으나, 주옥과 같은 찬송시를 수천 편이나 지었습니다. 그녀는 하늘을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쓴 찬송가 384나의 갈 길 다가도록에서 후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의 원어 가사는 “For I know whatever be fall me Jesus do all things well.”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어떤 난관에 빠지더라도, 예수님이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실 것이다.”입니다. 주님이 능히 극복하게 하시므로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길게 보십시오!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는 거룩한 사람의 편이 되십니다.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을 끝까지 지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풀무불에 들어갑니다.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극별한 풀무불에 던져지고 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길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편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진실하여 성결을 지키는 자의 편이 되십니다. 재림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다 성결하게 살았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신부의 자세를 잃지 않고 선교에 열심이며 역사에 공헌했습니다. 죄 짓지 않고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재림신앙은 우리의 거룩한 삶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 믿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홍글씨>를 쓴 나타나엘 호돈은 청교도 출신인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어느날 회사에서 무능하다고 해고를 당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격려해서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는 집필에 들어가 정확히 10년 후에 <주홍글씨>를 집필합니다. 그는 나중에 영국 영사까지 지낸 인물이 됩니다. 그가 직장생활에 매여있었다면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길게 보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십시오! 하나님은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준비된 믿음의 사람

사도 야고보는 주의 오심을 기대하며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때 주의 재림이 임하여 놀라운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을 너무 크고 강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실수한 게 하나 있는데, 전쟁 막판에 소련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태평양 전쟁이 다 끝나갈 때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을 투하한 것이 86일입니다. 원자 폭탄이 터지고 이틀 후인 88일에 소련군이 만주에 있는 일본 군대에 침입해 들어옵니다. 태평양 전쟁에 자기들이 참여한 것입니다. 이미 끝났는데, 참여해서 북한에 다음날 들어와 나주, 천진에 들어왔습니다.

전쟁이 끝났으면 주범인 일본이 독일처럼 분단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분단이 되지 않고 말도 되지 않게 한국이 남북한으로 분단됩니다. 왜일까요? 미국이 소련을 끌어들인 까닭입니다. 해방이 너무 갑자기 왔습니다. 미국도, 임정 요인들도 미처 준비가 되지 못했던 거죠. 몇 달만 더 있다 해방이 되었어도 한국은 스스로 일어서 나라를 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해방이 오니, 강대국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되고 분단이 된 것입니다.

우리 개인 신앙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데 준비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초림을 기념하는 성탄의 기쁨에 젖어, 재림을 실제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복된 소식, 새 하늘과 새 땅의 임재가 되어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재림신앙을 가지고 그날을 준비하십시오! 기도하면서 인내로써 준비해야 하고, 담대함으로 큰마음, 길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배에 꼭 참석해야 합니다, 그날이 올수록 서로 격려하며 개인경건생활, 기도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충성된 성도로써 주의 나라를 준비하십시오! 그러면, 그날이 올 때 복 받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

 

댓글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485 산 위에서 사십 일 (출24:12-18) [2020년 2월 23일, 주현절 마지막/ 변화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23 8
484 반석에서 샘물이! (출17:1-7) {2020년 2월 16일, 주현절 여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16 20
483 은혜의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겔47:6-12) [2020년 2월 9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08 31
482 십자가를 자랑하자 (고전1:18-31) [2020년 2월 2일, 주현절 넷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06 26
481 주께 하듯 하고 (골3:18-25) [2020년 1월 26일, 주현절 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25 48
480 새 언약의 직분 (고후3:4-9) [2020년 1월 19일, 주현절 둘째/ 임원임명(취임)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18 48
479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요한복음 14:25-28) [2020년 1월 12일, 주현절 첫째 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18 51
478 믿음의 달리기 (히브리서 12:1-3) [2020년 1월 5일, 성탄후 둘째/신년주일] 관리자5 2020-01-07 60
477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마태복음 8:5-13) [2019년 12월 29일, 성탄후 첫째/송년주일] 관리자5 2020-01-07 59
476 침묵하는 요셉 (마태복음 1:18- 25) [2019년 12월 22일, 대림절 넷째주일] 관리자3 2020-01-06 46
475 주의 날을 기다리라! (야고보서 5:7-10) [2019년 12월 15일, 대림절 셋째주일] 관리자3 2020-01-06 44
474 하나님, 몸을 입으시다 (요한복음 1:12- 14) [2019년 12월 8일, 대림절 둘째주일] 관리자3 2019-12-08 106
473 무너뜨리고 세우시는 하나님 (호세아 14:1-3) [2019년 12월 1일, 대림절 첫째주일] 박신진목사 2019-12-01 129
472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행4:36-5:11) [2019년 11월 24일, 성령강림 후 마지막주일] 관리자5 2019-11-29 124
471 복을 부르는 습관 (이사야 65:17-25) [2019년 11월 17일, 추수감사절] 관리자3 2019-11-16 140
1 2 3 4 5 6 7 8 9 10 ...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