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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의 직분 (고후3:4-9) [2020년 1월 19일, 주현절 둘째/ 임원임명(취임)주일]
2020-01-18 16:44:23
박신진 목사
조회수   532
설교일 2020-01-19
설교말씀 고후3:4-9
설교제목 새 언약의 직분

새 언약의 직분

고후3:4-9

2020119[주현후 둘째주일/ 임원임명주일]

 

우리교회는 매년 새해가 되면 둘째주일이나 셋째주일을 임원임명예배로 드리면서, 연말 당회에서 직분자로 부름받은 이들을 임명하고 그 중에서 처음 취임하는 이들을 축복하고 직분을 위임하는 예배를 드린다. 오늘이 바로 그 주일이다. 이번 해에 처음 권사로 취임하는 유영민 권사와 정응교 권사, 원로권사로 부름받는 엄완희 권사와 고정순 권사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믿음과 헌신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는 권사들이 되기를 바란다. 또 이번 해에 처음 집사로 취임하는 명예집사 홍순원 집사를 비롯하여, 최연랑 집사, 임덕성 집사, 함소영 집사, 김남숙 집사, 박혜연 집사를 축복하며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신실한 집사들이 되기를 바란다.

직분자는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선택받은 일꾼이므로 직분의 축복과 영광이 있다. 오늘 권사와 집사로 처음 출발하는 직분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기를 바란다. 보통 우리는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면, 그냥 집사 아닌 평신도일 때나 권사 이전의 집사일 때보다 믿음이 좋아지고 더 영적으로 높은 단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된다는 것은 사실 믿음에 있어서는 더욱 위험하고 어려운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직분의 자리는 영적으로 가장 유익한 자리일 것 같지만, 실제는 그 반대에 가깝다. 직분자의 자리와 역할은 신앙인으로 영성을 고갈시키는 위험요소가 가득하다. 따라서 영적으로 깨어있기를 원하는 신앙인이라면 직분을 받을 때 그 위험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 없이 그냥 열심의 강도만 높인다고 훌륭한 집사 권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직분자가 되면 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게 된다. 집사가 되면 무언가 교회와 하나님께 유익을 주는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 어떤 이들은 지나치게 열심히 무언가 하려고 한 나머지 여러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권사가 되면 중직이 되는 것이니 교회의 여러 일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고 가르치려고 하다가 트러블메이커가 되는 권사들도 많이 보았다. 직분을 맡고 나서 말씀묵상과 기도생활, 예배와 같은 영적 활동을 할 때, 하나님과 자신의 영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을 이루는 수단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예배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뭔가 마음이 분주하며, 기도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신경쓰느라 하나님과의 대화를 잃어버리고, 찬양할 때 마음을 다하여 영적인 기쁨이 충만하도록 찬양하지 못하고 잘 하려고 신경쓰다가 은혜와 기쁨을 잃어버린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으로 마음이 충만하고 하나님 만나는 기쁨이 있어야 하는데, 집사 권사가 되어 이 일 저 일에 참견하느라 우리 영혼은 텅 빈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신앙활동이 오히려 우리를 더 영적으로 갈급하고 피곤하게 만들게 된다. 남들 보기에는 집사다 권사다 하니까 믿음이 좋아진 줄 아는데 내면을 살펴보면 믿음도 잃어버리고 병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 성경을 보니까, 하나님이 주의 백성을 복음의 일꾼으로 삼는 것은 재능이 있고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믿고 맡기시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하나님이 구약시대가 지나고 신약시대가 되었을 때 새 언약을 주셨는데, 새 언약에서는 율법의 의무와 요구 대신에 생명을 일으키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난다.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율법조문은 무엇인가? 의무적인 신앙생활, 형식적인 교회생활이다. 영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거룩한 영이다. 교회제도 안에서 인위적인 방법으로 무슨 직분을 주고받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다. 새 언약의 직분, 복음적인 사명은 성령으로 하는 것이다. 진심이 통하고 감동이 있어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직분자가 되었다 하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직분에 안주하고 직분이 주는 약간의 권세를 의지하려고 한다. 내가 집사니까 이만한 믿음을 가져야 해-가 얼마 지나서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로 바뀌어 버린다. 중직으로 갈수록 그런 위험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직분자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고, 진정한 믿음으로 행하기 보다는 어떤 의무나 위치로 행할 때가 많게 되어버린다. 직분이 없을 때는 배우려고 하고, 겸손하게 주의 말씀대로 행하는데, 직분이 커질수록 내 속에 영적 능력이 없으면서도 가르치려고 하고, 교회의 가르침도 따르지 않게 된다. ‘나도 할 만큼 하고 배울 만큼 배웠다.’ 그런 착각을 하게 된다.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모세의 얼굴 바라보고, 율법 조문의 직분을 바라보느라 하나님의 얼굴, 진짜 믿음의 본질을 주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직분이라는 교회에서 부여한 역할과 호칭도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믿음의 본질을 붙들 때 진짜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직분이나 형식적인 교회생활에 집중하느라 진짜 믿음, 영혼의 참 축복을 잃어버렸음을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이미 발견하고 깨우쳐주는 것이다.

 

이런 공허한 직분자의 생활을 청산하고 참 믿음을 가지고 영적으로 풍성하고 능력있는 성도의 삶을 살려면, 새 언약의 직분, 복음적인 집사와 권사가 되려면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예배를 바로 드려야 하고, 자신만의 영적 활동을 해야 한다. 진실한 예배자가 되는 것과, 개인 영적 생활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직분자의 삶에서 예배가 진실하고 영감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면 이것은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집사입네 권사입네 하면서 교회에서는 역할을 하면서 자신만의 영적 활동 시간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다. 교회에서만, 주일에만 하나님을 믿으면, 이것은 가짜 신앙이다.

첫째는, 직분자이기 이전에 참 예배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집사 권사 장로 목사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참 예배자를 찾으신다. 우리의 믿음과 영성이 깨어있으려면, 진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직분자의 역할을 바로 하려면 먼저 바로 예배드려야 한다. 매일 매 순간 예배할 때에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실하고 영감있는 예배를 드리지 않으려면 차라리 직분을 반납하는 게 좋다. 우리는 직분이 주는 율법적인 영광만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은혜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모세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이 말씀을 묵상해보라!! 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복된가! 모세의 영광, 율법과 직분과는 비할 수도 없다!

예배찬송을 부를 때 가짜로 부르지 말고, 그 가사와 곡조에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진실하게 불러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집사 권사이지, 바른 신앙인도 아닌데 집사 권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노래의 곡조나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생각하니까 찬송을 부르기도 전에 지루하다. 하나님께 들려드리는 노래가 아닌가! 예배 중에 직분자는 한 사람의 모범 예배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영성과 은혜와 영적 기쁨을 위해 정말로 필요한 믿음의 자세이다. 우리 개인의 영성을 위해 바르고 풍성하며 능력이 넘치는 예배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겠나! 예배드릴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그 얼굴빛을 바라보며 예배하라!

이런 예배자의 자세는 다른 영적 활동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말씀은 영원하시고 절대하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특정하여 오늘 여기 내게 찾아오셔서 주시는 신의 언어이다. 하늘의 명령이고 영원한 언약의 말씀이다. 그 어떤 것과 비할 수 있으랴! 교회의 영적 모임에서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세속적인 모임에서와 같은 효율성이나 결과와는 다르다. 성령께서 모임 가운데 거하시고 만들어 내시는 변화요, 능력이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진실하고 영감이 넘치는 참된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고갈시키지 않고 충전시키며 새롭게 하며 행복하게 한다.

외국에서 20년 목회하고 은퇴하신 뒤에 서울 서초동의 사랑의 교회에 와서 설교하시던 어떤 목사님이 20년 전에 비하여 한국에 와서 예배를 드려보니 크게 변화된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어린 아이들이 너무나 적어진 것이고, 또 하나는 예배에 눈물이 없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 세대들이 예배자리에 오지 않는다. 그리고 예배에 눈물이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위대함은 진정성 있는 예배에 있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다 눈물로 부르지 않았던가!

찬송과 기도에 눈물이 회복되어야 하고, 말씀 앞에서 통회자복이 터져나와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예배드리던 자리는 눈물이 흥건하였다. 새벽기도 마치고 일어서면 눈물콧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 예배의 진실함과 영감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였다. 직분자로 부름받았는가? 예배의 진실함과 영감을 회복하라. 성령이 역사하시는 예배가 되기 위하여 더욱 진실하고 뜨겁게 참여하라! 예배가 살아있게 하라!!

 

직분자의 위험성을 극복하고 참된 신앙인의 기쁨과 은혜 속에 살려면, 둘째로 교회의 공적 생활 속에서 누리는 영적 생활인 예배에 더하여 자신만의 영적 활동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건강한 영적 생활을 하려면, 누구나 따로함께가 균형이 잡혀야 한다. 헨리 나웬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강조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와 함께 드리는 공적 예배에 은혜와 영감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개인적인 기도생활과 말씀 묵상이 살아 생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로 교회와 함께 기도하고 말씀 묵상할 때와 개인이 기도하고 말씀 보고 찬양할 때는 다르다. 예배의 시간이 함께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시간이라면, 자신을 위한 개인 영적 생활은 따로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연합을 위한 시간이다.

직분자는 교회생활 속에서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위치에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사람에게 보이려고 믿음을 가장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믿음 좋은 척하며 생활한다. 직분을 가지면 집사의 믿음, 권사의 믿음을 자꾸 가장하고 가식하게 된다. 사실은 집사 권사는 그만두고 초신자의 믿음도 안 되는데, 세상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다 보면 어떤 때는 쥐꼬리만 한 믿음조차 출장 가버린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게 사실인데, 그러나 직분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표정 짓고 행동하는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영혼을 위해 정말 독이 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영혼의 깊은 곳이 만날 시간을 놓쳐버리고, 항상 괜찮은 척, 믿음 좋은 척, 이미 이룬 척하는 바리새인의 영혼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통해 우리가 힘을 얻고 은혜를 받고 새로워져야 하는데, 반대로 가식하고 꾸미고 안 그런 척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빠지고 탈진해버린다. 교회에서 사람들 앞에서 꾸미느라 힘들고 피곤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힘을 잃어버린다. 영적 피로에 지친 우리의 본성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켜놓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한다. 또 교회에 나가 없는 믿음을 있는 듯이 꾸미며 가식을 해야 하나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예배나 기도회나 행사 때가 되면 임원이니까 직분자니까 의무감으로 할 수 없이 나간다. 무거운 몸을 끌고나가 흐트러진 영혼으로 남을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내 믿음도 지키기 어려운데 남의 믿음을 지도해야 하니, 이런 악순환이 직분자를 껍데기로 만들고 교회의 영성을 죽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새로 집사 권사 되는 분들에게 예배의 은혜와 영성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과 함께, 정말 중요한 점은 개인 영적 생활을 되찾아야 한다는 이 둘째 요소이다. 우리 영혼이 살아난 다음에야 집사요 권사지, 내 믿음 내가 지키기도 힘든데 무슨 직분 감당이겠는가! 새해 생활을 계획할 때 여러분 개인 영혼을 위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교회생활이 오히려 우리의 영적 생활을 방해하는 때가 있다. 믿음이 없으면서, 구원의 감격도 없고 예배의 기쁨도 없으며 찬송생활과 기도생활이 주는 은혜도 없으면서, 되게 믿음 좋은 척하려니 얼마나 영혼이 탈진이 되겠는가!

우리들 가운데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너무 바쁜 사람과 너무 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는 사람, 예배드릴 시간 내기가 정말 힘든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저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도 말씀묵상할 시간도 낼 수가 없어요. 그러나 제가 열심히 사는 거 아시죠? 하나님 믿는 것은 틀림없어요. 예배 때 빠지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그러나 이런 사람은 잘 사는 게 아니다. 한량없이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시간이 많더라도 현재를 잘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오늘을 지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관리를 잘 해서 하나님 앞에서 너무 바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시간을 구별해야 한다.

인간은 돈 버는 기계가 아니다. 살다보면 무슨 일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가 될 때도 있지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소비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주인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려면 아무리 바빠도 자기 마음을 살펴보고 자기를 만져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살아야 한다. 교회전통에는 양심성찰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Daily Examen’이라는 기도생활이 있다. 아침기도, 저녁기도, 취침기도처럼,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기도가 아니라, 시간을 정해놓고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아무리 바빠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기, 내 인생에서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기의 시간을 내는 것이다.

또 너무 할 일이 없어 시간이 어떻게 할 수 없이 남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인은 노동시간의 축소와 효율적인 생산시스템으로 남아도는 시간을 어쩌질 못해 타락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또 조기은퇴로 건강한 노년이 오래 유지된다. 이런 남아도는 시간을 잘못 관리하여 중독에 빠지기도 하고 개인적 타락의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불륜이 이렇게 교회 안팎에 창궐하게 된 것은 영적인 개인 시간을 가지지 못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사랑을 추구하고, 신불신을 막론하고 방황하는 결과 세상이 이토록 타락해버렸다!

신앙인은 주님과 함께 하는 개인 영성의 시간을 꼭 계획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현대인은 자유와 풍요를 누리며 살다보니 의식적으로 시간계획을 세워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거의 내적으로 타락해버린다. 남모르는 타락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더구나 직분을 가졌다고 믿음 좋은 척, 구원받은 척하고 있으면 정말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직분을 받기 전에 하나님과의 영적생활을 계획하라! 그래야 직분이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직분자가 되기 전에 신앙인이 되라는 것은 알겠고, 진실하고 영감있는 바른 예배, 눈물이 드려지는 예배가 되라는 것도 받아들이겠는데, 개인 영적생활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말 어렵다.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아니면 시간이 너무 많아 세상적으로 할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나도 즐기면서 이 나이 되었으니 좀 여유롭게 살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죄악과 세속의 유혹은 우리를 점점 수렁으로 빠뜨린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신앙인으로 살겠는가, 아니면 직분자의 율법에 빠져 사실은 믿음이 없는데 직분에 기대어 믿음 있는 척하며살겠는가! 개인적인 영성생활, 기도생활을 하면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재미없고 지루하고 힘들다. 보통 기도한다 하면 무엇을 주옵소서!’하고 자꾸 이걸 달라 저걸 달라, 세상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주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도 피곤하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도 피곤하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지면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갈망 때문에 기도의 시간에 기도의 자리를 찾게 된다.

인간의 내면에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다. 사람들이 그 공간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온갖 세상의 집착과 쾌락으로 대신 채우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세속의 사랑과 온갖 취미생활들의 많은 부분들이 하나님이 아니고는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을 대신 채우려는 노력일 때가 많다. 그래서 취미도 바꾸고 사람을 바꿔봐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셔서 내 마음을 채우시면 그 모든 갈망과 욕구불만이 다 잠잠해지고 평안을 얻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으로 우리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야 한다.

우리가 예배와 개인 영적 생활로 우리 삶이 구원의 감격이 있고 영적인 기쁨이 있는 생활이 된다면, 거기에서 성품이 바뀌고 인간관계가 달라져서 평안과 행복이 선물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죄의 직분, 즉 율법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 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오늘 문답한 모든 임원들과 취임하는 새 임원, 여러분 모두가 그런 새 언약의 직분자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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