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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하는 평신도 (행6:1-7) [2020년 6월 7일, 성령강림후 첫째/ 평신도주일]
2020-06-07 12:59:29
박신진 목사
조회수   38
설교일 2020-06-07
설교말씀 행6:1-7
설교제목 봉사하는 평신도

봉사하는 평신도

행전6:1-7

202067[성령강림후첫째/ 평신도주일]

 

교회에서 평신도라는 말을 쓰면서도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먼저 교회의 직제에 대하여 좀 알아야 한다.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와 같은 직제가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른다. 어떤 사람은 집사를 집을 사!’, 권사를 건사하라(잘 지키라)’, 장로를 장롱으로 바꾸어 부르며 은근히 놀리기도 한다. 게다가 안수집사는 뭐고 권찰이란 것은 무엇이냐? 전도사를 전두사라고 발음하는 아이들이 많다. 목사들이 안경 쓴 사람이 많다 해서 눈 목사’(目四)라고 부르냐 하고, 심방다니면서 잘 먹어야 한다고 먹사라고도 한다. 또 감리사나 감독은 어떤 직책이냐?

이런 모든 직제를 크게 둘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교역자와 평신도이다. 교역자란 말하자면 교회의 직분을 자기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성직자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목사와 감리사 감독이 있고, 수련하는 목회자로서 전도사가 있다. 평신도란 자기 직업과 역할을 따라 세상에서 살면서 신자로서 교회 다니는 사람이다.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무 직분이 없이 그냥 성도로 호칭되는 사람도 있다.

교역자와 평신도는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매우 다르다. 목사는 무엇보다 말씀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역할과 교회를 치리하고 성례를 집행하며 성도들을 돌보는 목양의 사명이 있다. 그에 비하여 평신도는 두 가지 역할이 있는데, 우선 세상 가운데에서 자기 직업과 맡겨진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역할과 교회 안에서는 교회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기능이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이다. 과거보다 이제는 평신도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평신도의 사명과 역할을 생각해보자.

 

                                                                                                                                      집사직과 평신도

오늘의 본문은 처음 집사 제도가 생겨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예루살렘 교회에 신자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고 과부나 고아와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 커지게 되니까, 그 일처리에 불만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사도들이 교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봉사자로 집사들을 택하게 된다. 이때로부터 교회에는 사도들과 집사들의 구별되기 시작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이들이 집사가 되어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에 수고하였다. 이렇게 집사들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되니까, 사도들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더욱 전념하게 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지고 유대교의 지도자인 제사장들도 많이 개종하는 역사가 나타났다.

교회는 교역자들이 잘해야 하지만 평신도가 정말 중요하다. 교역자는 아무리 중요하고 잘해도 한두 명에 불과하지만 절대다수는 평신도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가 살아있고 자기 역할을 다해주면 교회가 살고, 평신도가 자기 역할을 잊고 방황하면 교회 전체가 표류하게 된다. 평신도가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다할 때 교회가 은혜롭게 부흥되며, 교역자들이 그 역할을 더욱 잘 할 수 있게 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해내고 이방의 지도자들까지 주님께 돌아오는 결과가 나타났음을 성서는 얘기해주고 있다.

오늘날 평신도 운동이 점점 교회정치에 개입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정말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교역자들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평신도들이 가져야 하겠다는 주장으로, 자칫하면 교역자와 평신도의 힘겨루기처럼 나타나는 것은 성서의 평신도 개념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왜 이런 평신도 단체들이 많아졌는가? 평신도 단체 회의만 좇아다녀도 바쁠 지경이다.

성서는 평신도에 대하여 두 가지 길을 가르쳐준다. 첫째는 세상 속에서 빛된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다. 평신도는 자기 직업과 사업을 가지고 있고, 교회에 와서 사는 것보다는 세상 속에서 사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세상 가운데’, ‘사회 속이 평신도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 자리다. 세상 속에서 복음의 빛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라!

그러나 둘째로 평신도는 사회에서만 활동하지 않고 또 교회 안에서도 봉사한다. 평신도는 기도하고 말씀 배우고 봉사한다. 교회 정치는 꼭 필요한 사람들이 제한된 범위에서만 하면 충분하다. 기도를 쉬지 않고 말씀 배우고 봉사하는 평신도로서 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정치하고 교단 일에 참견하는 데에 힘을 기울이는 평신도가 아니라, 내 생활과 교회에서 기도하고 일하는 데에 힘을 다해 참여하는 평신도가 되라.

 

                                                                                                                             세상 속에서 빛된 자녀로

1020년 전만 해도 신학대학과 신대원은 인기학과에 속했다. 많은 목사 선교사 후보생들이 모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최근에 들어와서 갑자기 바뀌었다. 지원자들이 줄어들었다. 대신 평신도의식이 많이 성장했다. 물론 실력있고 겸손하며 경건한 젊은이들이 많이 신학교에 가서 훌륭한 교역자의 길을 걷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력있는 평신도 크리스천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다.

교회는 앞으로 평신도시대가 열린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헌신된 실력있는 평신도 일꾼들을 많이 길러내는 데에 더욱 치중해야 한다. 주님께 헌신된 믿음 있는 선생님, 능력있는 전문직 종사자, 의료인이나 법조인이나 사업가들이 나와야 한다. 성실한 상업인, 존경받는 공무원들이 교인 중에 많아져야 하고, 크리스천 연주자, 크리스천 스포츠맨, 예술가와 학자, 교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든 교역자가 되거나 교역자가 하는 일을 대신 하려고 하지 말고, 믿음을 길러 평신도가 할 수 있는 일,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나 사업가로서 세상 속에서 빛 된 자녀로 사는 일에 더욱 노력하라. 직장을 복음화하라, 사업을 복음화하라, 가정을 복음화하라. 여러분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찬송하는 곳 기도하는 곳 말씀 보는 곳으로 변화시키라.

여러분의 직업을 통하여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시라.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사랑으로 잘 가르치고 인격과 덕에 있어 믿지 않는 다른 선생님보다 한 걸음 앞서가야 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좋은 제품이나 음식을 더욱 위생적으로 좋은 가격에 제공해야 한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믿는 자의 덕을 드러내는 것이 평신도로서 가장 위대한 사명이다. 가사를 전담하는 가정주부들이 많은데, 전업주부들은 남편들과 협력하여 가정을 잘 가꾸고 자녀들을 양육하며 가정을 천국처럼 만들어가야 한다. 이게 평신도의 사명이다!

 

봉사하는 평신도

원래 집사는 봉사를 위해 세워진 것이다. 집사는 평신도 직분이다. 교회의 직분과 평신도의 역할도 봉사하는 데에 있다. 말꾼이 많은 교회는 말만 많고 일이 되지 않아 상처받는 사람이 많다. 일꾼이 많은 교회는 말없이 봉사하기 때문에 말은 없어도 일이 잘 성취되어 모두가 기쁘고 은혜가 된다. 말꾼이 많은 곳에는 일꾼이 자라지 못한다. 일꾼이 자리 잡도록 두지를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꾼도 점점 말꾼이 되어버리거나 아니면 구경꾼이 되어버린다. 여러분, 일꾼이 되시라. 교회 나와 일하는 것이 즐겁고, 다같이 일하다 보면 기적이 나타나고 사랑이 충만하게 된다.

봉사하는 평신도가 될 때 믿음이 자란다. 봉사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은 그 믿음의 성장이 하늘 땅의 차이가 난다. 오래 전에 연말 집사를 선출하는 데 남자분 한 분이 영 선출해놓고도 마땅치 않았다. 가끔씩 당회를 지나고 새 임원을 선출하고 나서 잘못 뽑았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분이 그랬다. 고속터미널에서 일하는 분이었는데, 얼마나 입이 거친지 가래침을 탁탁 뱉으면서 욕을 해대면, 우리 집사람이 혹시 자기를 알아볼까봐 몸을 피해야 할 정도였다. ‘집사 잘못 뽑아서 교회 망신 다 시키겠다.’ 은근히 걱정이 많았다.

그러다가 그분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서 교회를 떠났다. 그곳에서 신앙생활 잘하라 권면하였으나, 속으로는 집사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한두 해 후에 그분을 다시 만났는데, 얼마나 경건하고 충실한 집사가 되었는지 깜짝 놀랐다. 얘기를 들으니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믿음이 자랐을까? 봉사를 하면서 자란 것이다. 나중에 충주지방의 청장년연합회장으로 섬겼다. 봉사하는 평신도는 믿음이 성장한다.

교회는 평신도의 봉사를 통해 부흥한다. 봉사하는 평신도상이 확립된 교회가 든든히 서가며 부흥한다. 예루살렘교회도 일곱 집사를 세우고 봉사하게 하였더니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다(6). 교회는 교역자에 따라 부흥도 되고 쇠퇴도 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교역자가 평신도를 얼마나 봉사하게 하느냐에 따라 교회 부흥이 결정된다. 여러분, 주장하고 결정하는 평신도가 아니라 봉사하는 평신도가 되라.

봉사가 무엇인가? 시간을 바치는 것이다. 기쁨으로 시간을 내어 속회를 위해, 선교회를 위해,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천국 기관이 될 것이다. 봉사가 무엇인가? 헌신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한다면 자기의 노력과 재능, 가진 것을 드려 일하는 사람이 봉사하는 사람이다. 봉사가 무엇인가?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다. 섬기는 사람이 한걸음이라도 물러서 주어야 일이 된다.

봉사하는 평신도가 될 때 주님의 복이 임할 것이다. 일할 때 하나님은 상주신다. 하나님은 충성하며 봉사하는 사람을 복주신다. 믿음의 선조들이 주의 일을 위하여 수고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다. 아브라함은 독자까지 바치면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미래를 책임지셨고, 엘리야 시대에 사렙다 과부는 마지막 음식을 드려 봉사할 때 가뭄이 다하도록 하나님께서 그 양식을 채우셨다. 봉사하는 일꾼을 하나님은 축복하신다.

 

문창모와 장기려, 그리고 최태섭

한국교회에서 훌륭한 평신도 봉사상을 남긴 의사 두 분을 소개하겠다. 70년간 한결같은 인술을 펼쳐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려 온 원주 문이비인후과 원장이셨던 문창모 박사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부산 복음병원에서 평생 의술을 펼치며 의료보험을 시작한 장기려 박사가 대표적인 평신도라 할 수 있다.

평북 선천 출신인 문창모 박사는 1931년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했고 해방 후에는 국립 마산결핵요양소장과 세브란스병원장, 대한결핵협회 사무총장 등을 지낸 뒤 58년 연세대 원주기독병원의 전신인 원주연합기독병원장으로 부임했다. 문장로는 64년 학성동에 문이비인후과를 개원하여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는 해까지 43년을 진료했다. 그는 의료활동은 물론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고 나환자촌을 건설하는 등 사회사업 분야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원주제일교회 장로로서 교회를 잘 섬겼으며, 다른 작은 교회들도 많이 섬겼다. 원주 주변의 모든 교회들이 건축할 때면 교단이나 출신을 따지지 않고 병원에서 돈을 한 보자기 가져다가 헌금을 하곤 하였다. 목사들을 돕고 교회의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였다. 한번은 지방 평신도 모임에서 식사를 하는데, 많이들 남기고 일어서려 하니까 환경식사! 환경식사!” 소리 지르셨다. 음식쓰레기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말이었다. 후배 장로님들에게 신앙생활 바로 하라고 막 꾸짖어도 그분을 아는 후배 장로 권사들은 하나도 노여워하지 않고 다 들었다.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훈계였기 때문이다. 그의 장례는 원주에서 시에서 치러주는 사회장으로 치렀다.

장기려 박사는 평안북도 용천 출생으로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나고야제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고 실력자였다. 길에 거지가 구걸하자 자신의 수중에 있던 모든 돈을 다 꺼내주었으며 며칠 후 일본 순사가 그 거지를 잡아서 이 사람에게 돈을 준 것이 맞습니까?” 묻자, “제가 준 것이 맞습니다.” 하여 일본 순사가 그 자리에서 거지를 풀어준 일도 있었다. 시장의 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워도 어떠한 의심 없이 깍지도 않고 물건을 샀다고 한다.

평양의과대학, 김일성종합대학 외과 교수를 지내던 중 6·25 전쟁으로 월남하여 피난민들로 가득한 부산에 복음병원을 세웠다. 전쟁 중에는 부상당한 사람들이 장기려 박사가 있는 곳으로 몰리니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보았으며, 그곳에는 상시 의료용품이 구비되어 있을 정도로 치료에 어려움이 없었다 한다.

단 한 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그는 어떠한 환경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며 주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환자를 돌보고 치료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와 다섯 아들을 이북에 두고 내려와 항상 그리워하며 자신의 재산은 모으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다 한다. 그는 둘째 아들만 데리고 나왔는데, 그 아들과 손자까지 의사가 되어, 모범된 가정으로 봉사하였다. 그의 기독교적 가치는 1968년 의료보험 창설에도 나타난다.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의료수가가 낮은 이유는 인건비 부분을 제외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바보의사" 장기려 박사가 창설한 의료보험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외에도 모범이 되는 훌륭한 크리스천 선생님, 교수님들이 많다. 공무원 가운데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크리스천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장사하는 사람, 자기 사업을 일으킨 사람 중에 훌륭한 크리스천으로서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이 있다.

한국유리 사장이셨던 고 최태섭 장로는 젊은 때부터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은행 대출금 상환 만기가 닥쳤다. 그러나 당시 6.25가 터져 모든 업무가 마비되었다. 그런데 최사장은 1.4 후퇴 시, 부산 피난시절에 은행으로 찾아가 빌린 돈을 갚았다. 전쟁 때이기 때문에 만기 상환하라는 독촉도 없었을 때이다. 이렇게 정직과 신용의 일화로 소문난 최 사장은 전후 복구 사업을 할 때 신용을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지원을 받아 마음껏 사업을 펼쳤고, 결국 국내 최대 유리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그가 사업을 키운 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돕고 교회를 지었으며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을 길러냈는지 모른다. 그 부인은 평생 나보다 행복한 여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큰소리치며 살았다고 한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사회에서 모범이 되고 교회에서도 많이 봉사하여 빛처럼 소금처럼 그 사명을 다 하는 평신도가 되려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도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을 일곱 세웠을 때 교회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이런 사람들을 세우니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유대교의 지도자인 제사장의 무리가 기독교로 많이 개종하여 돌아왔다.

외적 성공, 영향력은 내적 능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기 때문에 훌륭한 평신도가 되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요 교회에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하고 믿음과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 어떻게? 기도해야 한다. 말씀을 항상 영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개인 묵상 시간, 교회생활의 성실함, 이런 것들을 지켜야 온 세상에 복음을 행하는 훌륭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만 예로 들어 얘기하니까 보통 사람들은 훌륭한 평신도가 못 될까 하실지 모르겠다. 아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자기 삶에서 정직하고 신실하며 경건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될 때, 나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는 작은 빛도 귀하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빛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되자! 이 땅 위에서 건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이 봉사하다가 주님 오라 하시면 다 두고 천국으로 가기 바란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는 평신도 일꾼들에게 하나님께서 교역자들이 받는 복보다 더 큰 복을 허락하실 줄로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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