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0-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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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잠언23:22-25 |
설교제목 | 부모 즐겁게 해드리기 |
부모 즐겁게 해드리기
잠언23:22-25
2020년 9월 27일 [성령17주/ 추석앞주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추석풍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고향으로, 부모님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주춤하고 휴양지로, 쉴 곳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제주나 삼척 같은 곳의 휴양지 숙소 예약이 꽉 차버렸다고 한다. 예전에는 시골집으로 ‘효자가 옵니다.’ 하였는데, 요즘 우리 주변에 붙은 플래카드를 보니까, <불효자는 옵니다.> 이렇게 되어 있더라. 예전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했는데, 요즘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정의 주요 모임마저 포기해야 하는 삭막한 때이다.
미국의 여성작가 펄 벅은 ‘어머니’(The Mother)라는 중편소설을 펴냈다. 중국대륙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이씨의 처로 소개된 이름없는 시골여자가 주인공이다. 이 여자는 시어머니를 부양하며 세 자녀 어머니로서 농사를 짓는 농사꾼 여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유없이 남편이 가출을 해버린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이 문제다(!). 어머니는 굴하지 않고 남편이 버린 가정을 지킨다. 세 아이는 홀어머니 밑에서 탈없이 성장하는 듯했으나 불행히도 둘째인 딸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
장남은 농삿일을 어어가지만 결혼 후에 고부간의 불화가 생겨 어머니는 눈먼 딸과 막내 아들만 편애하게 된다. 맹인인 딸은 출가하나 곧 병사하고 둘째 아들은 공산주의자가 되어 혁명의 와중에 사형을 당하고 만다. 작가는 이 소설 속의 어머니를 통하여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생명의 담당자로서의 어머니의 생활력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다. 모든 모성은 위대하다. 그중에서도 자식을 향한 어버이의 사랑은 어떤 피조물보다도 인간이 특별하고 위대하다.
오늘은 추석을 앞둔 주일이다. 주 안에서 그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감사하며, 자식된 도리를 생각하는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명절이라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우니 제발 찾아오지 말라고 하면서, 코로나방역 당국은 ‘방콕’ 명절을 권유하고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들이 안 와도 된다, 제발 집에서 추석을 보내라고 오히려 사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바깥에서 선행을 이루기 전에 먼저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이뤄야 한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25절) 우리 모두는 어버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 우리 부모를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여러분의 어버이는 여러분 때문에 즐거워하는가, 근심하며 슬퍼하시는가?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여 묻고 계심을 느끼시라. 어떻게 하면 부모를 즐겁게 해드릴수 있는지, 잠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보자.
1. 부모님을 존경하라. 자식들로부터 존경받는 부모는 자신감이 있고 웃음이 늘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들이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늘 불평하는 집의 부모는 초조하고 비굴한 사람이 되고 만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22절) 청종이나 경히 여기지 않음은 존경하지 않고는 안된다.
떠오르는 해와 같이 장성해가는 자녀들의 눈에는 늙어가는 부모님이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평과 원망의 대상이 될 때가 많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 때문에 부모님을 괴롭히고 자신도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양육하고 교육하기 위해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셨으며, 어려운 인생길을 많이 걸어오셨기 때문에 존경해야 한다.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실려있었다. “갓 태어난 영아의 행동과 같은 또래의 동물의 행동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나 몇 년 뒤에 양자를 비교하면 어린이 쪽이 훨씬 훌륭하게 자랐음을 볼 수 있다. 이 우월성은 주로 부모의 교육 덕분이다. 방치해두면 인간의 아이는 내내 동물의 수준 정도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야생의 동물 속에서 성장한 아이에 대한 관찰기록들이 잘 보여준다.”
부모는 우리를 사람의 자식으로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도록 키우셨다. 우리 생명은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잉태되고 가정에서 싹트고 성장한다. 모든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도 가정에서 시작된다. 신앙도 가정에서 자란다. 그러다보니 좋은 면 존경스러운 면만 있는 게 아니라 어른들에게서 원치 않는 약점을 발견하고 낙심하기도 한다. 괴팍스런 성격이나 습관을 보기도 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자식은 부모의 인격과 역량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나님 섭리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함이 마땅하다.
이젠 봉건적 가족제도에서 우애적 가족제도로 바뀌었다. 권위있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모습보다는 부모를 사랑하며 공경하는 모습을 추구한다. 부모 중심의 상향적 가정에서 부부 중심의 평행적 가정으로 나아가고, 이제는 자녀 중심의 하향적 가정으로 변모되고 있다. 그렇다라도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자녀도 잘 돌볼 수 있는 법이다. 자녀 세대에게 부모가 자기 생활과 가치관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부모님께 자녀들이 자기들의 생각이나 판단을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해서는 안된다.
존경은 마음자세에서 시작하여, 구체적인 대접과 돌봄으로 나타나야 한다. 요즈음 부모 소외와 노인 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동양의 노인들은 유교 문화권에 속해있어서 60년대까지만 해도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권위있는 존재로 존경받고 대우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노인 존중의 풍속이 크게 감퇴되어 정서적으로 고독과 소외감에 시달리고 있고, 생계의 위협과 질병의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노인이 늘어나다보니, 점점 노인 돌봄을 자녀에서 국가가 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부디 여러분은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존경하라.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19:32) 용돈을 넉넉히 드려 필요를 채워드리고 맛있는 것을 대접해드리라!
2. 다음으로, 자녀된 이들이 지혜롭게 말하고 행함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릴수 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23절, 24절하) 용기있는 사람과 재능있는 사람은 많으나 지혜로운 사람이 적다. 21세기는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과거에는 의지가 강하고 인내심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었다. 자기 분야에 실력과 재능을 갖추고 있으면 누가 뭐래도 살아가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용기와 재능,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지혜로와야 행복하게 살 있다. 지혜가 없으면 문제를 일으키고 갈등을 빚는다. 지혜로우면 효자가 될수 있다.
부모님께 지혜롭게 말하라. 우리 어머니는 살던 곳을 떠나지 않으신다 하며 80대 중반에 경기도에서 혼자 사신다. 맏아들인 나와 맏며느리인 아내는 어머니가 어느 때보다 걱정된다. 그런데 며느리가 말을 지혜롭게 해서 어머니에게 큰 위로를 드리는 것 같다. 수시로 건강을 묻고, 긍정적인 말로 위로해 드리며, 필요를 채워드리고, 식구들의 소식과 안부를 전하며, 위로하고 사랑의 말로 힘을 북돋워 드린다. 나나 아내가 전화드리거나 어머니가 전화하면 꼭 아들 며느리를 서로 바꿔라 해서 한참을 전화하기를 좋아하신다.
지혜로운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이다. 부모님은 자식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자식을 이해하려고 안달이 나있는 분들이다. 그러니 지혜롭게 부모님께 말하면 부모님이 정말 기뻐하신다. 부모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지적하여 부모님으로 하여금 열등감과 비굴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되며, 다른 가족이나 다른 부모와 비교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긍정적인 말과 밝은 태도로 부모님을 대하라. 만날 때마다 부모님을 웃겨드리자. 부모님이 여러분을 보실 때 자신감과 행복감을 느끼시도록 해야 한다.
지혜는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알고, 무엇이 먼저요 나중인 줄을 분별하는 자세이다. ‘하나님이시여, 제게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할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헤아려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다. 자식이 지혜롭게 생각하고 말하면 부모가 즐겁고 평온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3. 무엇보다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려면 의롭게 살아야 한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24절상) 본문에서 제일 강조하는 부사가 쓰였다. 자식이 바르게 살면 부모가 크게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의로운 자녀는 부모의 자랑이며 기쁨이지만 범죄와 타락에 빠져 허덕이는 자식은 가정의 수치요 부모의 근심거리다. 자식이 옳고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여 반듯한 삶의 결과들을 보여줄 때 부모는 가장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부모는 자녀들이 자기 인생을 바르게 살 때 마음이 놓인다. 그런 자녀를 가진 어버이는 근심 대신 평화를 누리며 수치 대신 영광을 얻는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잘못된 삶을 사는 자녀들 탓에 노심초사하며 하루를 천날같이 불행하게 보내고 있나? 마약을 사용하는 연예인의 부모, 집을 나가 타락 방탕하여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게 몸과 마음이 망가진 자녀를 둔 집, 수배 중이거나 감옥에 자녀를 둔 양친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짓만 하여 늘 학교에 불려가 죄인처럼 용서를 비는 부모의 마음에 무슨 평안과 기쁨이 깃들 여유가 있겠는가!
구약의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불량자였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구약성서에도 유명한 악동들이다. 결국 엘리는 두 아들이 전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한다. 부모의 즐거움은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 영혼이 잘 되는 데 있고, 또 세상에서도 반듯하게 자리를 잡고 기반을 닦아 자기 삶을 바르게 가꾸어 가는 데 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사업과 직장과 학업과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란다. 신앙생활 잘하는 자녀들을 둔 부모는 안심이 되고 기쁘다.
지금 한국사회의 위기는 지나친 개인주의에 있다. 과거처럼 공동체에 모든 것이 묻혀버리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무시되는 사회도 좋은 사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즈음처럼 모든 문제마다 개인의 권리와 의사가 지나치게 우선되고 존중되다보니 되는 일이 없는 사회도 문제다. 아니, 전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으로 골머리를 앓는 마당에 굳이 광화문 광장으로 사람들이 몰려가 시위를 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금지하는데도 차량까지 동원하여 시위하는 것은, 아무리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사회라도 재고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인전에는 핵가족사회가 되었다고 하더니, 요즘에는 혼자 사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혼밥족’이 늘어나서 혼자 밥먹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점 도시락이 다양화, 고급화되는 중이고, 혼밥족을 배려한 탄막이 라면집, 고깃집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혼자 노는 것을 ‘혼놀’,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혼곡’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다보니 더욱 개인의 고독을 장려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승만이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고 말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 살더라도 마음의 거리를 없애고 하나되어 연합하는 공동체 사회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물론 가정에서 시작된다. 자녀들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 부자로 살지 못하거나 권력자로 살지 못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국회의원이고 다 장관이라면 말단 공무원이나 청소부는 누가 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인생을 의롭게 다스리며 지혜롭게 처신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1등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자녀의 모습이다.
현대인은 가정파괴현상이라는 이전에 볼수 없었던 위험한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삶과 이 사회의 기초가 되었던 참된 가정의 안정감과 친밀감이 송두리째 사라지려 하고 있다. 부모를 마다한 가정, 부부끼리 등 돌린 가정, 자식들을 내치는 가정이 불안한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 험한 파도는 우리 가정에도 넘쳐들어올 수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 모두가 파멸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추석에 놀러만 다닐 것이 아니라 추석예배 드리면서 가정을 돌아보라!
어린 꼬마가 아버지와 함께 목욕갔다가 나오는 길에 출출하여 만둣집에 갔다. 3천원을 주고 만두 8개를 사서 아들에게는 만두 3개를 주고 아버지는 5개를 먹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배부르지?” 했더니, 그 꼬마 아들이 중얼거리기를 ‘3개 먹고 배부르면 5개 먹은 놈은 배 터져 죽겠네!’ 했다. 아이들이 다 안다는 것이다. 믿음의 가정을 만드는 것은 말로 되는 게 아니고 생활과 인격으로 전승되는 것이다.
알렌 워커라는 호주 교계의 지도자가 한국에 와서 이런 간증을 했다. 9대조 할아버지가 영국에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호주로 유배되어 온 가정이다. 호주는 죄수들의 후손들인 셈이다. 감옥에서 호주생활을 시작했다. 9대조 할머니도 절도죄를 짓고 호주 감옥에 왔다. 그분들이 결혼을 하고 후손을 보아 자기도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살인자와 도둑의 가정에서 목사와 감독이 9명이나 나왔다. 우리 같으면 부끄러워 얘기도 안했을 텐데 솔직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믿음의 가문이다. 성직자 가정이 되었다.‘하며 간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로헌장에는 ”노인은 우리를 낳아 기르고 문화를 창조 계승하며 국가와 사회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여 온 어른으로서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노후를 안락하게 지내야 할 분들이다.“라고 하였다. 늙으신 부모에 대한 존경과 순종, 그리고 근심없는 생활에 대한 보장이 있어야 함을 천명하였다. 작가 생텍쥐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모들은 우리의 어린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분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
사회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은 21세기에 이르러 가정은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참된 가정을 이루는 안정감과 친밀감이 없이는 문명도 계속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라! 마음으로부터 부모님을 존경하고 좋은 것으로 대접하며 드리라! 부모님께 지혜롭게 말하고 행하라! 옳고 바르게 자기 인생을 가꾸어 가라! 이와같이 부모를 즐겁게 할 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할 것이요, 땅에서 장수하며 복을 받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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