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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아닌 교회 (학개2:1-9) [2020년 11월 8일, 성령강림 23주일]
2020-11-07 14:13:29
박신진 목사
조회수   37
설교일 2020-11-08
설교말씀 학개2:1-9
설교제목 건물이 아닌 교회

건물이 아닌 교회

2:1-9

2020118[성령강림23주일]

 

다니엘기도회, 시간 시간마다 은혜다. 셋째날 천정은 자매 간증에 큰 은혜를 받았다. 서른 아홉에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 이미 몸의 여러 장기와 뼈에까지 전이되어 큰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죽음을 생각하고 슬퍼하면서 지옥이 있을까,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 그렇게 하나님을 찾아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금 47세이니까 8년이나 살면서 암을 이겨내고 있다. 완전히 암이 물러간 것은 아니나 예수님과의 사랑 속에서 위로를 받고 삶의 의미도 찾았으며 죽음의 도전도 완전히 받아들이고 두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젊은 여성이지만 인생을 이겨낸 전사를 보는 듯하였다.

그 자매는 교회를 싫어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통성기도하는 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고. 그러나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이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께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에 감동하여 지금은 천사처럼 보인다고 한다. 멀리 있는 교회를 일주일에 몇 번씩 찾아가며 몇 시간씩 기도하고 예배로 힘을 얻는 그녀는 교회가 천국을 미리 맛보는 장소로 여기는 듯 보였다. 언제 죽을지 몰라도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았다면서 예수님과의 사랑이 날마다 충만하고 기쁘다고 간증하였다.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주는 간증이었으나, 교회의 위대함과 사랑스러움을 간증해 주었다.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 함께 이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초유의 사건이라고 황당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세계적 전염병은 처음 있는 비극은 아니고 인류역사에 여러 번 있었다. 기원전 430년 필로폰네소스 전쟁 때 번진 장티푸스로 아테네 시민 3분의 2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165년에 훈족에서 전염된 천연두는 로마제국을 위험에 빠뜨렸고 아우렐리우스 황제까지 천연두로 희생되었다. 그 병으로 로마 시민이 하루 5천 명이 죽기도 했다.

1337년부터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전역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347년 흑해에서 실크와 도자기를 잔뜩 싣고 시실리의 메시나항에 도착한 무역선에는 새까맣게 죽어있는 주검이 방치되어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병이 옮는다고 여긴 시민들이 주변 시골로 도망쳤지만 흑사병은 하루 평균 3km씩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1차 세계대전에 이어 1918년에 퍼진 스페인독감만 해도 5천만 명의 희생자를 내었고, 우리나라에도 퍼져서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 삼척 원덕에 60대 확진자 한 명이 발생했는데, 그분은 전염된 사람도 누군지 알고, 확진된 기간에 만난 사람들도 몇 안 되어 다 음성 판정을 받아 안전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전염을 무시하고 대처하지 않아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하여 위축될 필요도 없다. 조만간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이 뉴노멀로 정착될 것이다. 마스크를 끼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북적대는 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여기에 교회의 예배 또한 심각하게 언택트(비대면)를 강요받는 상황이다. 교회는 모임이 없으면 유지되기 어려운 신앙고백의 공동체이다. 모여서 예배하고 흩어져 전도함으로 복음을 온 땅 위에 전하려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다. 그런데 질병 때문에 건강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모이기를 금하는 시대에 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주일은 추수감사절인데 예배를 어떻게? 교회가 무엇인가, 믿음은 어떻게 지켜질 것인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신앙의 노력을 멈출 수 없으나, 새로운 세계관에 따를 교회론을 제시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영성의 발전과 지속가능한 복음전파의 가능성을 강력하게 가다듬지 않으면 전염병의 창궐이 복음의 위기로 다가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학개는 포로 후기에 이스라엘의 예언자로 성전재건을 위해 백성들을 격려했던 사람이다. 그는 별로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권고와 비전을 힘입고 유대가 하나님의 전을 재건함으로 제2 성전시대를 열게 했던 예언자이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려고 백성들을 일으켰으나, 자연 재해와 열심 부족, 반대파들의 방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학개가 성전 재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학개는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은도 하나님 것이요 금도 하나님 것이니 건축에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 또 이전 성전의 영광보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더욱 클 것이다!” “성전을 완성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학개는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성전을 짓는데, 믿음으로 지으면 나중 영광이 훨씬 클 것이고, 성전에서 평강이 있으리라고 약속한다.

요즘 깨어있는 교회들이 교회가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야흐로 성자, 성령, 성부 시대를 지나, 요즘은 교회론을 배우러 노력하는 시대이다.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학개 시대의 백성들이 새 성전을 기다리듯이 새로운 교회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이제는 건물이 아닌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꿈꾼다.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 알고 그 교회를 세워가는 일을 위해 교회 안에서부터 많은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건물이 아닌, 우리 시대에 새롭게 세워질 교회는 어떤 것인가?

 

1. 교회는 믿음이다. 크고 편리한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큰 교회 건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른 믿음을 가지는 일이다. 교회는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교회로서의 본분과 역할을 할 수 없기에, 교회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교회가 곧 믿음이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지나시다가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그러자 제자들이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하였다. 예수께서 이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다. 그때 베드로가 일어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너무 기뻐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 하셨고, 이어서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미치지 못하리라.” 하셨다.

여기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이 반석이 무엇이냐는 데 의문을 가졌다. 교회를 세우는 기초가 되는 반석그것이 베드로라는 지도자, 성직자냐, 아니면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이냐? 전통적으로 캐톨릭교회는 교회는 베드로 교황 위에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하였다. 성직을 교회의 핵심으로 보아 매우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회는 입장을 달리 한다. 예수께서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하심은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이다! 주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으로 보는 믿음이 있어야 교회가 된다!!

여러분! 믿음을 가져야 한다. 교회만 다니면 안 된다. 교회 안에 직분만 가진다고 되는 게 아니다. 목사님 아들, 장로님 딸이라고 되는 게 아니다! 개척 때부터 다니거나, 수십 년 다닌 토박이라고 되는 게 아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마음속에 가지고 뚜렷하게 표현하고 고백할 수 있을 때, 또 세상에 나가 믿음을 보여주고 실천할 때, 여러분의 그 믿음이 바로 교회를 이룬다.

선교회로 모이면 믿음을 표현하고 믿음을 자라게 하라! 믿음이 없으면 교회의 지체로서, 작은 교회로서 자격이 없다. 속회로 모이면 믿음을 증진시켜라!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행동을 하라! 예수를 여러분 주인으로 고백하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로 생활로 표현하라. 그때 그 믿음 안에 교회가 설 것이다!!

 

2. 교회는 사람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심은 신앙을 가진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라고 쓴다. ‘에크무엇으로부터’, ‘클레시아부름받은 사람들이다. 세상으로부터, 죄로부터 부름받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교회다.

사람이 없으면 교회가 아닌가? 그렇다! 사람이 없으면 교회당일 뿐이지 교회는 아니다. 영국에 갔더니 교회를 전시장이나 심지어 까페로 세를 준다는 포스터가 교회 앞에 붙어있다. 사람이 없어서 교회가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내 가운데 교회를 빌려주어 고급 까페로 운영하는 곳이 있었다. 저녁이면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시면서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듣고 즐기는 곳이다. 이런 곳은 제단이 있고, 십자가가 있고, 교회의 모든 시설이 있어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 교회에 한 병든 소녀가 찾아왔다. 하지만 교회가 너무 좁아 그 소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교사는 소녀에게 말했다. “나중에 다시 오렴. 지금은 너를 받아줄 수 없구나.” 소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이 소녀는 교회에 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소녀의 베개 밑에서 목사에게 보내는 짧은 유서와 동전 57센트가 나왔다. 유서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저도 교회에 가고 싶었어요. 제가 모은 이 돈으로 교회를 좀 넓게 지어 주세요.”

목사는 소녀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유서를 읽어주었다. 사람들은 소녀의 유언에 큰 감동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 결과 템플 교회는 크게 증축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선한 사마리아 병원과 미국의 명문인 템플 대학이 설립되었다. 나중에라도 소녀를 받아들인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떠나면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모여 함께 예배하고 일할 때 그곳이 교회다!

 

3. 교회는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즉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곳이 교회다. 그러므로 교회 건물만 있고 그리스도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유럽의 교회는 크고 웅장한 카테드랄’, 엄청난 교회건물을 짓느라 많은 세월을 허비하였다. 건물을 지으면서도 교회의 할 일을 해야 하는데, 교회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일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전도하는 일을 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고 교회에 사람이 없으니 건물도 의미가 없는 문화재가 되고 만 것이다.

교회는 친목해야 한다. 화목하게 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교회다! 교회의 이름으로 동네에 즐거운 일들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주일예배 후 식사를 요즘엔 하지 못하지만, 이번 주에도 자녀결혼감사 떡이 있고,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 떡을 나눠주려고 한다. 하던 공동식사를 못하니 많이 허전하다. 그전에는 예배 후에 그냥 식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못하면서 보니까 친교의 의미가 있다.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하고 눈빛을 주고받는 가운데 친교가 이뤄진다. 교회는 친목공동체이다. 여선교회의 바자회도 물건을 준비하고 나누며, 이 시기에 음식을 만들어 포장하여 삼삼오오 나눠먹으니 더욱 새롭고 정이 전해졌다. 주 안에서 즐겁게 교제하며 어울리는 것, 이것이 교회다!

교회는 전도해야 한다. 교회를 통해 새로 예수를 믿고 신앙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우리 동네가 다 예수를 알고 구원의 진리를 믿기까지 우리의 이 노력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도 아니다. 교회 바로 옆에 사는 사람이 수년이 지나도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믿지 않았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겠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왜 교회가 되지 못했냐고 책망하시며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 영혼이 구원되고, 믿음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다가, 주님 부르실 때 천국으로 가는 이 은혜를 누리게 해야 한다.

교회는 봉사해야 한다. 주님이 세상을 섬기시고 약한 자와 따돌림 받는 사람과 부정한 사람을 자기 식구처럼 돌보신 것처럼 교회도 주님처럼 섬겨야 교회다. 만약 교회가 동네 가운데 십자가를 높이 걸고 동네가 죽든 말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주일 예배를 자기들끼리 드리는 데에만 치중한다면, 그런 교회가 별로 없겠지만, 그것은 건물이 아무리 웅장해도 교회가 아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세상을 섬기고 하나님나라가 성취되는 기쁨을 알아야 한다.

하버드대학의 헨리 뉴웬 박사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그는 늘 정상의 자리에 있었다. 그의 책은 모두 베스트셀러였고 많은 보수를 받으며 인기있는 교수요 작가로 살았다. 어느 날 뉴웬은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 지체아 보호시설인 데이브레이크의 직원으로 취업했다. 그가 하는 일은 정신지체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시키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대학자가 왜 제자들을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합니까?” 그때 뉴웬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 동안 성공과 인기라는 이름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달려왔어요. 그러다가 한 장애인을 만난 후, 내리막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오직 만 보일 뿐이지요.”

 

우리는 교회의 좀 더 나은 예배와 사역을 위해 교회건물을 짓거나 수리한다. 이번에도 수천만원을 들여서 첨단 디지털 카메라 4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건물이나 설비보다는 그 속에 진정한 교회를 세우는 데 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새 교회를 세우자! 이전 교회의 영광보다 더 클 것이며 여기에 평강이 있을 것이다. 교회는 믿음이라는 것, 이해하시기를! 뿌리 깊은 바른 믿음이 있는 곳에 교회의 영광이 있다. 교회는 결국 사람이다. 에클레시아! 부름받은 믿음의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믿음의 역사를 써가는 곳이다. 교회는 일하는 곳, 예배와 친교와 교육과 섬김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다음 주 감사절을 지킨다. 추수감사절 하면 헌금드리는 날로만 생각하여 부담을 가진다. 사실은 감사를 발견하는 주일, 1년 동안 지켜주신 은혜를 고백하고 행복해하는 주일이다. 믿음은 지속적으로 감사하는 힘이기도 하다. 매일 낮과 밤이 있듯이, 항상 삶에는 즐겁고 형통한 면과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다. 그런데 어두운 밤과 같은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 믿음이다. 밤에 하늘이 까맣게 보이지만 사실은 밤에도 하늘은 파랗다. 사진기로 노출을 눌러놓고 20초쯤 셔터를 누르면 하늘이 파랗게 드러난다고 한다. 어려울 때에도 20초만 긍정적으로 깊이 생각하라! 감사를 회복하게 된다!

교회로 인하여 평안, 구원의 기쁨, 회복이 있다. 감사해야 할 첫 번째 이유는 교회 주신 것이다. 교회에서 고치신다! 교회에서 복 주신다! 교회에서 인생을 바로 세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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