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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 일꾼을 세우다 (행6:1-7) [2020년 12월 6일, 대림절 둘째주일]
2020-12-04 15:50:27
박신진 목사
조회수   65
설교일 2020-12-06
설교말씀 행전6:1-7
설교제목 예루살렘교회, 일꾼을 세우다

예루살렘교회, 일꾼을 세우다

행전6:1-7

2020126[대림절 둘째주일]

 

사람이 중요하다. 대전에 80이 되신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유교집안이라 하나님 믿는 도리를 몰랐다. 아들이 예수 믿고 아버지에게 전도했지만 너나 잘 믿으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육체에 질병이 왔다. 82년에 어려운 수술을 하다가 반신불수가 되고 성대를 건드려서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되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의지하였다. 주님을 의지하니까 몸도 많이 낫고 목소리가 나오게 해주셨다. 그러던 와중에 고혈압과 허리디스크가 생겨 두통과 요통으로 고통이 더 심해졌다. 마침 나가던 교회에서 성경쓰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분은 붓글씨로 성경을 필사하겠다고 자원했다. 아들이 그냥 볼펜으로 쓰시라고 해도, 자신은 붓으로 쓰겠다고 고집하였다.

한 자도 빼지 않고 손으로 쓰고 입으로 읽느라고 한줄 한줄 쓰다보니 한번 썼는데 결과적으로는 성경을 5독 이상 한 것이 되었다. 요즘 우리 교회에도 성경 쓰시는 분들이 있다. 내년에는 연초에 온 교인이 복음서 한 권을 쓰면서 말씀을 익히는 운동을 일으키려고 한다. 어쨌든 놀랍게도 이 할아버지가 성경을 다 쓰고 나니까 혈압이 떨어져 두통이 사라지고 허리디스크 통증이 사라지는 기적을 체험했다. 80이 되신 분이 붓글씨로 성경을 쓰니까 얼마나 허리가 아팠겠는가! 그런데 거꾸로 허리 아픈 것도 낫고 머리 아픈 것도 나았다. 모두가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니겠지만,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이 기적으로 역사하셨다는 얘기다. 이분의 이야기가 교회에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미쳤겠는가! 교회 부흥에 큰 역할을 하였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극적인 부흥을 경험하였다. 처음 제자의 수효가 120명이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행2:42을 보면, 하루 3천 명이 주께로 돌아왔다. 거기에서 다시 44절을 보면,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 명이 되었다. 마침내 514절을 보면 남녀의 큰 무리를 이루었는데 아마 1만 명은 된 것 같다. 이렇게 교회의 급성장은 축하할 만한 일이었으나, 거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도 끼어들게 되었다.

행전 5장에 보면 헌금봉헌 사건으로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었고, 6장에는 과부를 돌보기 위해 매일 양식을 제공한 사건으로 누가 많이 받고 누가 적게 받았다고 시비가 생겨 교회가 둘로 갈라질 뻔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주 유치한 먹는 문제 때문에 교회가 시험에 빠질 때가 많다. 큰 부흥을 즐거워할 겨를도 없이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당황한 사도들은 평신도 일꾼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그들에게 봉사와 섬김의 일들을 맡겨서 일을 처리하게 하였다.

역사적인 교회는 하늘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다. 보이는 교회는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고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사람이 참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할아버지 한 분이 성경쓰기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간증할 때 교회는 부흥되고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선한 영향력이 미치는가 하면, 반대로 예루살렘교회처럼 교회에서 음식 먹는 문제로 시비가 생겨 부흥의 결과를 깎아먹고 교회가 내부분열되는 때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서도 언짢은 문제가 발생하고 곤경이 뒤따르기도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사람들에게서 생기는 것처럼 해결도 일꾼을 잘 세울 때 이뤄진다.

부름 받은 평신도 일꾼들은 현실적인 교회의 보배로운 인적 자원이다. 교회가 어려울 때 그들의 헌신에 대한 바람은 더욱 커진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평신도는 섬김의 일선에 서서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평신도의 봉사와 헌신이 메마른 교회는 무기력하고 물이 흐르지 않는 개울처럼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누가의 책인 사도행전은 베드로 야고보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의 발자취를 잘 보여주지만, 평신도의 발자국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처음 교회를 빛냈던 일꾼들의 역할과 업적을 배우자. 그들이 잘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져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예루살렘교회 최고의 부흥을 이루었다.

 

1.원망을 없애야

먼저, 일꾼들은 원망을 없애야 한다. 오늘 본문 1절에 일곱 일꾼을 뽑게 된 배경을 설명할 때,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고 하였다. 사랑의 공동체 안에 원망의 독소는 위험천만한 걸림돌이다. 원망의 걸림돌부터 치워야 교회가 부흥될 수 있다. 헬라어를 쓰는 이방 유대인들이 홀대를 받고 대신 아람어를 말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우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토박이들과 들어온 이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다. 한쪽을 편애하거나 더 배려하는 것이 다른 쪽의 원망을 사는 계기가 되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 민족의 원망 잘하는 정서를 망국병으로 규탄하였다. 중국의 회남자원망을 크게 사는 자는 화도 크게 산다.”고 경계하였다. 동양 고전 <중용>에서도 이르기를, “군자는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면 왜 그리 원망이 많은지 모르겠다. 사람들끼리 시간을 죽이면서 주로 하는 일이 남을 원망하는 뒷담화인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소동단결은 잘하나 대동단결을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작은 우리끼리의 모임은 잘하지만 더 큰 우리로는 잘 뭉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굳게 세우기 위해서 일꾼은 먼저 원망지심을 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본문의 신실한 일꾼들은 그 일에 칭찬 듣는 주역이었다. ‘원망을 풀어주는 사람으로 초대 일곱 집사들은 선발된 것이다. 교회는 가장 순전한 모임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다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충실히 따르지 않으면 언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러므로 교회가 원망과 불평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선출직 일꾼들을 화해의 심부름꾼이요 화목하게 하는 일꾼들로 뽑아야 한다!!

사람들은 오해를 일으켜 원망할 수 있다. 1)인간의 한계인 지혜의 부족은 엉뚱한 판단을 하게 하고 선입견이나 자격지심으로 평화를 깨뜨리는 오해를 마음에 품을 수 있다. 마귀 사탄은 생각지도 못한 오해의 마음을 성도들에게 심는데, 오해받는 사람도 괴롭지만 오해하는 사람도 결코 평화롭지는 못하다. 어디에서나 쉽게 자리잡는 오해는 지옥의 어두운 그림자다. 2)사람들은 이해관계 때문에 원망할 수 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반대에 부딪힐 때, 마음에 상처를 입고 화목이 깨진다. 서로 간의 팽팽한 긴장감은 서로를 힘들게 하고 돌같이 경직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재앙의 양은 커진다. 이해관계의 원망을 내려놓으라. 조금 손해본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내게 유익이다. 3)또 사람들은 성격의 차이로 원망을 가질 수도 있다. 사로 다른 기질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개인이 지닌 경향이나 성격은 지속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불협화음을 이루면 좀처럼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자기 선입견과 자격지심이 어떤 일과 부딪치면 자존심의 상처를 입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므로 성도는 기도하면서 이런 오해(지혜부족, 이해관계, 성격차이)가 자리잡지 못하도록 자신을 지켜야 한다.

예루살렘교회의 일꾼들은 바로 이 중요한 일을 맡은 자들이다. 그들은 3절에 나오는 대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기에 이 까다롭고 민감한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도 우리교회를 포함한 지상의 교회들이 원망의 암초에 걸려 구원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여러분이 화해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원망을 하고 있으니 어찌할꼬! 원망하는 사람들에게서 오해와 원망하는 마음을 뽑아내고, 화목의 열매를 거두는 평화의 천사들이 되어야 한다.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일꾼들처럼 가는 곳마다 원망의 앙금을 걷어내고 화목의 아침을 여는 복된 사람들이 되라!

 

2.접대를 잘해야

다음으로, 신실한 일꾼들은 접대를 잘해야 한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라고 하였다. 그 해결방법은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3)라고 되었다. 대접이란 식탁봉사, 즉 음식대접을 가리키는데, 공동번역에서는 식량배급이라 했다. 일꾼들은 섬김과 봉사의 분야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재정을 뜻하기도 한다.

섬기는 일에는 준비가 있어야 하고 희생이 따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상이라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준비가 없이는 거짓이 되고 만다. 실천이 없는 공론은 허무할 뿐이다. 그래서 로마의 격언에는 고통 없이는 사랑하며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처음 교회의 평신도 일꾼들은 음식 대접하고 섬기는 일을 하도록 뽑혔다. 오늘의 평신도 일꾼들도 교회를 부흥시키려면 그때의 일꾼들처럼 대접과 섬기는 일을 잘하면 된다. 나는 목사의 아들로서 교회생활을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어렵게 사는 교인들이 대접하고 섬기는 일을 잘할 때 교회가 크게 부흥하더라! 이런 일꾼들을 많이 가진 교회는 부러울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

나약한 평신도 일꾼들은 자기의 것을 내놓기를 아까워한다. 그런 이들일수록 다른 이들의 것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며 희생적인 봉사보다는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 더 관심을 가진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공궤의 일에는 인색했으나 명예를 다투고 행세를 탐하는 일에는 뒤지지 않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내놓지는 않고 거두기만 하며 섬기지는 않고 높임을 받으려고만 하는 일꾼은 교회를 병들게 한다. 그런 이들은 교회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공동체의 열심을 죽인다. 여기 집사들은 원어로, ‘디아코니아로 불렸는데, 이름 자체가 봉사, 즉 섬김, 접대이다. 직분이 칭송받는 것이 아니라 대접과 섬김이 칭송받는 것이다.

실제로 빌립보교회의 루디아는 자기의 집을 복음 전하는 곳으로 내놓았고(16:15),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바울 사도의 눈이 안좋다니까 눈이라도 빼어주려 했으며(4:15), 아가야 지방의 전도를 돕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곤경에 빠진 사도 바울을 살리기 위해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으려 했다(16:4). 초대교회의 창대한 부흥은 희생없이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교회의 바나바는 자기의 밭을 내어놓았으며(4:37), 스데반은 자기의 몸까지 순교의 첫 열매로 바쳤다. 처음 교회가 누가복음 82-3절에 기록해놓은 내용을 보면, 갈릴리의 여자들 곧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 등도 자기들의 소유로 섬기더라고 하였다. 자기들의 소유를 드려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의 복음전도를 감당하였다.

옛날 작업장 일꾼들 보면 얼마나 비지땀을 흘리며 단합하여 일을 잘하는지 엄청났었다. 연약한 육신의 벗겨진 잔등으로 어여라차 나간다!” 하면서 엄청나게 큰일을 해내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교회 일꾼들의 접대와 섬김은 돌덩이나 통나무를 나르던 옛날 목도꾼들 같이 해야 한다. 자신들의 짐진 희생의 몫은 최대치까지 올리며 서로 도와야 할 힘도 최대치까지 높일 때, 섬김의 열매는 최선의 것을 거둔다! 한국교회는 가난할 때,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이, 섬기고 헌신하여 이룬 열매이다. 부디 대접과 섬김을 일삼는 선한 일꾼들이 되라! 부담을 드리려는 말씀이 아니라, 기왕 직분을 가지고 봉사할 바에야 칭찬 듣고 상급받는 일꾼의 귀감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들이 이런 섬김으로 나설 때 예루살렘교회가 왕성해져서 1만의 성도로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3.주의 종을 도와야

끝으로, 신실한 일꾼들은 주의 종을 도와야 한다. 본문 4절에 보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하였다. 이는 예루살렘교회 사도들이 사람들의 원망에서 벗어나고 접대와 섬김의 일에도 자유롭게 되어 그들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되는 것이 옳은 일이긴 하지만 평신도 일꾼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교회의 평신도 일꾼들은 먼저 자신들이 쓸모 있는 일꾼이 되고, 나아가 목회자들이 보다 큰 일꾼이 되도록 돕는 일에 노력해야 한다. 주의 종이 하나님의 사도로 크게 일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평신도의 기업이다.

오늘날 목회자들, 성직자들은 임원들의 원망과 갈등과 문제들을 다루느라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다. 매일 이러저러한 자잘구레한 일에 신경쓰지 않으면 교회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게 된다. 말씀을 전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전파되게 하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주의 종들이 항상 교회의 일꾼들의 문제 때문에 권면하고 돌보고 섬기는 일에 신경쓰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요즘 목회자들은 초대교회 집사와 같은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히브리파와 헬라파 갈등 속에 일어나는 원망을 해소하였던 일곱 집사 같은 일꾼이 아쉽다.

성숙하지 못한 교회는 매우 의존적이어서 평신도들의 일거리까지 목사들이 해야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성직자가 게으르지 않는 한 자기 임무와 전문성과 영성을 띤 직무에 충성하도록 기회와 여건을 배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평신도 일꾼들이 바람직하게 성장할 때 사도의 지도력은 확대되고 교회는 힘있게 복음을 전하게 된다. 스데반 빌립 같은 일꾼들은 사도들을 돕는 데에서 더 나아가 첫 순교자가 되고 사마리아 전도의 개척자가 되었다. 사도들의 영광과 평신도 일꾼들의 영광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주의 종을 돕는 게 세상에서는 빛이 덜 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큰 상급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안디옥 출신 니골라 같은 집사는 이단자의 두목 노릇을 하여 교회에 많은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주었다. 신실한 일꾼들은 선교의 장애물이 되는 파괴적 세력과는 손을 끊어야 한다.

사울왕의 왕자 요나단은 자기 희생으로 다윗의 생명을 지켜주었다. 이와 같은 보호와 협력 이 없었다면 다윗 왕의 지도력은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명의 양치기에서 전쟁영웅이 되었으나,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인 데에서 끝났다면 다윗은 야만인으로 마쳤을 것이다. 요나단뿐 아니라 다윗에게는 충성스러운 심복들, 장군들이 수십 명 있어서 그가 위대한 이스라엘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목회자들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약한 존재다. 누구 하나라도 목사를 허물려고 하면 큰 상처를 입는다. 임원들이 도와줘야 목회자의 권위가 세워진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전도자 아볼로를 은밀히 도와서 보다 힘있는 사역자가 되게 했다. 신실한 일꾼인 바나바가 다소에서 바울이 일할 기회를 열어주고 그를 향한 사도들의 오해를 풀어주어 신임을 얻게 한 미덕은 유명하다. 우리교회는 110년에 이르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역사의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우는 데 지도자를 세우고 임원들이 협력할 때이다. 지도자의 대한 바람을 여과없이 사람들에게 말하여 본의 아니게 목사와 목사의 가족을 말로 허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마시라! 주의 종을 도와야 지도력이 강해져서 교회가 부흥되고 개인도 복을 받지 않겠는가!

 

예루살렘교회가 한 많은 일 중에 성령 받은 일과 일꾼 세운 일은 제일가는 일이었다. 매년 교회는 일꾼을 세우는 데 골몰한다. 여기에서 많은 문제가 파생되고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일꾼을 세워 그들이 원망을 해소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주의 종을 잘 도와 지도력이 강해질 때 교회는 부흥되고 하나님의 역사는 흥왕하여 갈 것이다. 예루살렘교회의 일꾼들은 그 사역 기간이 길지 않았으나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일을 이루었다. 그들은 시작도 좋았으나 결말이 아름다웠다.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교회의 양적 부흥을 이루었으며 교회의 지도력을 키워 복음의 역사를 땅끝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들이 섬긴 결과, “말씀이 점점 왕성하였고,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

예루살렘교회가 그랬던 것 같이 우리교회에도 영적 과제들이 있다. 덕을 세우고 부흥을 가져올 신실한 일꾼들이 필요하다. 직분을 맡겠다고만 하지 말고 신실한 일꾼이 되라. 직분은 따라온다. 신실한 일꾼이 세워져 그들이 선교의 일선에 서고 교회 부흥의 주역이 될 때, 교회는 부끄러움과 거리낌이 없는 건강한 모습으로 설 것이다. 좋은 일꾼이 있을 때, 교회는 시련에도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역사를 써가게 될 것이다! 신실한 일꾼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라! 시들지 않고 쇠하지 않는 축복의 분깃이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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