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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의 복음 (엡2:11-18) [2018년 7월 22일, 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2018-07-21 18:43:43
박신진 목사
조회수   21
설교일 2018-07-22
설교말씀 엡2:11-18
설교제목 화평의 복음

화평의 복음

2:11-18

2018722[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하나님의 드림팀

지난주일 밤, 정확하게는 월요일 새벽 0시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이 프랑스 팀이 우승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세계인들은 아직도 엄청난 감동과 흥분을 남긴 대회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디디에 데샹 감독은 특유의 아트사커의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프랑스 팀을 실리적이고 탄탄한 조직력을 보여주는 젊은 팀으로 만들어 19살의 음바페라는 선수를 스타로 만들면서 우승을 일구어 냈습니다. 이번 대회의 최고팀 중 하나였던 크로아티아는 결승전까지 힘겹게 진출했지만 불운이 겹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아쉬운 준우승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로아티아 팀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매력적인 축구는 세계축구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결승전에 오르기까지 3경기 연속 연장 혈투를 벌이는 투혼을 보여줬던 크로아티아는 사상 첫 우승에 도전했고, 그럴 만한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프랑스의 벽에 가로막혀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만주키치, 페르시치, 이반 라키티치와 같은 노장 공격수들은 모든 팀 중에서 가장 많이 뛰는 마라톤축구로 최선을 다하였고, 그들이 최고였다는 사실은 결승전에서도 슛의 수와 점유율 등 모든 기록에서 충분히 나타났습니다. 특히 크로아티아의 주장 루카 모드리치는 준우승에도 월드컵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모드리치는 단연 이번 월드컵의 영웅입니다. 33살의 노장이고 172cm의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월드컵대회 최고의 스타였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내전의 아픔 속에서 할아버지를 잃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하여 더욱 어렸을 적부터 축구에 몰두했던 자그마한 소년을 기억했습니다. 모드리치는 함부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용한 미소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곤 하였습니다. 비가 오는 가운데 모스크바 축구장 시상대에서 인구 400만 명 남짓한 작은 나라로서 세계적인 축구국가가 된 조국 크로아티아 여성대통령 키타로비치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는 주장 모드리치의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크로아티아팀은 단연 드림팀이었습니다.

드림팀을 주제로 책을 쓴 신학자가 있습니다. 축구 얘기는 아니고요, 화평에 관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드림팀(God’s Dream Team)이라는 책을 쓴 토미 테니는 첫 장의 제목을 저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응답되지 않은 유일한 기도라고 썼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제목은 제자들인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 기도는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드림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데, 교회는 서로 분열되어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드림팀은 바로 하나 되어 화평한 교회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부흥을 원하는가, 연합하라!’입니다. 교회가 모든 부흥의 요소를 갖추어도 연합하지 않으면 부흥은 절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화평은 교회부흥의 필수 조건입니다. 지금 교회는 우리 안에서 싸울 것이 아니라 단합하고 화평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세속주의와 이단의 도전이 얼마나 거센지 모릅니다. 우리는 화평을 이루시는 성령님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 화평하고, 나아가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막힌 담을 허시고

14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주님이 우리의 화평이 된다고 에베소서는 말씀합니다. 대단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 중간에 막힌 담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문제는 담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데, 교회가 주의 뜻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더 부흥하지 못하는 멍에가 되며, 앞으로 화평하지 못함으로 세계교회, 한국교회는 큰 위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담, 장벽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습니까! ‘휴전선’, 비무장지대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38선이 그어지고, 휴전선이 그어진 이후로 65년이 지나갔어요. 서로 왕래할 수 없고 엄청나게 무장이 되어있어서 그리 얼씬했다가는 총구멍이 나고 말 것입니다. 장벽이 이렇게 무시무시합니다. 처음 38선을 긋고 휴전선을 만들 때는 곧 걷어치울 임시 경계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문재인 트럼프 김정은, 세 나라의 지도자가 이 휴전선을 걷어낼 수 있도록 종전선언을 해보려고 애를 쓰는데, 한번 그은 장벽, 왜 이리 걷어내기가 힘듭니까!

2천 년 전 초대 교회에는 귀족이나 유대인 헬라인들도 나왔지만 노예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상전과 노예들이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신분차별이 없어졌어요. 그 중에는 빌레몬 집에서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 같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도 신분의 차별이 없어졌습니다. 담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자기의 이전 위치와 입장들을 내려놓을 때 신분차별이 없어지고 하나 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한국인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차별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번에 최근 제주도에서 예멘 출신 난민들을 인정해달라는 것이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주에는 서울의 한 중학교 40여명의 학생들이 서울남부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이란에서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와 사는 친구를 받아들여달라는 것이었는데요, 그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에서 살게 해달라고 신청했는데 최근에 대법원에서 불인정 판결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신청을 받아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려옵니다. 우리가 다른 민족에 대해 관용하는 민족이 아니고, 굉장히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을 하는 국민이라고 합니다.

서양사람이라고 우대하지 않고, ‘양놈이라고 차별합니다. 중국인들에게는 떼놈이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을 우리는 싫어하는데 왜놈이라고 하지요. 한국사람들은 다 외국인들을 자를 붙여 부릅니다. 여성차별도 유별난 국민이 우리 한국인입니다. 이조 500년을 돌아보면 성차별의 세월이었습니다. 칠거지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여성들을 힘들게 했습니까? 이 일곱 가지 잘못을 하면 일방적으로 이혼 당하고 시댁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 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면 이혼당합니다. , 아들을 낳지 못하면 이혼입니다. , 남편이 첩을 얻었는데, 질투하면 이혼당합니다. , 바람피우면 이혼당합니다. 요즘은 몰라도 그 당시 사회에서 유부녀가 어떻게 바람을 피웠겠습니까? 이웃 남자와 눈만 마주치거나 어쩌다 말을 섞으면 이혼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첩을 얻어도 됩니다. , 친정의 내력에 어떤 유전병이 있는데도 시집 왔으면 그것을 알았을 때 이혼당합니다. , 말이 많으면 이혼당했습니다. , 훔치는 버릇 있는 도벽 있는 여자입니다. 이것이 칠거지악입니다. 유교의 본산지 중국도 이렇게 지독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여성에 대해 이토록 인색했고 잔인했어요. 기독교가 들어와서 여성들의 인권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오랜 차별을 받아왔기 때문에 평등을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은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11)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는 유대인인데, 이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말합니다. 과거의 우리들은 이방인에 불과하였다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이 강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이고, 그 징표가 할례라고 했습니다. 이방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며, 심지어는 개처럼 여기는 우월주의에 빠져있었지요.

예수님의 이야기를 보면 유대인들이 얼마나 우월주의에 빠져 교만했는지 아십니까? 세리와 같이 성전에 올라간 정통 유대인 바리새인이 이런 기도를 하죠. ‘하나님, 저를 저 세리와 같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호색도 안하고 탈세도 안하고 나쁜 짓 하나도 안할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의 일조를 내고 매일 이렇게 와서 떳떳한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기도입니다. 지독하죠, 정말 못 말리게 교만합니다. 자기들이 교만한 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방인을 향한 그들의 교만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이런 바리새인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문제의 심각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 동네 사람들끼리 화투치고 놀다가 뭔가가 정말 맘에 들지 않아서 너희들이 같이 갈 사람들이 못된다!’ 이렇게 마음에 강퍅함이 들어가 농약을 넣어 죽이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타고난 살인자 같습니까? 그냥 평범한 동네사람들이었어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원수 됨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지 아십니까? 왜요? 나를 괄시했기 때문에! 나는 소홀히 여기니까, 나와 다르기 때문에, 모두 원수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담입니다.

예수님이 뭐라 하십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이여!’ 아주 이 장벽, 이 담벼락이 신물이 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타고 나기를 서로 싸우도록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담벼락, 이 장벽은 치명적입니다. 우리는 이 담을 쳐놓고 서로 미워하면서 그렇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걷어치우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는데, 절대 담을 없애지 않고 점점 더 쌓습니다. 이것은 죽어야 없어집니다!!

 

십자가로 화평

제가 앞에서 길게 우리는 잘 싸우고 편을 가른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아파트에 살면 층간소음이 있습니다. 웬만하면 공동주택이니까 참고 살면 되고, 정 참기 어려우면 노크를 해서, “좀 조용히 해주세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요, 잠을 잘 수가 없군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습니까! 조금씩 노력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시끄럽게 했다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결국은 칼 들고 가서 찔러 죽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화평이 중요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화평해야 해요.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나라 사람만, 요즘 도시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간이라는 종이 그렇게 화평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싸우는 종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는 개념이 살아있고, 이방인이라는 개념이 살아있는 한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은 아주 생겨먹기를 영적으로 교만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 사람이고 이방인은 절대 동등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어떻게 화평할 수가 있습니까? 이방인이란 영적으로 영원히 열등감을 가지는 족속입니다. 받아들여져도 이방인입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열등감을 가지면 공격적이 되고 자꾸 자기편을 만들려고 합니다. 뭔가 인정을 받아야 하고 사랑을 요구하는데 시비조로 사랑을 말하니까 오히려 오해가 쌓이고 갈등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갈등은 어떻습니까! 길게 얘기하기도 입 아픕니다.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에도 엄청난 오랜 갈등이 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도 마치 우리와 일본 같은 애증의 관계가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가 얼마나 적대감을 가지고 경쟁하는지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삼척에서 태어난 삼척 정라진 사람입니다만, 외지에서 50년을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온 지 9년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쪽저쪽 중간에 서서 보니까 삼척 사람들도 어지간히 배타적입니다. 이미 함께 사는 사람이 되었는데도 결정적일 때는 지방사람외지사람가르는 게 있습니다. 이런 것이 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삶에는 어디나 갈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12절부터 읽어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2-13) 여기 보십시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져서 이방인으로 있는 한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교,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도 한 나라 유고 연방이었는데 서로 싸우다가 아까 말한 최우수축구선수 모드리치 할아버지도 동네 사람 여섯 명과 함께 세르비아 사람한테 처형당했다는 겁니다. 인간이 이렇게 화평하기 힘들고 하나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의 설교는 바로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 제가 축구팀 얘기도 하고 유대인 이방인, 한국사람 일본사람 얘기를 한 겁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입니다. 여기 12절 끝에 이렇게 되어 있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게 세계사의 복잡한 흐름의 결말입니다. 소망이 없고 절망 뿐입니다. 싸우고 죽이고 다 망하는 역사예요! 그런데 13절에 이렇게 시작되지요.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여기 12절과 13절 사이에 생략된 말이 있는데, ‘그러나영어로 ‘but’입니다.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 멀리 떨어져 싸우기만 하던 우리들이었는데,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이것이 놀라운 복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인공위성을 타봤답니다. 그래서 물어봤다지요. “기분이 어떻든?” “꿈만 같더라.” 인공위성을 타본 적이 없으니 그 기분이 어떤지 알 길은 없지만, 꿈만 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겠죠. 인간의 삶에 갈등과 싸움, 미움과 오해가 그치고 진정한 평화가 임한다면 정말 꿈만 같지 않을까요? 부부가 진짜 화평하여 보기만 해도 꿀이 흐르는 부부가 있다고 합시다. 그게 바로 천국이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 안에 모든 오해와 갈등이 풀리고, 네 편 내 편이 없고, 다 형제자매요 가족이라면, 이렇게 수백 명 수천 명이 진정한 가족이 되어 기꺼이 기도해주고 도움을 주며 한마음 한뜻되어 교회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게 바로 천국이지요!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기도한 것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 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오늘 화평의 복음이라는 설교의 결론은 사실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라는 말 때문에 로마에 기독교가 전해졌을 때 피를 마시는 흡혈귀의 무리라는 오래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라는 말을 좀 부담스럽게 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결정적일 때에 꼭 피, 그것도 예수님의 피를 들이댑니다. 십자가를 들어 구원을 얘기하면서 예수님이 흘린 피가 우리를 구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알고 있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다는 말이고, 그 말은 결국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으셨다면, 결국 죄와 허물, 미움과 악행 때문에 내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거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은 자가 된 것이라는 말도 황송한 말입니다. 우리는 그냥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해력과 지혜가 있어서 예수를 알아보고 믿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너 착하다, 똑똑하다 해서 구원을 주셨고, 너는 어차피 학교 다닐 때도 공부도 못하더니 아무리 가르쳐줘도 모르더구나.’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도 교만한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해도 구원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인간의 싸움과 갈등의 지옥을 해결할 방법은 인간이 죽는 방법밖에 없는데, 다 죽일 수는 없으니까 예수님을 십자가 위해서 죽이셨습니다. 화목의 제물로! 이해가 되십니까? 십자가는 정말 부끄럽고 통탄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했기에 하나님이 독생자를 죽이셨습니다.

내가 그토록 못된 사람이었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도 지독하게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단 거야?’ 십자가를 볼 때 이런 진지한 깨달음이 우리에게 몰려와야 합니다. 어떤 방법도 없고, 어떤 길도 없어서 이제는 뭐 죽었다고 복창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하나님이 오시어 죽으신 것입니다. 이 창피한 자기 인식, 부끄러움, 자기 죄에 대한 깨달음, 이것을 처절하게 통과해야 비로소 우리는 참된 화평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피로 가까워졌다는 말씀에는 우리 자아의 죽음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어 멀리 있던 우리를 가깝게 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 교만이 죽고, 우리 열등감이 죽어 오직 예수만 우리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부끄럽고 죄송하지만, 예수님의 피가 흘러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고, 멀리 있던 우리가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드림팀 죽지 않으면 싸우고 죽어야 안 싸운다!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평안을 전하셨으니.’(16-17) 할렐루야! 기독교의 복음은 얼마나 인간의 죄와 이기심과 교만과 열등감이 인간을 끊임없이 싸우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가를 밝혀줍니다. 우리 자신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는 도저히 화평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안에서 다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으십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새 사람이 되어 서십시오! 완전히 죽어야 삽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드림팀, 하나님의 화평한 가족으로 새롭게 부르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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