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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몰아칠 때 (행27:9-26) [2018년 10월 14일, 성령강림후 스물한째주일]
2018-10-14 15:47:12
박신진 목사
조회수   672
설교일 2018-10-14
설교말씀 행27:9-26
설교제목 태풍이 몰아칠 때

태풍이 몰아칠 때

27:9-26

20181014[성령21주일]

 

우리나라 제주를 비롯한 남부와 동부를 휩쓸고 지나간 지난 주말 106일의 태풍, 대단했습니다. 우리 지역도 깜짝 놀랄 상황이었습니다. 아파트 지역에서 나무들이 쓰러졌고, 쇠기둥으로 튼튼하게 세운 반사경이 꺾어졌습니다. 사람이 서있을 수 없었습니다. 밀려나가 날아갔습니다. 시내 간판들, 세워놓은 입간판 들이 부서져 나뒹굴었습니다. 고속도로를 가는데, 동해 망상 지날 때 차가 휘청휘청 하였습니다. 원주 가니 비만 왔고, 돌아올 때 진부를 넘어서니까 다시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영덕의 피해상황이 대단했다지요? 읍내 전체가 물에 잠겼고 시장이 물로 다 폐허가 되었습니다.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비상대책을 시행해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다행히 대여섯 시간 몰아치다가 동해로 빠져나갔습니다. 태풍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생에는 매일 바람이 불고, 그 중에는 태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돈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습니다. 불공평하거나 부당한 일 때문에 마음이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냥 두면 풍랑이 거세져서 기쁨과 평안이 모조리 떠내려 가버릴 것입니다. 바람은 매일 우리 삶에 불어오지요. 주차장에서 어렵사리 자리를 발견하고 차를 세우려 깜빡이를 틀고 조금 전진했는데, 2-3초 사이에 쏙 새치기를 해버리는 얌체족이 있습니다. 속에서 뭔가 울컥 하고 올라옵니다. 경적을 울리며 항의를 표시하거나 내려서 삿대질을 하며 꾸짖어 주어야 할까요? 아니면 꾹 참고 그 사람을 축복해주어 버리고(?) 다른 자리를 차지할까요? 마음속의 작은 태풍이 스쳐갑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가끔 독수리로 비유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40:31) 이 독수리를 괴롭히는 존재가 까마귀입니다. 까악까악 시끄럽게 울면서 독수리를 끝없이 괴롭힌다고 해요. 성가신 까마귀를 독수리는 어찌 물리치나요? 강한 발톱과 부리를 가진 큰 날짐승이지만 까마귀보다 기동력이 떨어집니다. 독수리2미터 날개를 펴고 기류를 타고 높이높이 날아오른답니다. 어떤 새도 오를 수 없는 높은 곳까지... 그러면 까마귀는 더 이상 괴롭히지 않습니다.

인생에 태풍이 불 때, 교회에 태풍이 불 때, 가정에 태풍이 불 때,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실까요? 27장에서 불어제친 태풍은 유라굴로라는 대형 태풍입니다. 지중해의 유명한 이 태풍과 바울 일행은 열나흘이나 대결해야 했습니다. 죽음의 태풍이었죠. 바울은 로마의 죄수 신분으로 이 해난 사고 때 조난당한 배의 선객이었습니다. 그는 랍비요 장막장이였기 때문에 바다 태풍에는 아무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에 탄 276명의 생명을 맡아 재앙을 이기고 구조하는 쾌거를 이룹니다. 어떻게 바울이 그런 귀한 역할을 하였을까요? 태풍이 몰아질 때 누가 쓸모 있는 일꾼입니까? 바울을 봅시다.

 

1.기도의 사람 바울

태풍이 불 때 필요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3-25) 무섭게 풍랑이 일던 전날 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풍랑 일던 밤도 바울은 기도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 상황에 하나님께서 전해주시는 말씀을 뚜렷이 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는 기도와는 무관한 사람이요, 그가 거느린 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주나 선장도 기도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무서운 태풍이 불 때 정신이 빠져 평소 기도하던 사람들도 기도하기를 잃어버리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로마로 호송되던 죄인의 무리 전체는 기도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과 동행인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외에는 3백 명 가까운 승객들 중에 기도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많지만 어디에나 기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특권입니다. 동물도 인간 흉내는 다 내지만 진심으로 기도할 줄 아는 동물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세상 만물 가운데 유일하게 기도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풍랑이 이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기도했습니다. 유라굴로 태풍이 불어 배가 뒤집어지게 되었을 때, 선장과 선주까지 당황하여 배의 짐을 버리고 배를 포기하게까지 되었을 때에도 바울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었습니다.

바울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에 바울은 직가라는 거리로 가서 그 집에 3일간 머물면서 식음을 끊고 기도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실라와 함께 매 맞고 옥에 갇혀 찬송하며 기도하다가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바울이 성전에서 기도하다 환상 중에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로 보내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멜리데 섬에 상륙했을 때 그 섬의 추장 보블리오의 부친에게 안수기도 하니 열병과 이질이 나았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능력이 있었고 풍성한 응답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바다 여행의 안전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무리한 항해계획에 바울이 반대했지만 선장과 선주가 강행했을 때에도, 오늘 성경을 보면 바울은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하며 진행하는 일은 실패가 없습니다. 기도보다 자기 욕심이 앞서고 기도보다 섣부른 행동이 앞설 때 문제가 생깁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도의 사람은 필요하지만, 특별히 태풍을 만났을 때, 위기가 찾아왔을 때야말로 기도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스탠리 존스는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늘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다.” 하였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마틴 루터는 먼저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실패하는 일이 없으므로 나는 바쁠수록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이거나, 아주 위기의 순간을 맞이할 때 사람들은 기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때야말로 기도할 때입니다. 결혼을 결정할 때, 사업을 시작할 때, 직업을 시작할 때,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큰 실패와 재난을 만났을 때, 여러분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쁠수록, 태풍이 불어올수록 먼저 기도하십시오. 기도보다 여러분의 계획과 일이 앞서지 않도록 하십시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성도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믿음으로 행하는 바울

태풍이 불어올 때 바울은 믿음으로 행했습니다. 선장과 선주와 선원들은 자기들의 판단이나, 이익, 경험을 따라 행했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으로 행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바울은 태풍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배 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히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25-26) 이미 삶을 포기한 그들에게 바울은 믿음으로 확실하게 설득합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믿음이 필요할 때 믿음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믿어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을 믿고 의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당대의 엘리트 아닙니까? 거기다 선장과 선주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말하자면 육사 출신 엘리트였지만, 황제의 죄수들을 호송할 책임을 맡은 제국의 군대장교도 판단을 잘못하여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그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27:11) 한 대로 행했습니다. 선장은 노련한 항해술을, 선주는 자기 소유의 배가 튼튼하다는 것을 의지했습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그레데의 남풍은 그런 그들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지중해의 태풍 유라굴로가 휘몰아치자 사람들의 모든 판단과 지혜는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게다가 바다 밑의 모래톱인 스르디스암초가 언제 부딪쳐올지 몰라 그들은 어쩔 줄을 몰랐고, 배는 위태로운 상태에 빠졌습니다. 첫날에는 밧줄로 선체를 둘러 감아 난파에 대비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림으로 무게를 줄였습니다. 그 짐을 버릴 때 얼마나 아까웠겠어요? 그러나 살려면 귀한 물건들도 버릴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했습니다. 사흘째가 되었을 때 태풍의 기세를 이기지 못해 결국 배의 기구마저 내동댕이치고 말았습니다. 항해의 포기였습니다.

미쳐 날뛰는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배는 어떤 것으로도 구제될 길이 없었습니다. 백부장의 권세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선주의 재물은 태풍 앞에 쓰레가에 불과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때, 메시야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믿음의 사람 바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이때의 처지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20) 똑똑한 사람, 옷 잘 입은 사람이 소용이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혼비백산하여 모두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나침반도 없던 시절 항해는 태양과 별을 보고 방향을 잡는 것인데, 태풍이 대작하여 며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으니 그들은 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바울은 해보다 크고 별보다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서운 태풍 유라굴로나 바다의 신 포세이돈보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흑암 속의 풍랑과 며칠 째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기아 속에서도 절망 대신 희망을 가졌으며 재앙을 만난 자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외칩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괜한 만용이 아닙니다. 태풍이 심하다보니 정신이 나가서 허풍을 떠는 게 아닌 것입니다.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22) 그가 이런 용기를 지니고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24)고 말한 하나님 사자의 메시지가 있었기에 그는 담대히 희망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태풍 중에도 우리를 용기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안전한 항구에까지 갈 수 있음을 선포하게 하는 힘이 바로 믿음에서 나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절하) 믿음의 사람은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며 적극적이고 지혜로운 대응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향해 나아갑니다! 여러분! 믿음 있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믿음은 재앙을 이기게 하며 환난을 물리치게 하는 힘입니다. 바다의 악한 귀신 리워야단을 물리치고, 유라굴로를 눌러 이기며, 생활의 난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그러니 세상 것을 추구하고 사람을 의지하기 전에 금보다 귀한 믿음을 소유하고 나가는 이들이 되기 바랍니다.

 

3.남을 돕는 바울

여기 바울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죄수입니다. 그것도 로마로 재판받으러 가는 미결수입니다. 그러나 그는 배에서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섭니다. 이미 24절 하반절에서 본대로, ‘하나님이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라고 맡기셨음을 그는 알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남을 돕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돕기는커녕 가는 곳마다 남을 해치고 부담을 주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정글과 같은 험악한 곳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태풍 노도가 치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우뚝 서서 남을 돕는 영웅이 됩니다. 출항 초기에 큰소리치던 선장과 선주, 로마의 백부장은 어디로 갔는지 존재가 없습니다. 사공들은 비겁하게 제 목숨만 건지려고 거룻배로 비상탈출을 꾀하는 얍삽한 인간들이 되었습니다. 결국 태풍에 조난당한 배는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방랑선이 되고 말았습니다. 의기양양했던 알렉산드리아호가 왜 이처럼 형편없는 처지에 빠졌습니까? 위기에 서로 돕지 않고 자기 살 길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의 요셉을 떠올립니다. 그는 형제들의 배신을 당해 먼 나라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억울하여 인생을 한탄하며 되는 대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경비대장 집의 가정노예가 되어 성실하게 일하여 금방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잘 생긴 외모 때문에 그 집 여주인의 유혹을 받습니다. 부모형제도 없고 의지 없이 살겠다, 그 유혹을 오히려 즐기며 여주인의 기둥서방 노릇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듯하게 유혹을 물리쳤고, 이 때문에 상을 받기는커녕 모함을 받아 옥에 갇힙니다. 아마 웬만한 사람 같으면 완전히 절망하여 감옥에서 사고뭉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이 중요한데, 창세기에 보면, 요셉은 감옥에서 남을 돕습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풀어줍니다. 이 말은 곤궁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는 그들에게 든든한 심리적 도움을 주며 상담해 주었다는 겁니다.

남을 도와주는 사람, 태풍이 불 때 남을 돕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요, 필요한 사람입니다. 276명이나 탄 배에서 남을 도울 줄 아는 자는 백부장 율리오의 사슬에 묶인 바울 한 사람 뿐이었잖아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안심하라!” 외쳐 격려하며, 두 주간이나 풍랑에 시달려 시체처럼 된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자기들만 살아보겠다고 도망치려는 사공들의 동요를 막고 난파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까! 만일 바울이 아니었더라면 선원들은 배를 버렸을 것이고, 군사들은 죄수들을 모조리 칼로 죽였을 것이며, 승객들은 배가 고파 다 물속으로 뛰어들었을 것이고, 낙심한 사람들은 모두 제풀에 다 죽어버렸을 것입니다.

태풍이 몰아칠 때 바울은 사람들을 도와 살게 했습니다.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라도 로마에 가서 로마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려는 열망을 가졌던 바울이 로마 사람들보다 먼저 알렉산드리아호에서 지중해의 사람들을 무서운 파도로부터 살려냈습니다. 그는 선장보다 선주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로마의 백부장보다 그 배 안에서 가장 유능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쓰임 받는 일꾼입니까? 바로 인생과 역사에 태풍이 불 때 남을 돕는 사람입니다.

이기심의 무서운 올무에서 빨리 벗어나십시오. 때로 우리는 약간의 이익이나 내 앞에 놓인 자기 입장이나 자존심 때문에 친구를 마음 아프게 하거나 주님의 교회에 시험거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빌링스는 도량이 큰 자만이 남을 도울 수 있꼬, 겸비한 자라야 봉사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남을 돕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 인생에서 남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이 남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도운 것이 남는 것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유라굴로 광풍과 싸워 이긴 바울처럼 어디서나 남을 돕는 쓸모 있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간 태풍 콩레이는 정말 강력했습니다. 스쳐지나갔으니 망정이지 그 정면에 마주쳤다면 견딜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열강과 민족들의 경쟁 사이에 태풍이 불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위험한 태풍이 시시때때로 불고 노한 풍랑이 우리를 삼켜버릴 듯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지난여름에 유라굴로 태풍이 한차례 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정에 직장에 인생에 신앙생활에 태풍이 몰아치지 않았습니까?

이럴 때 바울처럼 꼭 필요한 사람, 태풍 가운데 나도 살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고, 새벽 미명에 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바울은 믿음 있는 사람이었어요. 비록 작은 소년이었지만 다윗이 믿음으로 골리앗을 맞서 싸워 이겼듯이, 바울도 믿음으로 태풍을 이겨냅니다. 바울은 태풍 속에서도 남을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을 돕는 동안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도 유라굴로에서 알렉산드리아 배를 건진 바울처럼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 봉사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다의 영웅, 사도행전의 위인 바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우리 교회 안에서, 가정이나 사회에서, 시장이나 거리에서 태풍이 몰아칠 때 믿음으로 기도하며 서십시오! 하나님은 그곳에서 여러분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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