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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재림신앙 (벧전4:7)[2018년 12월 2일, 대림절첫째주일]
2018-12-08 17:10:38
박신진 목사
조회수   65
설교일 2018-12-02
설교말씀 벧전4:7
설교제목 오늘의 재림 신앙

오늘의 재림 신앙

벧전4:7

2018122[대림절 첫째주일]

 

오늘은 대림절 첫째주일이요, 기다림의 절기가 시작됩니다.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희망과 성취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약속과 그 약속 실현 사이에서 기도하며 생활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때와 천국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신앙인 개개인으로 보면 믿음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모신 때와 죽음 이후에 영원한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때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중간에서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초림 예수와 재림 예수 사이에 놓여있는 기다림의 백성들입니다.

중세 성자 호라시우스는 아침에 커튼을 열며, “주님, 한낮에 오시렵니까?” 하였고, 밤에 커튼을 닫으며, “주님, 밤중에 오시렵니까?” 하였답니다. 성자는 인간현실이 죄와 타락으로 더러워져 있고 사람들 마음이 어두운 것을 안타깝게 여겼고,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정리하고 완전케 하실 것을 매일 간절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간절히 기도하며 살았고 그런 마음으로 자기를 정비하고 정돈하기를 힘썼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들어온 두 가지 극단적 신앙이 큰 시험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세속주의적 신앙입니다. 요즘은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고 세속의 가치관에 맞춰 신앙생활을 하려는 한 흐름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청중들의 요구에 맞춰 세속주의적인 주제로 설교를 하면 사람들이 잘 듣습니다. 성공과 번영, 자기 개발, 건강, 인간관계, 자녀교육과 같은 것들이지요. 그러면 세속적인 교인들이 늘어나 교회가 부흥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주제들도 설교와 가르침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속주의에 지나치게 빠지면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세상 때문에 교회가 변질되는 결과로 흐르게 됩니다. 음식을 단 것만 좋아하고 고소하고 기름진 것만 먹다가는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질병과 교회의 도덕적 타락은 이런 경향 때문입니다.

반면에 또 하나의 위험한 흐름은 지나친 보수적 문자주의입니다.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교리적이고 문자적인 것에 매여 과거로 돌아가려는 흐름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지키고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복음의 길을 보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옛 교회전통과 교리를 문자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으나 표현은 시대마다 변하며, 교리나 사상도 그 시대의 풍조와 대화하고 수용하여야 세상과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믿음 좋다는 사람들 중에서 지나친 보수주의로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여 역사의 낙오자가 되어버린 기독교단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재림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적인 방향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아예 재림을 말하지조차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역사의 종말, 주의 재림과 같은 주제들이 성서에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 거의 그런 말씀들을 패스해 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있을 것이며, 역사의 종말은 곧 다가오겠고, 주님의 재림은 역사의 종말과 함께 올 것이라는 성서의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을 깨어있게 하고, 하나님의 때를 바로 준비하는 기다림의 시기를 잘 살게 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의 재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현대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주제들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을 차리라!’ ‘근신하라!’ ‘기도하라!’ 베드로 사도는 핍박받고 순교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깨어있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재림을 잊고 사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도 이 말씀은 잠에서 깨우는 말씀입니다.

 

먼저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성서는 말합니다. 본문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했습니다. 주의 재림이 가깝다고 초대교회시대 때부터 사도들은 경고했습니다. 이 말씀이 있고 2000년이 지났는데, 오늘도 역시 주의 재림을 임박한 사건으로 말합니다. 그러면 종말과 재림에 관하여는 성경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오랜 시간이 흘렀고 더디게 보일지 모르지만 역사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그 날을 향하여 정확하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내일 그날이 오더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자기를 정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 상류에 있는 물은 천천히 흐르지만 폭포가 가까울수록 물살이 세지는 것처럼 2,000년 전부터 흘러온 재림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물살이 거세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성경적인 근거로 세 가지를 말합니다.

 

1. 마태복음2414절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일설에 의하면 80년대 중반에 전 세계의 종족이 24,000종족인데 그 가운데 12,000종족은 복음화 되었고 나머지 12,000종족이 복음화 되지 않은 미전도 종족이었답니다. 그런데 2005'세계기도정보책자에 의하면 미전도 종족은 6500여 종족으로 줄어들었습니다. 20여 년 동안 약 5,500 종족에게 복음이 더 전파된 것이죠.

앞으로 남은 6,500여 종족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주님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각종 미디어와 통신의 발달, 교통의 발달로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역사의 종말을 이루실 것입니다.

2. 요한 계시록 69-11절입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순교자의 숫자가 차면 세상 끝이 옵니다. “다섯 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고 합니다.

순교자의 숫자 통계를 보면 예수님 이후 1900년까지의 순교자의 숫자보다 1900년부터 2000년까지의 순교자의 숫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2000년 이후에 종교간 갈등이나 종교적 이유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이 매년 10만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제 성경적인 근거에 의하여 순교자의 숫자도 거의 다 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의 샘물교회 선교팀이 아프간에 갔다고 목사님과 한분이 순교한 것을 우리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3.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입니다. 마가복음 138절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했습니다. 지진은 옛날부터 계속되었는데 최근 50년 사이에 일어났던 지진의 수가 이전 2000년보다 월등 많습니다. 요즘 지진은 아주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에 있었던 경주와 포항의 지진은 상당한 피해를 주었지요.

민족 사이, 나라 사이에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습니다. 아프간에, 시리아에, 터키에, 이스라엘과 아랍에 전쟁이 계속됩니다. 우리나라도 전쟁 중입니다. 트럼프와 김정은과 함께 문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이끌어내 보려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근과 지진, 전쟁이 어느 때보다도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종말 재림의 징조라는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를 비롯하여 환경오염, 폭설과 폭우, 홍수 등, 인간은 재앙을 만들어 스스로 멸망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종말의 징조들 때문에 이단들이 종말과 재림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쉽게 미혹됩니다.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이단들은 이런 말세의 때에 죽은 안상홍이나 장길자, 이만희 같은 이단 교주를 재림주, 혹은 그에 버금가는 영적 지도자로 높이며 거짓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분명한 재림의 징조들은 인류 종말이 멀지 않았음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긴박한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종말과 재림이 임박하였으므로, 우리는 재림에 대비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라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시대의 징조를 잘 보아야 합니다. 비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바람이 불면 비가 오겠구나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십 수 년 전에 인도네시아에 엄청난 지진해일이 났을 때 수십만 명이 죽었는데, 놀랍게도 짐승들은 쓰나미가 덮치기 전에 산으로 다 도망갔습니다. 걔네들은 지진과 해일의 징조를 알아차린 것입니다. 원숭이, 코끼리, 산돼지, 개들입니다. 사람만 당했습니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재난을 대비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주의 재림과 종말이 가까워 왔음이 보입니다. 재림의 때를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와 비교해서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2437-38절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이런 일들은 잘못된 일들이 아니고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삶입니다. 시집 장가보내고, 아이들 교육하고, 직장생활하고, 사업하고잘못된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삶에 몰두하느라 재림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믿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신부다운 영적 단장과 정비가 없었습니다.

개인의 종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형제들이나 일가친척 친구들이 죽으면 잊고 있었던 죽음, 개인적인 종말의 문제가 깊게 느껴집니다. ‘나도 언젠가 끝이 있구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요. 잊었던 믿음을 회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느꼈다가 또 잊어버립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들, 직장생활하고, 사업하고, 아이들 교육하고, 시집 장가보내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일상적인 일에 몰두하다 재림은 고사하고 자신의 종말까지 잊고 살게 됩니다.

장례 때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시편 90편을 읽곤 하는데, 거기 12절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재림과 개인의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바로 계산될 때 지혜의 마음으로 정신 차려 준비할 수 있습니다.

2. 근신해야 합니다. 성경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라 했습니다. 요즘 고3 아이들이 대학 가는 시기입니다. 누가 열심히 공부합니까? 정신을 차린 애들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정신을 차리니까 근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 못 차린 아이들은 학생이면서도 자기 본업이 말썽 일으키고 사고내는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 많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돈인데 정신 차린 아이에게는 학비가 되지만 정신 안 차린 학생에게는 유흥비가 되고 맙니다.

여기 근신한다는 원문은 소프로뉴로서 건전한마음이라는 말이 합친 단어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딱 잡혀있는 것을 말합니다.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성도는 다가올 종말을 준비하며 근신하면서 살게 됩니다. 종말론적 의식이 없다면 우리는 목표의식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니 당장 즐기는 것과 당장의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질 때 마음중심이 딱 잡혀 근신하며 삽니다. 내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삽니다, 되는대로 삽니다. 재림이라는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사니까 삶이 정리되고 안정이 되고, 평안이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3. 기도하여 영적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일 이번 달이나 다음 부활절 쯤에 세상 종말이 오고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먹는 것, 입는 것, 직장, 사업, , 집 사는 것, 자녀들 시집장가 보내는 일, 다 중요합니다. 필요합니다. 하지만 종말을 맞으면서 해야 할 기도는 따로 있습니다. 주님은 평상시에 기도를 많이 하셨지만 십자가를 앞에 놓고 땀이 흘러 핏방울처럼 되도록 집중적인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잘 지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십자가를 잘 지셔야 하는 이유를 벧전 41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죄를 그치게 하기 위한 사명 감당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은 주님의 고난을 본받아 나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여 힘을 얻어 내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일이 쉽습니까?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요. 기도하는 자는 사명을 알게 되고, 사명을 받은 자가 기도함으로 힘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기도함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단련된 신앙이 세속을 이기고 승리하여 마침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는 동안 기다림으로 구원을 온전히 받은 하늘백성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이미 구원받았으나, 그 구원을 더욱 온전히 충만히 내 안에 채우기 위해 주의 약속성취를 기다려야 합니다. 홍해바다의 구원이 있었지만 광야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될 날은 틀림없이 옵니다. 이 모든 인간 역사의 모순과 갈등과 난관이 다 해결되고 하늘 뜻에 의하여 만물이 새롭게 될 때가옵니다. 주의 재림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개인의 종말도 오래지 않아 우리 모두에게 올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어요! 곧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며 거듭난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기까지, 이루어지기까지, 그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되 잘 기다리기 바랍니다!

재림의 시와 때를 정하고 재림주를 가장하여 다가오는 이단들도 문제이고, 구름 타고 나팔 불며 오시리라는 문자에 얽매여 걸려 넘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재림과 종말이 없는 듯이 나태하게 사는 신앙이야말로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신을 차리고 나의 날을 계수하면서 사는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근신할 때입니다. 재림이 있기에, 개인의 종말이 있기에 오늘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십시오.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내 사명을 찾기 위하여, 그리고 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힘을 달라고, 영력을 부어주시라고 기도할 때입니다. 믿음의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세속주의와 문자주의로 방황하는 세상 가운데 재림신앙으로 무장하여 굳게서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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