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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마태11:1-6) [2018년 12월 23일, 대림절 넷째주일]
2018-12-22 12:09:58
박신진 목사
조회수   54
설교일 2018-12-23
설교말씀 마태11:1-6
설교제목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11:1-6

20181223[대림절 넷째주일]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대림절의 마지막 네 번째 촛불을 켜고, 내일 모레 성탄절에 성탄절 초를 함께 켜면 기다림의 절기가 완성됩니다. 오늘은 대림절 넷째주일로서 세례식을 베푸는 주일로 지킵니다. 좀 전에 우리는 성인 4, 아기 2명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영서에는 제법 쌓인 눈이 두 차례나 내렸다고 하는데, 여기는 두타산이나 대관령까지는 눈이 내렸으나 삼척 시내에는 흩뿌리는 정도, 애꿎은 겨울비만 여러 차례 내렸습니다. 올해도 흰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한 해를 마감하는 주간에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일들이 찾아오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여자는 약하지만 아줌마는 강하다.’ 요즘은 여자들이 많이 강해진 게 사실이죠. 아줌마와 조폭이 같은 점이 있답니다. 떼로 몰려다닙니다. 선배에게 형님이라고 합니다. 칼을 잘 씁니다. 조폭은 회칼, 아줌마는 부엌칼을! 문신을 한다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조폭은 등에 문신을 하지만 아줌마는 눈가에 합니다.

미래학자인 존 나이스비트는 21세기가 ‘3F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Female, Feeling, Fiction’을 가리킵니다. 여성, 감성, 이야기의 시대일 거라는 거죠. 앞으로 남성 지도자 못지않게 여성 지도자가 중요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이 얘기합니다. 그것은 힘을 의존하는 권위적인 리더십보다는 수평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감성적인 리더십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탄절은 어찌 보면 교회의 절기 중에서 여성의 역할이 돋보이는 명절입니다. 아기 예수의 따뜻한 카리스마가 가득한 계절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젊은 여성 마리아가 낳은 아기 예수가 경배를 받는 계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은혜롭게 잘 보냄으로 한 주간의 영적 생명력을 얻고 새롭게 출발하듯이, 한해의 성탄절은 우리에게 예수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영적 생일과도 같은 의미가 있어서 한해를 바르게 맞이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매년 성탄절을 말씀과 함께 잘 보내면, 과거에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이 새롭게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탄절은 우리에게 있어서 탄생하신 예수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영적 생일과도 같습니다.

 

한마디로 요즘 성탄절은 산타클로스의 축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제 친구감독이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닌, 시즌스 그리팅 같은 인사가 적힌 카드를 보내오기에, 무심코 왜 요즘은 크리스마스카드에 크리스마스 글자를 찾아보기 어렵네, 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종교 편향이 되지 않도록 기독교 테를 내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기독교나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는 주가 거의 다가 되었고, 성탄절에도 계절인사정도로 카드를 보내야 하는 나라인 데 반하여, 얼마나 백화점, 호텔에서는 성탄절을 축하하고 있는지, 얼떨떨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오신 날인지,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가지고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 타고 온 날인지 헛갈릴 정도입니다.

성도들의 생활에서도 성탄절에 예수님이 주님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염려됩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현상은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상업주의입니다. 성탄절 준비는 백화점과 상점들, 호텔들이 더 많이 합니다. 성탄절은 이른바 박싱데이라고 해서 선물포장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백화점과 성탄을 세일의 기회로 이용하고, 거리에서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선물, 성탄축하의 파티들입니다. 엄청난 물량의 성탄절 장식품과 선물들과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지요.

그 다음, 놀이문화의 발달입니다. 제일 먼저 호텔이 가장 화려하게 성탄을 준비하고 손님을 부르고, 무슨 파티다 축제다 해서 사람들을 모읍니다. 제가 학생 때는 이런 서양 성탄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성탄 이브에 청년 학생들이 노는 데 힘썼는데, 선물교환하고 게임하고 하다가 남녀가 쌍쌍이 다이아몬드 춤이란 걸 이브에 처음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행사위주의 성탄절 축제입니다. 예배보다는 행사나 잔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물론 그 바탕에는 다원주의적 가치관, 종교 하나만 절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관념이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죠. 우리는 이런 행사에 예배가 중심이 되도록 이끌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탄절 지나서 더욱 공허하고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까 두렵습니다. 다시 상기시키자면,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와 마스의 합성어로 그리스도 예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절기로 올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공생애 기간 중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대함이 옳은지 확실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조차 성탄절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모른채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 성탄절을 보내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찾아와 물어 보았던 것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또 기다려야 할까요?”

이미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한참 사역을 하시고 난 뒤였습니다. 제자들에게 여러 곳에서 귀한 말씀을 가르쳐 주셔서 사람들이 놀라고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감격했습니다. 병을 고쳐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이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당대의 종교지도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메시아 왕이요 신이신지, 아니면 그냥 능력 많고 지혜로운 종교창시자인지, 사람을 보내어 확실히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나름 대를 이어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이거나, 깊은 신앙경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은 사람, 혹은 교회와 세상의 경계선에서 신앙을 고민하는 성도이거나, 누구이든지 올해의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주님은 누구십니까? 오실 그분이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우리는 또 묻습니다. 주님이 참 인간이요 하나님이신,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맞습니까?

 

1.예수님은 메시아이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4) 듣고 본 대로 말하라는 말씀은 간접적으로 긍정하는 말씀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렇다, 내가 바로 그 메시아다.’ 하신 뜻입니다. 옳습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왕의 왕, 소망을 이루실 분, 근원적인 인간문제를 풀어주실 분, 그분이 바로 예수이십니다. 여러분 가정에 예수님이 오셔야 진정한 평화가 이뤄지고 주의 뜻대로 살게 됨을 믿습니까? 우리 교회가 예수님이 와 계셔야 하늘 뜻을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우리교회가 돕는 통일을 돕는 기관의 목사님이 와서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과의 대화에서도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분은 예수밖에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뭐니뭐니 해도 예수님이 오셔야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이뤄지고 주의 뜻대로 살게 됨을 믿습니까? 우리교회에 실제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나아가야 하늘 뜻을 이루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와 나, 우리 모두의 메시아 왕이십니다.

 

2.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은 모든 구원없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일을 하셨음을 스스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구원자, 그들을 죄악과 실패에서 구원해주실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저에게도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지금 나의 구원에 현재진행형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이신가, 설교를 준비하며 물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나를 구원하시고 일으키십니다. 여러분들께도 예수님은 구원자가 되십니다. 오늘 세례받으시는 이들에게 지난 주일 마지막 공부를 마치고 제가 일일이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나를 구원하셨고, 세상을 구원하실 주님이십니다. 이번 성탄절이 구원받았음을 간증하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3.예수님은 걸림돌이십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문턱과 같으신 분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유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문턱과 같고 걸림돌과 같고 필터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거짓된 믿음이 걸러지고, 양심의 옳고 그름이 걸러지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과 충성이 시험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걸고넘어지셔서 하나님 앞에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우리 영혼을 걸러주시는 분이십니다. 걸림돌 예수, 문턱 예수께 여러분이 시험받고 검증받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좋은 것이 제일 좋은 것을 가로 막는다.” 일본의 기독교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말입니다. 정말 그래요. 인생을 가로막고 믿음의 방해물이 되는 것이 악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자주 우리의 최선을 가로막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차선이라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하는데 손님이 왔을 때, 손님 대접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경우만 된다면 어떨까요? 손 대접이라는 차선이 주일예배라는 최선의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아기가 울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배 후에 식사 준비하느라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때 우리는 두 번째 것을 소화하면서도 첫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과 엘리야, 모세가 변화된 모습으로 한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시는 영광스런 모습을 보고 감격합니다. 그런 중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었고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은 두려워 엎드렸습니다. 얼마 후 눈을 들어 바라보니, 구름도 없어졌고 모세도 엘리야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고귀한 영적 경험! 하나님은 이것을 제자들에게 허락해주심으로 십자가와 고난의 때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곧 다가오는 또 한 번의 성탄절! 하나님은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한 해의 성탄절을 주시면서 오직 예수만을 바라볼 것을 원하시고 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그렇다! 내가 메시아다, 구원자다, 너를 정결케하고 성숙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오직 나만 바라보고 나만 따라오라!”

 

중세 초기의 성자 어거스틴이 신앙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며 씨름하던 때에 하루는 꿈을 꾸었답니다. 천국 문 앞에 이르렀더니 천국 문지기가 물었습니다. “당신 누구요?” 어거스틴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했더니, 문지기가 말하기를 내가 보니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요, 당신 머리 속에는 예수님의 말씀은 별로 없고 철학자 시세로의 사상만 꽉 들어차 있군요. 당신은 철학자일는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니요.”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어거스틴은 그때 굳게 결심했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그리스도인답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만 전념하리라!”

어찌보면 요즘 성탄절이 예전보다 떠들썩하지 않고 잠잠한 것은 아기 예수님만 바라보고 경배하는 데 좋은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일도 우리교회는 적지 않은 성탄 프로그램을 하나 준비했는데, 이웃 임원교회로 가서 우리 성가대가 칸타타 합창을 부름으로 두 교회가 함께 하나님의 나심을 기뻐하려는 계획입니다. 틀림없이 큰 은혜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제단에 성탄등을 켜십시오. 이런 때에 여러분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십시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할까요?’

예수님 외에 어떤 답이 있습니까? 예수님 외에 어떤 생명이 있습니까? 예수님 외에 어떤 길이 있습니까? 예수님 외에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예수님 외에 어떤 구원이 있습니까? 있따면 여러분은 그 답을 찾고 그 생명을 얻으며 그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예수님이 답이요 생명이요 길이며, 예수님이 능력이요 구원임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로만 만족하시기를 바랍니다.

 

성탄절은 한때 경건한 크리스챤들로부터 바보들의 절기’(Fooltide)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리고 온갖 민속풍습과 인간적인 놀이의 축제일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오직 아기 예수님께만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참 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홀로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찬송과 정성스런 예물과 마음을 다한 헌신이 주의 영광을 더욱 빛나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 성탄절에 아기 예수와 여러분 사이에 어떤 방해나 걸림돌이 없이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기뻐하는 절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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