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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제 (렘17:5-11) [2019년 2월 17일, 주현절 여섯째주일]
2019-02-16 10:46:24
박신진 목사
조회수   42
설교일 2019-02-17
설교말씀 렘17:5-11
설교제목 마음의 문제

마음의 문제

17:5-11

2019217[주현절 여섯째주일]

 

열매가 있는 삶

오늘은 설 지나고 음력 보름을 앞두고 있는 주일입니다. 특히 삼척은 정월대보름제가 삼척시의 주된 행사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보름이 되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삼척기줄다리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행사들로 삼척문화예술회관 앞 광장에서 우리교회 앞 사거리까지 북새통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우리 성경적 문화의 독특성을 주장하느라 사회와 역사의 문화적 유산을 포기하고 담을 쌓은 채 살아서, 현대의 문화난민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문화 속에 공생하면서 정착하여 새롭게 문화를 해석하고 창조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문화 속에 들어가 복음의 일꾼으로 조화롭게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에 맞춰 삼척시의 모교회인 우리교회에서도 주일오후에 전교인이 모여 윷놀이대회로 보름을 지냅니다. 이도 역시 예전의 풍습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우리는 성도들이 서로 가깝게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경축하는 축제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선물과 경품을 준비하고 속별 단체전과 개인전을 치르니 기쁨으로 참여하여 거룩한 사귐이 있는 즐거운 잔치로 함께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호두나 잣, 땅콩 등 견과류를 깨무는 오랜 관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민속적으로는 그것이 악귀를 물리치고 액땜을 하는 풍속이라고 하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지킬 풍속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그런 속설을 고지식하게 믿는 이들도 별로 없습니다. 다만 전통적인 명절이니 건강에 좋은 기호식품으로 그것을 즐기는 것을 뭐라고 할 필요는 없겠지요.

어쨌든 단단한 견과류의 껍질을 깨물었을 때 그 속에 있는 열매를 찾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요! 반면에 땅콩을 쪼갰는데 실한 열매를 보지 못하고 쭉정이나 썩은 땅콩의 잔해만 있는 것임을 알게 되면 잠시나마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다 껍데기를 까서 먹기 좋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건네지지만, 어릴 적 견과류를 깨물거나 땅콩을 쪼개 알을 모으던 때의 재미가 없어진 것이 아쉽기조차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호두나 잣, 땅콩 뿐 아니라, 우리 삶 자체가 열매가 있는 삶, 열매가 있되 충실하고 좋은 열매가 있는 삶이 되기를 사람들을 바랍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는 인생은 허무하고 피곤하며 무의미합니다. 열매가 없거나 쓴 열매를 거두는 인생은 허무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이런 인생은 파괴적인 삶을 살거나 허무를 비관하여 인생을 저주하는 비극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향기롭고 고소하며 풍요로운 열매는 우리 삶에 이토록 중요합니다.

 

마음의 문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열매가 없는 메마른 인생과 그 잎이 푸르러 가뭄에도 걱정 없이 열매가 그치지 않는 인생을 대비해 놓고 있습니다. 두 개의 인생의 있습니다. 먼저는 예레미야 176절에 있는 인생인데,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사는 인생입니다. 다음은 예레미야 178절에 나오는 인생인데,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푸르고 열매가 많은 인생과 메마르고 열매가 없는 인생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마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황야와 메마른 사막에 사는 사람도 알고 보면 마음 때문이고,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하게 사는 사람도 결국은 마음에서부터 온다는 겁니다. 인간은 이중적 마음과 몸을 가진 신비한 존재입니다. 이 마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기도 하고, 여전히 진선미의 오묘하고 위대한 세계를 지니고 있는 특별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인간의 완전타락과 땅에 처하고 육에 속한 본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과 잠재성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할 만큼 피조물 중에 특별하고 뛰어납니다.

결국 우리는 그의 마음에서부터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5절에서 선지자는 말합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래서 사막과 같은 메마른 인생이 된다는 겁니다. 반면에 7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래서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푸르고 청청하며 열매가 많은 멋진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마음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레브인데, 지정의와 욕망의 총체입니다. 심장을 가리키는 말로서 진실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마음이 비뚤어지면 그 삶의 인격과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변질되고 부패하게 됩니다. 마음이 올바르고 선하며 긍휼과 자비와 정의로 반듯하게 서있으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선한 열매들이 많이 맺혀서 기뻐하며 행복하게 되는 아름다운 삶이 됩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시편 686절 하반절을 보면, ‘오직 거역하는 사람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합니다. 잠언 616-17절을 보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7가지가 나오는데, 그 한 가운데 악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악한 마음은 교만, 거짓말, 폭력, 악행, 거짓증언, 이간질의 뿌리입니다. 모든 끔찍하고 사람을 힘들게 하는 나쁜 것은 나쁜 마음에서부터 옵니다. 그러니 마음이 더러운 사람 자체가 황야라서 그는 메마른 사막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바로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같은 사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양을 키우기 좋은 초지여서 풍요로왔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악한 마음 때문에 결국 그 도성은 유황불의 심판과 저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중요시하는 개인적인(실존적인) 신앙

예레미야는 깊은 사상을 가진 뛰어난 예언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믿음의 문제를 깊이 상고하였습니다. 대부분 구약의 예언자들은 공동체적 신앙을 가르쳐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철저히 지키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단체로 지켜주신다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민족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고,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규례대로 정결을 유지하고, 제사의 법을 따라 바르게 예배드리면, 하나님은 그 나라를 영원히 지켜주실 것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가족이 교회에 속한 신자로써 주일을 성수하고 절기를 지키고 십일조를 바치며,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지켜주시고 번성케 하시며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온 식구가 나와 바르게 예배하고 잘 섬기는 것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실 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에게 언약을 맺으셨고 영원까지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 큰 함정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율법조문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율법은 가죽이나 돌판에 새겨졌지만, 그것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완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예레미야는 보았습니다. 여기 예레미야가 뭘 보았는가 하면, 율법의 준수를 아무리 외친다 해도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거부하면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본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다른 예언자들이 그리 주목하지 못한 일로서, 예레미야가 가장 철저하게 다룹니다. 율법과 함께 마음을 드려라! 이것이 예레미야가 요구하는 믿음입니다.

각 사람은 전통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나 관습을 따라가는 것으로 그 삶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외적으로 철저히 지키면서도 마음은 얼마나 그것에 반하는 방향으로 가며 얼마나 방황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가장 철저하게 믿는 보수적인 고려파 장로교회 출신으로 후에 감리교 목사가 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제 자신이 누구보다 저를 잘 압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지 않으면 도저히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장로의 가정, 기도 많이 하는 권사 집사의 자녀들이라고 교회를 다니고 전통을 지키고 관습 안에 있으면 구원받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각 사람은 그의 마음입니다!! 그의 생각, 사고방식이 어떠냐가 그의 행동과 인생의 길을 결정합니다. 아닙니까? 교회나오는 관습입니까? 기독교가정이라는 전통과 외적 습관입니까? 10년 째 교회 나오고 대를 이어 신앙생활을 해도,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음에서 존재와 행동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삶입니다. 마음과 삶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쌓아두었다가 악한 것을 낸다.”(12:35, 새번역)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각 사람의 인격과 삶은 그의 마음이 빚어낸 작품입니다. 누굴 탓하고 조상과 지도자를 핑계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지옥 같은 데서도 타락하지 않는다.”(J.W. v. 괴테)

물론 전통, 가풍, 민족적 배경, 사회적인 관계들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어디 출신이냐, 가정 배경이 어떠냐, 어떤 부모와 형제들을 두고 있느냐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이요. 예레미야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주로 이런 문제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누구보다도 확고하게 개인의 현재 마음과 신앙의 문제를 주목합니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돌아보십시오! 지금 믿음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

인간은 어떤 물질이나 기계가 아니라 마음을 가진 인격입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에 마음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응답하고 참여하고 우리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고대의 뛰어난 심리학자인 예레미야는 오늘 본문 9절과 1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예레미야가 유대인들과 애굽, 바벨론 같은 이방인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을 통찰해보니 아연실색할 지경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둠, 혼돈, 부패, 불결, 거짓, 악의 덩어리였습니다. 이런 부패한 마음에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쏟아 부어도 모조리 새어나가 버립니다. 이것이 예언자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고 견딜 수 없게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을 꾸짖고 저주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또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돌판에 언약을 새기지 않고 마음에 새겨줄 텐데, 인간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이 될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은 악하기 쉽지만, 진실하게 하나님께 돌아올 때 인간은 열매 맺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는 선한 마음이 됩니다.

마음이 악한 사람은 황야와 메마른 사막에서 사는 가시덤불과 같습니다. 그의 시간과 공간은 온통 소금기 많은 땅입니다. 눈빛은 사납고 음흉하며, 입은 터진 하수구이고, 손은 타인을 무시하는 거만으로 가득하고, 행위는 밉살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못된 마음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황야의 쓸쓸한 방랑자로 살아갑니다. 스스로 인생의 광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로지 자기만 믿고 사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 인생에서 저주받은 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지으신 착한 본성을 따라서 천지자연에 가득 새겨져 있는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물가는 비가 와야 흐르는 간헐천이나 시냇물 강물이라기보다는 샘물을 가리킵니다. 다른 것은 말라도 샘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이런 샘물 곁에 심은 나무는 세월의 무더위와 인생의 가뭄과 시대의 기근이 닥쳐와도 두려움과 불안을 모르고, 거룩한 평안을 누리며 늘 푸르고 싱싱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 마음이 착한 사람은 하나님이라는 영원한 샘물 곁에 자신의 인생 뿌리를 내린 사람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포도나무의 비유가 15장에 나옵니다. ‘나는 ~이다.’ 하는 용법으로 분명하고 쉽게 예수님을 설명한 사람이 바로 요한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는 표현입니다(15:4) 가지에서 포도나무 열매를 맺습니다. 가지에서 포도나무 열매를 맺으려면 줄기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상식이죠. 포도나무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 우리도 줄기에 붙어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 열매는 가지에서 맺히지만 줄기에 붙어있어야 됩니다. 줄기는 바로 예수님이니, 예수님과 붙어 있으면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줄기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은 심장수술 기술이 크게 발달했지만, 1-20년 전만 해도 심장수술은 최첨단 기술이어서, 생방송으로 해주기도 했습니다. 자기 심장을 떼어내고 남의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은 정말 신기합니다. 심장을 잘라내고 다른 심장을 이식합니다. 그 꿰매는 사이에 심장이 박동하지 않아서 피가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3-5분이 지나가면 결국 뇌세포가 죽습니다. 그래서 인공심장을 가지고 단절된 시간을 짧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산소가 공급되고 피가 공급되는 심장이 핏줄과 연결된다고 하는 것이 이렇게 귀한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서 선하고 바른 마음의 양분이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오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를 늘 가까이하고, 예수님 안에 거하며, 말씀으로 행하는 마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5, 7). 신앙생활은 늘 연결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통하고 연결되어 흐를 때,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겨와 쭉정이는 심판의 바람에 날아가고 풍요로운 열매를 거둔 자들만이 우리 주님의 발 앞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주님께로!

오늘날 한국인들의 마음은 매우 정처가 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믿는 이들조차 외형만 예수님께 속하였지 마음이 연결되어 있지 못하고 떠나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과 부와 풍요를 누리고 사는데, 삶은 매우 메마르고 황폐합니다. ‘누구라도 붙들고 울고 싶다, 아무도 없는 어딘가로 훨훨 떠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우울증 초기증세입니다. 이때야말로 아름답고 풍성한 마음, 선하고 거룩한 마음 가꾸기에 주력해야 합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샘물 곁의 풍요로운 자리일지, 아니면 메마르고 거친 광야 한가운데일지는 바로 여러분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을 떠나버린 마음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동행하는 마음자리로 돌아오십시오!

한경직 목사님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교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천당으로 올라갔는데,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듯 사다리를 타고 천당 가는 꿈을 꾸었답니다. 한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중간에 사다리 이가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 정도 빠진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두 개 이상이 이가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올라가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왜 이리 힘든지, ‘왜 내 사다리는 중간에 이가 빠졌을까?’ 했답니다. 드디어 천국문에 이르니 안내하는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왜 천국 가는 사다리 중간에 이가 빠져서 이렇게 힘들게 할까요?” 물어보았답니다. 베드로 대답하길, “그것은 주일에 한번 씩 빠질 때마다 이가 빠진 것이지요.” 하더랍니다.

자꾸 마음이 떠나도록 하지 말고, 마음이 주님께로 연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 마음이 떠나있으면 정말 극복하기 힘듭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연결되어야지, 한 번 두 번 마음이 뜨면 아주 멀어지고 맙니다. 유대인들은 고3학년이라도 안식일을 꼭 지킵니다. 그런데도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에 속한 대학들을 잘 갑니다. 그런데 한국의 고3 기독교인 학생들은 고등학생 되면 주일을 거의 선택과목으로 하다가, 3이 되면 주일을 아주 내버리고 맙니다. 주일을 빠지는 것보다 큰 문제는 마음이 떠나는 것입니다. 졸업을 하고 나면, 아주 마음이 떠나 하나님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인생이 물가에 심은 나무 같으려면, 마음이 하나님 안에 거하며, 진심으로 말씀과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말씀으로 점검하십시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마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을 가진 지혜로운 마음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기를 뜨겁게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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