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19-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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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마태복음 1:18-25 |
설교제목 | 침묵하는 요셉 |
침묵하는 요셉
마태1:18-25
2019년 12월 22일 [대림절 넷째주일]
“메리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 오신 기쁜 성탄입니다. 마음껏 기뻐하십시오! 이 계절에 그리스도인은 기뻐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말구유에 탄생하신 절기이니까요. 서로 기쁨을 나누십시오. 화답하며 노래하며 춤추어 기뻐하십시오. 구주 탄생 하셨습니다!!” 오늘은 성탄의 은혜를 힘입어 성례를 거행했습니다. 세례받으신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생활에서 말은 중요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어느 철학자는 얘기했지만, 말이 어떠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의 수준이 결정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말이 힘이 있으며 정직하고 성실하면 그 인격이 그러하고, 말이 헤프고 믿을 수 없으면 그 삶 전체가 그러합니다. 그러니 좋은 말, 바른 말, 힘 있는 말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우리가 요즘 새벽마다 새로 읽기 시작하는 창세기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빛이 있으라!” 말씀하심으로 창조가 시작됨을 알려줍니다. 신약은 이어서 이 로고스 말씀이 곧 성탄절에 이 땅 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첫 설교부터 시작하여 끊임없이 세상을 향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말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때로는 말이 필요없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성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와 위대한 권능 앞에 인간은 말을 멈추고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거나 찬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침묵하여 그 말씀을 귀기우려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인간의 존재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아기 예수님으로 오실 때, 요셉은 말이 없습니다. 요셉이 정혼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며 아기를 임신했습니다. 당시 정혼한 관계는 약혼보다 더 결혼에 가까운 실질적인 부부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다른 이의 아기를 가졌다니!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화가 났을 것입니다. 피 끓는 청년으로서 참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누구야, 누가 내 결혼예정자에게 임신을 시킨 거지?’ 기분만 같아서는 하나님이라도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만히 끊고자 하는 것만도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이렇게 고민하며 힘들어할 때 천사가 꿈에 나타나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이때부터 참으로 중요한 순간에 성경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의 영성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침묵의 영성이요,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라엘의 방문을 받고 네 몸에서 구주가 태어나야 하리라는 황당한 말씀을 들은 마리아도,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였습니다. 엄청난 순종입니다.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순종이지요! 이 믿음 안에서 예수님이 잉태되셨습니다.
요셉은 구주 성탄의 이야기에서 결코 뺄 수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도 없는 인물입니다. 요셉이 없었다면 거룩한 가정이 없었을 터이요 마리아가 버텨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침묵으로 견뎌주지만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당시 율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당연히 정혼한 것을 파혼할 자격도 있었습니다. 마리아를 비난함으로써 자기 명예가 손상되었음을 증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요셉은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마리아와 맺은 부부의 인연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요셉은 메시아 탄생을 가능케 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마리아의 순종과 요셉의 침묵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침묵으로 순종했습니다.
1. 요셉의 침묵은 의로운 자비의 침묵이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했지만 동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식 부부가 될 때까지 육체적인 순결을 지킨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황당하고 충격적인 소식이지요. 분명히 자기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보통 그러듯이 공개적으로 그 사실을 드러내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비의 길을 선택합니다.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마리아와 맺은 부부의 인연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마리아를 위해서였지요. 요셉의 침묵은 그의 의로운 자비를 말해줍니다.
내가 옳다고 다 드러내고 밝혀야 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옳지만 침묵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리고 덕을 세우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괴로움을 감내하며 가만히 끊고자 하였으나 천사가 나타나 상황을 가르쳐 주어서 마리아의 남편으로서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 성탄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의로운 사랑의 침묵을 배워 우리가 사는 곳에서 평화가 이뤄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2. 요셉의 침묵은 희생적인 신앙의 침묵이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고민했겠습니까! 그 때 주의 사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전해집니다. 그러나 요셉 입장에서는 아무리 하나님의 계획이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 나와 내 정혼녀가 이렇게 희생해야 합니까, 항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려 희생한 것이지요. 주님도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름을 짜듯 고민스런 기도를 드리면서, ‘나의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아비인 요셉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닮아있음을 발견합니다. 요셉의 침묵은 그의 희생적인 신앙을 말해줍니다.
나다니엘 호오든의 <주홍글씨>는 간통죄로 가슴에 주홍글씨로 “A”라는 문자를 새긴 채 심문을 받는 헤스터 프린이라는 한 여성과 그녀로 하여금 불륜의 아이를 배게 한 장본인인 마을에서 가장 신망이 높은 젊은 성직자 딤즈데일의 이야기입니다. 헤스터 프린은 여성으로서의 가혹한 심문에도 불구하고 끝내 상대방을 자백하지 않고 비난과 질시를 감수하며 살아가고 그 후 사태의 모든 전말을 파악한 헤스터의 남편 칠링우드는 복수를 계획합니다. 양심의 가책에 못이겨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목사 딤즈데일은 마침내 모든 이들 앞에서 자신의 죄상을 낱낱이 고백한 다음 숨을 거두고 만다는 줄거리입니다.
희생적인 침묵으로 오랜 세월 오해를 받았던 여인 헤스터는 이리하여 죄인이라는 질시에서 벗어나서 나머지 생애를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해 보내고 마침내 ‘죄와 벌’의 관문을 통과하여 얻은 평온함 가운데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훗날 그녀의 딸은 잘 자라 좋은 가정에 결혼하였고, 헤스터는 간통, Adultery이라는 뜻의 A가 아니라, 천사, Angel라는 뜻의 A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때로 침묵이 웅변과 설득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3. 또한, 요셉의 침묵은 즉각적인 순종의 침묵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즉시 순종합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다(24).” 조금도 주저함 없이 주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과 양면과 똑 같아서 항상 같이 갑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별 핑계를 다 대면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곧 순종이고, 순종이 곧 믿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부르시는 대로 순종하여 조상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먼지나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요셉은 듣고 순종했습니다. 구약은 순종을 “청종”이라 씁니다. 듣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요셉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토를 달지 않습니다. 순종에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말이 많으면 순종이 적습니다. 요셉의 침묵은 즉시 순종하는 그의 신앙적인 태도를 말해줍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망설이며 오랜 시간을 주저하면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즉시 순종이 제일입니다. 무슨 일을 맡기시든지, 무엇이라 명하시든지 즉각적인 순종으로 주의 일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주의 사자는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일러줍니다(21절). 예수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죄에서 건져주신다, 멸망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이지요. 유대사회에서 이름 짓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그 이름이 인생 지표가 됩니다. 이름은 이 아들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바로 온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임마누엘’이라는 별명을 붙여줍니다. ‘임’은 함께, ‘마누’는 우리와, ‘엘’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라는 이름입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오셨으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그가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름입니다. 임마누엘은 사람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그의 사역과 존재를 보여주는 이름, 주님과 동행, 즉 점점 거룩해지는 ‘성화’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사역 마지막에도 이런 뜻으로 선포하셨지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오늘의 본문이 주는 결론적인 두 가지 교훈입니다. 첫째로, 본문에서 침묵함으로 나타난 요셉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는 것과 그 과정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처녀가 아이를 낳음으로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은 2천 년을 내리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구원과 성화를 이루어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임마누엘 약속은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이뤄집니다. 요셉은 고민과 아픔 가운데에도 끝까지 침묵함으로 의로운 자비를 보여주었으며, 희생적인 신앙을 실천하였고, 즉각적인 순종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온전한 순종을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참아야 했습니다. 극심한 내면의 고통을 극복해야 했고, 밖으로 드러날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순종이란 어렵고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그 일에 사용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겨야 합니다.
모범적인 믿음의 사람 요셉을 따라 여러분도 믿음으로 묵묵히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 귀한 일을 맡기신 것을 감사하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내어드리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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