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설교전문

설교전문

믿음의 달리기 (히브리서 12:1-3) [2020년 1월 5일, 성탄후 둘째/신년주일]
2020-01-07 09:27:41
관리자5
조회수   58
설교일 2020-01-05
설교말씀 히브리서 12:1-3
설교제목 믿음의 달리기

믿음의 달리기

12:1-3

202015[성탄후 둘째/ 신년주일]

 

제가 다닌 감리교신학대학은 매년 개교기념일 축제 때는 단축마라톤을 했습니다. 학교 사정 때문에 마라톤은 하는 해도 있었고 하지 않는 해도 있었는데, 제가 3학년 때 했습니다. 하루는 학보사에 앉아있는데 개교기념마라톤을 한다고 시끌시끌한 거예요. 나는 미처 뛸 준비를 하지 못했다가 급히 참여했습니다. 그때는 몸이 가벼웠던 것 같습니다. 서대문에서 홍제동 고가도로 반환점을 돌아 다시 서대문 학교로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독립문을 지나 언덕길을 달려 올라갈 때 한 그룹만 내 앞에 가고 다 내 뒤로 처지는 겁니다. 결국 평생 단 한 번, 생각지도 않았던 그 마라톤에서 6등을 하여 상품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라톤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걷는 게 아니라 뛴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래 뛴다는 것입니다. 당시 서대문에서 홍제동까지는 버스로 금방 가는 곳이었는데, 막상 뛰려니까 꽤 멀었습니다. 아마 학생 백여 명이 뛰었을까 하는데 그것도 반은 다 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제 앞서 5등 이상 한 친구들은 모두 한두 달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여 매일 뛰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정식 마라톤은 42.195km이기 때문에 백리 길을 뛰는 것이지요. 달리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후에 자기 인생을 회고하면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말씀도 신앙의 생활을 우리 앞에 당한 경주라고 표현합니다. 믿음의 달리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가롭게 거니는 것이 아니고, 잠시 앉아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달리기입니다.

여러분 달리기 해보셨어요? 힘듭니까 쉽습니까? 달리기는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특히 마라톤은 장거리 달리기이기 때문에 가장 힘든 경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세계육상대회 같은 데에서 보면 최고의 뛰어난 선수들인데도 얼마나 힘든지 결승선을 통과할 때에 침을 흘리고 지쳐 쓰러지기도 합니다. 힘들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고 훈련이 있어야 하며 응원도 많이 하는 겁니다.

신앙의 달리기에도 변화가 많습니다. 내리막길이 있는가 하면 오르막길도 있고, 넓은 길이 있다가 좁은 길도 있습니다. 평탄한 길이 있는가 하면 험한 길도 있습니다. 도저히 더 달릴 수 없다, 여기까지 달리고 말아야 하겠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 때도 있고, 때로는 재미도 있고 기분도 좋은 길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살아있다면 아직 달려야 할 길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믿음의 달리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허다한 증인

우리에게는 구름 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1절상) 우리 사돈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는데 유럽에 사업관계로 매년 들어갈 일이 있습니다. 사돈은 축구를 좋아하니까 영국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EPL)’의 표를 구하여 보곤 한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는 토트넘에 강원도 출신 손흥민 선수가 활약하고 있지요. 손흥민이 뛰는 경기도 보고 왔다고 지난번에 자랑하더군요. 우리 사위가 귓속말로 아버님, 아버님도 한번 영국 가서 손흥민 경기 봐야지요!’ 제게 바람을 넣더군요. 그 바람이 이뤄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기는 엄청난 관중이 모입니다. 정말 구름떼와 같은 인파가 몰려드는 것이지요.

믿음의 달리기에는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유명한 축구경기에는 510만의 군중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응원을 합니다. 관중이 많아서 선수들은 응원의 열기, 승리의 함성 때문에 힘을 내서 최선을 다합니다. 본문에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라는 표현은 경기의 허다한 관중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증인과 관중은 다릅니다. 관중은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증인은 구경꾼이 아니고, 우리보다 앞서 그 길을 달려간 승리자들입니다. 고난과 유혹과 핍박이 있었지만 이겨내고 믿음의 달리기를 마친 뒤에 승리의 면류관을 쓴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믿음의 달리기에 있어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은 누구입니까? 히브리서는 믿음장으로 알려진 바로 앞장 11장에서 대표적인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며 살다가 하나님께로 불려간 에녹, 120년 동안 말씀에 순종하며 묵묵히 방주를 지었던 노아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독자 이삭을 바치려 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항상 다툼보다는 화평을 도모하며 힘써 우물 파기에 매진했던 이삭,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 꿈꾸는 사람 요셉이 있습니다.

믿음의 증인들은 구름같이 많습니다.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영적 지도자 모세고 있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300명의 군사로 10만 미디안을 물리친 기드온, 기도를 쉬지 않았던 사무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우상숭배를 거부하며 신앙지조를 지키다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 또 신약시대의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뱅과 루터, 신사참배를 거부라고 순교한 주기철,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도 있으며, 일제의 압력과 회유를 견뎌낸 열정적인 신앙인 최인규 권사도 있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가난과 고통, 핍박과 유혹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이겨내고 달려갈 길을 마친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를 응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많은 관중이 관람석에서 선수를 응원하듯이 하늘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지금 우리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도 말라, 우리가 너희를 응원하며 기도하겠다.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어 싸워라, 굴복하지 말아라!” 믿음의 달리기를 뛰는 우리는 이 승리의 함성, 응원하는 증인들을 보고 힘을 내어 달려가야 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는 벗어버려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1절중) 군대에서는 완전군장 행군이 있고 단독군장 구보가 있습니다. 완전군장은 A텐트까지 포함된 무거운 짐을 말하기 때문에 완전군장하고는 달리기를 하지 않습니다. 단독군장은 철모와 수통, 총 정도의 기본적인 군장을 하는 것인데 단독군장을 하고 달리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기는 온 힘을 기우려야 하는 것인데 군화와 총을 메는 것만 해도 굉장히 무거워 단독군장 달리기는 전투체력에서 가장 힘든 종목이었습니다.

오랜 달리기를 위해서는 짐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군대에서 부대별 단독군장 구보시합이 있었는데, 너무 힘드니까 고참들은 총 안에 있는 쇠부분, 노리쇠 등을 다 빼고 수통도 가능하면 떼버리고 달리더군요. 한복을 입거나 갓을 쓰고 경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통의 달리기 경기에서는 가장 가벼운 팬티 러닝만 입고 뛰지 않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라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믿음의 달리기에서 무거운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 근심과 염려, 걱정들입니다. 세상 근심을 가득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부름에 힘차게 달려갈 수 없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6:27)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씀이죠. 여기서 는 생명의 길이입니다. 걱정 염려한다고 수명이 늘어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문제가 염려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 영혼에 짐이 되고 독이 될 뿐입니다. 사도 바울도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고후 7장에서 말합니다. 근심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믿음의 달리기를 할 때 우리는 인생의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베드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죄는 우리 마음과 영혼을 얽매이게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죄는 품고 있지 말고 회개하여 내어놓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죄가 우리를 묶어놓아 아무 것도 못하도록 하며 전진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어서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작년에 지은 죄가 나를 묶어놓아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둣가에 묶여있는 배는 아무리 노를 저어 전진하려 해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인간도 죄에 매여 있으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악의 줄을 끊어버려야 하나님께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어떻게 벗어버릴 수 있나요? 옷을 벗듯이 벗어버리면 됩니다. 미련을 갖지 말고 버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야곱, 다윗 같은 믿음의 조상들, 의인들도 다 죄를 지었고 넘어졌습니다. 완전한 자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 죄 가운데 있지 않는 거예요! 지은 죄를 회개하고 끊어버리는 겁니다. 죄를 벗어버리는 거예요! 우리도 이렇게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지금 믿음의 달리기를 하지 못하고 얽어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를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까? 우리는 작은 죄라도 우리 영혼을 얽어매는 것이라면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인내로써 달린다

우리는 달리기에 있어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1절하). 믿음의 달리기에는 인내가 필요해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중도포기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포기하거나 주저앉거나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가십시오. 마라톤 하는 이들은 마라톤에서 제일 힘든 죽음의 지점은 20마일 지점, 그러니까 32km 때라고 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황영조 선수 역시 어떤 때는 가슴이 너무 조여서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었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믿음의 달리기를 하다가 우리도 도중에 포기해 버릴까’ ‘그만둘까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생활이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의욕이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만사가 귀찮고 열정이 사라집니다. 무슨 모임이나 행사가 귀찮게 느껴지고, 피곤하여 낙심될 때입니다. 만약 이때 힘들다고 포기해 버리면 믿음의 달리기를 마칠 수 없습니다. 승리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포기하지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윈스턴 처칠은 2차 대전의 어려움 속에서도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어내어 영국과 자유민주진영을 이기게 한 지도자로 유명합니다. 그가 모교인 옥스퍼드대학의 졸업식에 참여해 연설한 일은 지금도 알려져 있습니다. “학생 여러분,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날의 연설에서 일곱 번의 ‘Never give up!’을 외쳤다고 합니다.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역사의 위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2절중) 예수님은 가장 큰 고통의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곤욕당해 괴로울 때도 입을 열지 않으셨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힘든 것은 아마 제자들의 배신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배신에도 묵묵히 인내하셨습니다! 희롱 당하시고, 발가벗김을 당하셨지만, 짓밟힌 장미꽃처럼 채찍에 맞아 쓰러질 때도 인내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예수님은 참고 견디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믿음의 달리기에서, 인생 중에 온갖 유혹과 시련이 있다 해도 인내해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가정을 포기하지 마세요! 직장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한 영혼의 구원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호와께 돌아가 은혜 받고 열매 맺기를 결단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꿈을 포기하지 말고, 사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고,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으로 할 수 없을 때, 주님 주시는 힘으로 인내하세요! 믿음의 달리기를 계속하십시오!

 

예수를 바라보자!”

이 모든 믿음의 달리기에서 우리는 계속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2절상) 3절에서도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하심으로 예수님을 생각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집 막내가 서울로 취직해서 갔습니다. 이화여대와 이대병원 전신인 시병원을 창립하신 미국감리교회 선교사를 기념하는 스크랜튼 재단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집을 떠나 감리교재단의 한 기숙사에서 살기 위해 들어갔는데, 방을 잘 청소하지 않으면 바퀴벌레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주의문구를 보고 멘붕에 빠졌습니다. 바퀴벌레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낙심이 되며 이곳에서 어떻게 살까?’하는 마음이 들더라는 겁니다.

그 기관은 여성리더십센터라는 재단입니다. 미감리교회와 선교사들이 이 나라에 남긴 상당한 재산들을 활용하여 우리나라와 온 세계의 여성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리더십을 육성하며 신앙으로 살게 하는 큰 재단입니다. 그래서 직장에 출근을 하고 힘께 기도하고 대화하다보니 자꾸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예수를 바라보니까 서울 생활 초기의 적응기간에 생기는 낙심이 다 사라지고 희망과 기쁨이 솟아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실망과 좌절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생겨날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일년도 못 버텨낼 것이었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사역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기에, 감옥에 갇혀있을 때도 배고프고 추울 때도 푯대를 향해 달릴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 믿음의 시작 곧 창시자이며, 우리 믿음의 완성자다.’라는 말입니다. ‘바라본다라는 말씀은 시선을 집중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현재분사로서 계속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본다 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는 성도들이 정말 많습니다. 도무지 예수님으로부터 긍정적이고 힘을 주는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달리기를 하려면 집중하여 예수를 바라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바라보기를 지속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예수님을 계속 바라보아야지 보다 말다 하면 안 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유혹이 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삶의 문제들, 죄와 유혹과 본능적 정욕이 시선을 빼앗아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2)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예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삶의 앞길에 예비되어 있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런 일들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을 바로 잡으시려고 스스로 고통과 부끄러움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합니다. 십자가 지는 것을 큰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을 감추려고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당하는 것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남보다 작고 낡은 차, 오래된 작은 아파트, 못생긴 외모와 작은 키를 부끄러워합니다. 정말 부끄러워 할 것은 복음을 위해 살지 못한 것,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것, 불의와 타협하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 질서를 지키지 않고, 권위를 무시하고, 손해 안 보려 거짓말 했던 것, 이런 것들입니다.

예인건축연구소 이효진 소장 같은 이는 생후 18개월 만에 중화상을 입었습니다. 이런 아기가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것이죠. 그 때문에 학교 다닐 때는 땅만 보고 다녔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뒤 별명이 미스 헤븐’(하늘아가씨)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낳고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엄마>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아무리 어려워도 순종하고 따르는 삶은 하나님 보좌 우편의 영광된 결과를 가져오는 삶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승리, 예수님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새해가 밝았어요! 믿음의 달리기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숨이 차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잘 달리시기 바랍니다. 1)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바라보시며 용기를 내세요! 2)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 염려근심을 벗어버리세요! 3)인내로써 끝까지 달려가셔야 합니다. 4)믿음이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봐야 해요! 그러면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듯이, 우리도 영광과 승리와 축복과 구원을 풍성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

댓글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485 산 위에서 사십 일 (출24:12-18) [2020년 2월 23일, 주현절 마지막/ 변화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23 2
484 반석에서 샘물이! (출17:1-7) {2020년 2월 16일, 주현절 여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16 17
483 은혜의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겔47:6-12) [2020년 2월 9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08 25
482 십자가를 자랑하자 (고전1:18-31) [2020년 2월 2일, 주현절 넷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2-06 21
481 주께 하듯 하고 (골3:18-25) [2020년 1월 26일, 주현절 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25 45
480 새 언약의 직분 (고후3:4-9) [2020년 1월 19일, 주현절 둘째/ 임원임명(취임)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18 43
479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 (요한복음 14:25-28) [2020년 1월 12일, 주현절 첫째 주일] 박신진 목사 2020-01-18 45
478 믿음의 달리기 (히브리서 12:1-3) [2020년 1월 5일, 성탄후 둘째/신년주일] 관리자5 2020-01-07 58
477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마태복음 8:5-13) [2019년 12월 29일, 성탄후 첫째/송년주일] 관리자5 2020-01-07 55
476 침묵하는 요셉 (마태복음 1:18- 25) [2019년 12월 22일, 대림절 넷째주일] 관리자3 2020-01-06 43
475 주의 날을 기다리라! (야고보서 5:7-10) [2019년 12월 15일, 대림절 셋째주일] 관리자3 2020-01-06 41
474 하나님, 몸을 입으시다 (요한복음 1:12- 14) [2019년 12월 8일, 대림절 둘째주일] 관리자3 2019-12-08 103
473 무너뜨리고 세우시는 하나님 (호세아 14:1-3) [2019년 12월 1일, 대림절 첫째주일] 박신진목사 2019-12-01 121
472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행4:36-5:11) [2019년 11월 24일, 성령강림 후 마지막주일] 관리자5 2019-11-29 120
471 복을 부르는 습관 (이사야 65:17-25) [2019년 11월 17일, 추수감사절] 관리자3 2019-11-16 136
1 2 3 4 5 6 7 8 9 10 ...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