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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하듯 하고 (골3:18-25) [2020년 1월 26일, 주현절 셋째주일]
2020-01-25 10:07:48
박신진 목사
조회수   46
설교일 2020-01-26
설교말씀 골로새3:18-25
설교제목 주께 하듯 하고

주께 하듯 하고

골로새3:18-25

2020126[주현 셋째/설연휴 주일]

 

최진연 시인의 설날 아침이란 시를 신문에서 인용해본다. ‘마당가 감나무 꼭대기를 비추는 햇살/ 그 햇살 쬐고 앉은 까치 한 마리/ , , , / 꽁지 까닥이며 깃을 털 때마다/ 떨어지는 발간 햇살부스러기들/ 깃털 무늬 아롱진 축복의 씨앗들/ 까치와 새해인사를 나누려는지/ 설빔을 차려입은 한 아이/ 방문을 열고 뛰어 나가본다.’ 설이다! 조심하여 새해를 맞는다고, 설설 기는 설이라고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목에 풍성하고 넉넉한 인사를 나누면서 설을 지내고 있다. 지난 주간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대한 절기를 지났는데, 이번 주간은 감나무를 비추는 햇살처럼 맑고 풍성한 복이 여러분 가정에 임하기를 기도한다.

 

세 가지 변화

우리 시대에 고민이 있다면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근본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이 변화는 세 가지 특징을 띠고 있다. 개인주의 평등주의 실리주의가 그것이다. 우리 시대 변화의 방향은 첫째로 개인주의로 치닫고 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시대가 이미 왔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도 개인주의적 경향 때문이고, 부모 자녀 간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도 개인주의적인 경향이다. 교인들의 교회 생활도 지나친 개인주의로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둘째는, 평등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상하의 관계가 수평의 관계로 바뀌었다.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전의 사회를 지탱해주던 세 가지 기본적인 상하관계, 통치자와 백성,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다 무너지고 이제는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조금만 어른 노릇 할라치면 갑질한다고 엄청난 반발을 받게 된다.

셋째는, 실리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얼마나 계산이 빠른지! 이유와 명분은 그럴듯하게 세우지만 자기 이득을 계산하여 결국은 이익이 되는 데로 가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관계이든지 실리를 잘 배려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관계 중심의 사회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79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하여 연구한 결과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조화라고 발표하였다. 삶을 가장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외로움이다. 가족과 친구, 공동체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좀더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다.(국민일보 123일자, p.25) 외로움은 독이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은 약이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치중하여 개인적인 생활에 빠져버리지 말고 사람과 어울리는 대면 접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설이면 고향으로 향하는 마음들이 바쁘다. 그런데 이즈음에는 고향 가는 길보다 놀러가는 길이 더욱 붐비는 것 같다. 이제는 아예 명절에 온 가족이 짐을 싸가지고 호텔이나 리조트로 가서 놀면서 명절을 보내기도 한다.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붐비고, 고속도로가 귀향길, 귀경길로 터져나가듯 막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세태이다. 이 명절에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어머니요, 오래된 시골집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가족과의 관계이다.

상호윤리

바울 서신에는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윤리를 보여준다. 3:18-4:1; 5:21-6:9; 딤전2:8-15; 6:1-2; 2:1-10; 벧전2:18-3:7. 특히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단순한 용어로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본문이 서신에 나오는 가정윤리에 관한 말씀 중에 가장 오래되고 오리지널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서가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윤리는 상호윤리이다. 어느 한 편이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은 부부 사이에, 부모 자녀 사이에, 상전과 종 사이에 서로 잘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집안이 편하려면 여자 하기 나름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성서는 남자도 잘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자녀들이 무조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성서는 부모도 자녀에게 잘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 아랫사람이 잘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윗사람도 잘해야 아랫사람이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로 잘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쳐 준다. 만고의 진리이다!

서로 잘하면 이것이 상승효과를 일으켜 착한 가정, 좋은 가정이 된다. 그러나 전통적인 가정은 그렇지 못했다. 여자들의 순종과 미덕을 더욱 강조하다 보니 여자들이 인내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가정이 바로 설 수 없었다. 그런데 여자들의 미덕도 정도 문제이지 남자들이 도와주지 않는데, 어떻게 지속할 수 있었겠는가? 여자들이 칠거지악 중 하나만 범해도 가정 문제의 책임을 지웠는데, 사실은 남자도 그 못지않은 잘못이 있었다. 이렇게 한쪽에만 책임을 지우고 힘들게 하는 태도가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는 데에 큰 장애물이었다.

부모와 자녀 관계도 그렇다. 전통적으로 무조건 자녀들이 부모에게 잘해야 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부모도 부모 나름이다. 부모가 자녀들의 효도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패륜과 무책임과 천박함 때문에 자녀들이 효도하고 싶어도 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자녀들의 효도와 함께 부모들의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윤리는 기본적으로 상호윤리이다. 서로 잘해야 한다.

 

가족을 돌아보아야

그리스도인은 자기 가족을 돌아보아야 한다. 디모데전서 58절은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하였다. 남편과 아내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부모 된 사명을 잊지 않으며, 늙으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고 다른 어떤 위대한 일을 해도 주님 앞에서는 크게 상 받을 것이 없다. 가족을 위한 사명이 가장 우선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믿음 좋다는 이들 가운데 가족을 위한 역할과 사명을 소홀히 하는 이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잘못하는 것이다. 나는 웨슬리가 훌륭한 믿음의 본을 보였지만 가정을 돌보는 면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불화하였다. 언젠가는 친구가 웨슬리 집에 갔더니 웨슬리 부인 손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쥐어져 있고 웨슬리는 방 건너 쪽에 서 있었다고 한다. 웨슬리 가족이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수많은 영혼을 구하고 영국 사회에 경건운동의 불씨를 지폈으며, 세계교회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웨슬리였지만 그가 가족을 더욱 사랑하고 행복한 가정을 세우지 못했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감리교도 대부분은 행복한 가정을 세웠다. 혹시 믿노라 하면서 가정을 소홀히 하고 사랑하는 아내, 남편, 자녀들을 돌보지 못했다면 지금 이후로 가정을 돌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부모공경은 도덕과 질서의 기초

가정윤리에 있어 근간이 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부모공경은 십계명에서 인간에 관한 계명 중에 첫 계명으로 나오는 말씀이다.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계명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다. 계명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 계명은 납득이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실천만이 필요하다. 무조건 순종하여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일단 계명대로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리 부모는 이러하고 우리 집의 형편은 저러해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대로 실천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계명을 어긴 것이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이 주님이 생각하는 부모 자식의 관계이다. 핑계할 수 없다, 이유가 해당되지 않는다. 부모공경은 변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리요 도덕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모든 자녀 된 이들은 부모를 공경하라. 사랑하고 순종하라.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야 다른 모든 인간관계가 바로 된다. 요즘 존경할 사람이 없다고들 말한다. 사실은 존경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효도관념이 약해짐에 따라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이 희박해진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할 때,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을 존경하게 되고, 사회에서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인정하고 따르며, 국민은 나라의 법과 권위를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모든 사회 도덕의 기초가 되고 질서를 이루는 데 바탕이 된다.

 

형통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는 길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범사에 형통하게 되는 복을 주신다. 부모공경의 계명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여셔서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형통하게 하시므로 사업이 잘될 것이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앞서가게 될 것이다. 효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도우셔서 물질적으로 번성하게 하시고, 사람에게 높임을 받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시다. 그분이 약속하시고 보증하신 것이다.

이상하게 일이 안 된다면 우리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부모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필히 돌아보아야 한다. 이상하게 일이 잘 안 풀린다, 정말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지를 돌아보고, 다음은 부모님께 잘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라. 성경이 부모에게 효도하면 형통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 역도 성립되는데,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형통하지 못하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성립된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때 약속하신 또 하나의 축복은 이 땅에서 장수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물질의 부요함과 장수는 큰 복으로 여겨졌다. 단명하는 것보다 장수하여 자손의 자손을 보면서 사는 것은 행복이다. 백수하는 사람들이 많으시기 바란다. 그런데 장수하려면 건강해야 한다. 따라서 장수하리라는 것은 건강을 약속하신 축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효도하는 자에게 건강을 주신다.

  주 안에서 가지는 희망

무엇보다 부모공경과 가정평화는 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은 희망이 있기에 인간다울 수 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호모 에스페란스’, 희망하는 사람이 참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희망의 존재가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박해도 그리스도인을 무너뜨릴 수 없고, 배고픔도 가난도, 시련도 역경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다.

그리스 신화 판도라의 상자는 희망에 관한 것이다.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가 여인 판도라에게 상자 하나를 주면서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판도라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상자를 열고 만다. 그러자 인간이 생에서 겪어야 하는 온갖 종류의 고난인 질병과 전쟁과 아우성이 연기처럼 쏟아져 나온다. 너무 놀란 판도라는 급히 상자를 닫는다. 그러자 상자 속에서 모기 목소리만큼 작은 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나를 보내 주세요. 내가 나가지 않으면 당신이나 사람들은 살지 못해요.” 그래서 판도라는 상자를 연다. 그때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희망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 되신다. 죄와 분열로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죄사함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내려주신 분이 그리스도시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도는 그리스도를 죄 대속하는 제물로 삼으신 진리이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신 구원의 길을 전하는 것이다. 그 복음을 전하고 받기만 하면 인류는 평안과 기쁨 속에 살아가게 된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다 생각한다. 나사렛 시골 출신 예수를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과 십자가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한다는 주장도 다 어리석게 들린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들리지만,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십자가 위에서 깨끗이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이 복음 안에 우리 가정이 바로 서면 평안을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많은 지체가 있지만 한 몸을 이룬다. 우리 가정은 모두 자기 주장이 있고 이해관계가 다르고 서로 부딪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신앙으로 하나 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 속하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다. 그리스도가 너와 나의 마음을 다스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되면 하나되게 하는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듯 보여도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이번 명절에 멀리 갈 것도 없이 여러분 가정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축복한다.

 

부모공경 의식의 회복

어제는 설날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께 세배하고 돌아가신 부모님께 추도예배를 드려 공경하였다. 앞에서 시대의 변화를 말하였지만, 청장년 이하 젊은 세대에게 효도하는 모습이 회복되어야 할 필요를 많이 느낀다. 존경한 사람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존경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존경할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효도 받을 부모가 없는 것이 아니라, 효도하는 자녀가 없다. 부모공경의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변화되는 시대에 주님의 나라를 가정 안에 이루기 위해, 주의 뜻을 충실하게 받들어 행하기 위해, 여러분 모두가 가정을 돌아보라. 특히 부모님께 효도하며, 부모 되신 분들은 자녀들을 사랑하고 편견 없이 배려하는 가정을 이루기를 소원한다. 복음은 배려이고 환대이다. 따뜻하고 정성껏 서로를 대함으로 사랑이 꽃피고 전도가 이뤄지기를 축복한다. 가족들을 대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부모를 공경하기를 주님 공경하듯 해야한다. 부모를 기쁘게 하고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그리하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히 이뤄지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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