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설교일 | 2020-0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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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 출20:12-21 |
설교제목 | 복 있는 계명 |
복 있는 계명
출20:12-21
2020년 5월 10일 [부활절 다섯째/ 어버이주일]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 웹스터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26년간이나 교사로 수고하던 자비스 부인이 세상을 떠난 2년 후 그 교회에서 부인의 신앙과 인격을 잊지 못해 추도식을 가졌다. 그때 그 딸 안나를 초청하였고 안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야기하고 어머님의 석상에 카네이션 꽃을 바쳤다. 그리고 하얀 카네이션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며, 어머니사랑을 기억하는 날을 만들자고 강조하였다. 이 일이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이웃교회로 퍼져나갔다.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니의 사랑을 감사하는 모임이 시작되었고, 사회적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몇 년 뒤에 미국국회는 어머니날을 국경일로 지켰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교사들이 어머니주일을 도입하였고 5월 둘째주일을 어머니날로 지킨 것은 감리교에서 처음 시작하였다. 1955년 5월 8일 주일부터 8일을 어머니날, Mother’s Day로 지켰다. 이 전통을 그대로 받아 국가에서는 56년부터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지키고 있다. 1973년에는 아버지도 포함시켜 ‘어버이날’로 개칭하였다. 교회에서는 여전히 5월 둘째주일을 어버이주일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도 5월 둘째주일인 오늘 어버이주일로 지킨다. 사랑하시고 돌보아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이요, 효도를 배우는 주일이다.
옛날식 가족제도, 소위 봉건적 가족제도는 부모중심의 하향식 가족제도였다. 그래서 부모가 중심이 되고 부모의 권위와 결정권 아래 온 식구가 평안하게 살았다. 그러나 점점 오늘의 가족제도는 우애적 가족제도가 되고 있다. 부모중심의 하향식 가족제도는 통하지 않고, 부부중심의 평등한 가족제도를 택하고 있다. 부부중심의 가족제도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보다는 부부의 관계가 중요하고, 부부의 공동관심사인 어린 자녀들이 의사결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는 올해 5월을 성령의 달로 지키고 있는데, 일년 중 어느 때보다 가정을 생각하는 달이다. 먼저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한 토막을 나누려 한다. ‘오빠 생각’과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와 관련된 이야기를 여러분 아시는가?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한국사람 중에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시는 놀랍게도 1925년 당시 12살 소녀였던 최순애 씨가 쓴 시다. 방정환이 내던 잡지 <어린이>의 동시란에 입선한 시였다.
그 다음 해 16세 소년이던 이원수 씨는 ‘고향의 봄’이란 시를 지어 이 코너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시를 읽고 크게 감동받은 최순애는 마산소년 이원수에게 편지를 띄우기 시작하여 두 사람은 펜팔친구가 되었고,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결혼약속까지 했단다. 편지를 주고받던 7년 후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 자리에 고대하던 이원수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이원수는 독서회를 통해 반일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일경에 구속되어 1년간 감옥에 있던 중이었다.
최순애의 집에서는 이런 예비 사위가 못마땅해 다른 혼처를 알아보고 권해보지만, 최순애는 완강히 거부를 하다 1년 후에 이원수가 풀려나 최순애의 집으로 달려오면서 둘의 사랑은 열매를 맺게 된다. 1936년에 두 사람은 결혼하여 슬하에 3남 3녀를 두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한다. <오빠생각>과 <고향의 봄>의 만남이다.
최순애 선생님이 살아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빠 생각’ 시를 쓴 동기를 밝혔었다. 그 당시 최순애 가정에는 오빠 한 분에 딸이 다섯이어서 오빠는 참으로 귀한 존재였다고 한다. 오빠는 동경으로 유학갔다가 관동대지진 직후 일어난 조선인 학살 사태를 피해 가까스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일본 순사들이 늘 요시찰 인물로 보고 따라다녔다. 오빠는 고향인 수원에서 소년운동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소파 방정환 선생 밑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다.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오질 않았다.
오빠가 집에 올 때면 늘 선물을 사왔는데 한번은 “다음에 올 때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줄게.”라고 말하고 서울로 떠났단다. 오빠는 뜸북새, 뻐꾹새 등 여름새가 울 때 떠나서 기러기와 귀뚜라미가 우는 가을이 와도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 간 오빠는 소식조차 없었다. 과수원집 딸인 그녀는 오빠를 과수원 밭둑에서 그리며 울다가 돌아오곤 했는데, 그래서 쓴 노래가 바로 오빠 생각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이제 옛날처럼 부모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고, 자기는 굶어도 부모를 위해 희생하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말씀이나,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는 바울서신의 말씀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우리 시대의 이런 변화의 와중에 늙으신 부모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심각해졌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부모는 지금도 우리를 배려하시는데, 자녀들은 너무 부모의 희생만을 요구하고 있고, 그런 동안 부모의 고독과 고민과 고통은 점점 깊어지고 있음을 자녀들이 이해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노인들, 어버이들은 3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육체의 ‘질고’를 겪는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젊은 사람들은 아프면 회사에 못 나가고 자녀들 뒷바라지를 못 하니까 당장 병원에 가고 약을 먹지만, 노인들은 그러려니 하여 손을 쓰지 못한다. 경제적 ‘빈고’를 당한다. 경제능력이 없으니까 어디 가서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며,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한다. 정서적 ‘심고’를 겪는다. 모든 면에서 소외되어 있다. 고독감이 엄습하여 한없이 외롭고, 인생이 점점 내려가고 무기력해짐을 느낀다. 누군가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뿐 아니라 분열된 가정과 공동체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어른들, 어버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직도 어버이는 가정을 안정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어른들을 존중하는 사회는 요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녀들이 잘되고 평안하려면 어버이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순종해야 한다. 성경 말씀은 우리 시대에도 귀기우려 들어야 할 소중한 말씀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딤후3:1)’가 이르리라 했다. 거기에 나오는 그 시대의 특징은 잘못된 정신에 오염되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이탈한 것이다. 스무 가지가 넘는 죄악된 모습들 중 ‘부모 거역과 감사치 않음’(딤후3:2)이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 이런 잘못된 시대정신을 역행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b)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길이 사망과 심판을 향한 길이라면 따라갈 수만은 없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편한 게 행복’이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이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인간이 경험한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것과 반대되는 생각이다. 서양 속담에 ‘희생이 없이 왕관도 없다’(No cross, no crown.)이라는 것이 있다. 무슨 일이든 행복과 보람은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부모를 외면하거나 무관심 하는 것은 가정과 사회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넘어서야 할 문제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십계명의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 대인계명 부분과, 십계명의 결론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 연기를 통해 위엄을 가지고 말씀함으로 어기면 죽음이라는 강력한 모습을 보이시고 있다. 사람에게 그 계명들은 꼭 지켜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죽음이다-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1-4계명, 사람을 섬기는 것이 5-10계명인데, 사람 섬기는 중 첫 번째가 부모 공경이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계명이다. 본문 12절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한다. 고령화 시대에 장수가 모든 축복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는 것은 하나님께 받아 누릴 수 있는 건강과 넉넉한 축복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신약 바울서신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면 이로써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출애굽의 복을 다시 강조하였다. 잘된다는 말이 무엇이겠는가? LB에서는 ‘full blessing’이라고 하였는데, 모든 복을 다 가리키지만 특별히 생활의 축복을 말하고 있다. 부모를 공경하면 생활의 안정과 윤택함을 주신다고 약속하였다. 복달라고 자꾸 빌기보다 복 받는 길로 행하라. 그 중에 하나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여기서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은 곧 건강을 말한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지렁이도 도마뱀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인데, 부모공경을 하면 이 건강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부모를 섬기는 것이 자신의 자녀에게 복이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나무에 달린 과실을 제대로 익어가게 하려면 상황에 따라 비상시에 행하는, 거름을 잎이나 열매에 뿌려주는 엽면시비보다, 평소에 뿌리에 넉넉한 거름을 주어 힘 있게 자라게 하여 모든 화초나 과목을 튼튼하게 하는 일이 더 필요한 것과 같다. 부모 공경은 뿌리를 돌봄과 같다. 뿌리가 흡수한 양분은 필요한 부위에 적절하게 공급되기 마련이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 섬김과 자녀 사랑의 통로가 되니, 이것이야말로 복 있는 계명이요 복 받는 비결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주인 삼고 사는 정신으로 부모를 잘 모시라는 것이다. 이는 내 마음에 맞으면 공경하고 마음에 맞지 않고 존경심이 생겨나지 않으면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과 자신의 자식이 하나님께 복을 받아 살기 원하면 제5계명의 준수는 필수적이라는 말씀이다. 마땅한 것이다. 엡 6장에서는 “이것이 옳으니라!”고 한다. 우리 시대는 자식 사랑은 지나칠 정도이고, 부모 공경은 너무 피상적이고 형식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곳곳에서 부모의 명령에 순종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잠1:8을 보라.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한평생을 지혜롭게 살았던 솔로몬이 내린 인생의 결론은 부모의 명령과 교훈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자식들에게 순종이 유익함을 가르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부모의 말을 멸시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의 명령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명령임을 깨닫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 물론 시대가 급변하므로 과거의 가치관과 현대의 가치관이 충돌하여 부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이때는 부모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최대한 인정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자식이 잘되는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가장 큰 행복이다. 자식이 잘되는 일이라면 부모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일이라면 대신 죽을 수도 있다. 자식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풍성한 복을 받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부모가 기도하며 원하는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받는 것이다. 자식들에게는 잘되고 싶은 소망이 있을 뿐 아니라 잘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참된 효도는 어버이날 가슴에 꽃 하나 달아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는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여 드리는 것이다. 자랑거리가 되게 해드리는 것이다. 승리하며 사는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다. 부모님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부모님의 가슴이 보람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드려야 한다. 남은 인생을 자녀들이 형통한 복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살도록 해야 한다.
중부연회 감독을 지낸 인천 부광교회 김상현 목사 아들이 예전에 내가 신병으로 훈련받았던 화천의 어느 부대 훈련소에 입소했다. 마침 당시 화천에 있던 최헌영 목사가 주일날 저녁에 자기 아들을 좀 찾아봐 달라는 김 목사의 부탁을 받고, 찾아가 만났다. “아버지가 가라 그래서 목사님이 너 보러 왔다.” 했더니, 신병으로 얼굴이 새까매진 김 목사의 아들이 금방 눈에 눈물이 맺히면서 흐느끼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 목사님이 “왜 울어?” 그랬더니, “글쎄 주일날 교회에 가니까 왠지 그냥 눈물이 흐르네요.” 하더라는 것이다. 아버지 후배 목사의 방문과 격려를 받고 아버지 은혜가 생각나서 우는 것이었다.
자식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 군대에 들어가 아버지가 보낸 다른 목사님의 따뜻한 방문을 받고, 어버이의 사랑을 느끼고 감격해 하는 후배 목사의 아들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부모의 사랑은 다함이 없다. 오늘만이라도 부모를 기억하며 부모를 위해 기도하고 전화라도 한 통화 드리기를 바란다. 가정마다 자식 사랑과 부모 공경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 지기를 바란다!
부모님 사랑이 값없이 내게 주어졌음을 떠올리게 하는 동영상을 하나 보겠다.
[동영상 상영/ 3분]
‘아들은 마당 치웠다고, 심부름 했다고, 도합 14달러 75센트를 청구하는데, 노래로 나오는 엄마의 말은 평생의 수고와 희생이 무료라고 한다. 그러자 아들이 자기의 청구는 이미 베풀어주신 부모님 사랑으로 완불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대화인데, 값없이 다함 없이 주시는 부모님 사랑을 일깨워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처럼, 부모님은 값없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도 부모님을 공경하며 노후를 즐겁게 해드리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아멘!! 부모 공경하라는 계명은 꼭 지켜야 할 계명인데, 복이 틀림없이 따라오는 계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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