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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하게 하는 사람 (마태5:1-10) [2020년 5월 24일, 부활절일곱째/ 웨슬리회심282주년기념주일]
2020-05-23 11:19:49
박신진 목사
조회수   52
설교일 2020-05-24
설교말씀 마태5:1-10
설교제목 화평하게 하는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5:1-10

2020524[부활절일곱째/ 웨슬리회심282주년기념주일]

 

사랑하는 제일교회 모든 성도들께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 웨슬리회심 282주년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산상수훈 첫 말씀인 팔복의 말씀을 읽었다. 웨슬리는 교회역사상 뛰어난 선교의 열매를 맺은 인물인데, 그에 비하여 저술이 적었다. 대표적으로 표준설교를 남겼다. 당시 이 설교는 뛰어난 설교였고, 지금까지 모든 감리교인들과 개신교인들 전체에 신앙과 실천의 표준이 되는 말씀이다. 44편의 표준설교와 9편의 보충설교로 이뤄져, 보통 53편의 표준설교가 전해진다. 그 중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관한 설교가 무려 열 세 편이다.

올해 웨슬리회심주일을 맞이하면서 무슨 설교를 할까 하였을 때, 웨슬리표준설교에서 설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고, 그 중에서도 팔복의 말씀을 설교하려고 한다. 그것은 웨슬리의 사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전해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특히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 말씀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나?’ ‘왜 우리를 감리교인으로 부르셨나?’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설교는 구원에 관하여 말씀한다. 구원이란 개념을 현대적으로 풀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바로 행복이 가장 적합하다. 행복의 길,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말씀이고, 웨슬리도 그런 점에 평생 노력했던 사람이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오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하늘 가는 길, 행복의 길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웨슬리는 성경말씀을 선포함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려고 애썼다. 웨슬리 표준설교 서문을 한 곳 인용해보겠다.

 

저는 창공을 가르는 화살처럼 그저 인생을 지나는 피조물이며,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한 가지, 그것은 바로 하늘 가는 길’(the way to heaven)입니다. 그 행복한 곳에 안전하게 닿는 법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그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한 책에 그 길을 적어 놓으셨습니다.

-<표준설교> 서문

 

행복은 하나님에게서

오늘 말씀 앞부분에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셔서 제자들에게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유대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랍비가 가르치기 위해서 앉으면 뭔가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것을 말한다는 표시이다.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원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산 위에 올라 마음을 열고 가르치셨자. 산상수훈의 첫 부분은 여덟 구절의 중심에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배치한 팔복의 말씀으로 시작된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한마디로 기독교 이상주의의 가르침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 이 말씀대로 살려고 했다가는 실패하기 쉽다고 말한다. 너무 이상적이어서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도 한다. 산상수훈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마음과 삶의 성결에 관한 이야기라고 웨슬리는 말했다. 또한 이 가르침은 참된 거룩함과 행복으로의 달콤한 초대이다. 여기서 복이 있나니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이라고 하는데 행복할 것이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기 때문이다.

행복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감정이나 어떤 상황에서 만족감을 느낄 때 사람들은 행복해를 말한다. 그런데 웨슬리는 가볍고 사소한 쾌락이나 만족이 아니고, 깊은 영혼의 충만과 지속적인 만족을 의미하는 행복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요구는 무한과 절대를 꿈꾼다. 그러기에 유한한 것으로 영혼의 갈망을 채우려고 할 때 실패하게 된다. 우리는 영의 근원이신 하나님에서부터 오는 무한한 것으로서만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로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복 있는 성품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무슨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의 관점에서 팔복을 해석하기 보다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나가야 하는가라는, 관계의 차원으로 팔복을 해석하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꾸 뭘 해야 한다, 뭘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관점으로 행복에 대해 말하다 보면 늘 우리는 쫓기고 못 미쳐서 실패하게 된다. 행복의 길은 무엇을 행하고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품이 좋아져서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이다.

팔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 안에 거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서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어가는 내용이 바로 팔복의 내용이다. 어렵게 종교적인 의무를 감당하는 데다가 더 이상의 희생과 고난을 요구하는 말씀이 아니다. 많이 배워야 하고, 무언가 특별한 행동을 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진실하게 살아가는 좋은 성품의 사람이 되면, 거기에 행복이 이뤄진다는 말씀이다.

첫 여섯 개의 복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말한다. 마음이 가난한 것, 즉 욕심이 없고 겸손한 것이다. 애통하는 것, 징징대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바르게 살다보니 마음 아픈 일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온유한 성품, 행복을 위해 얼마나 필요한가! , 사람은 부를 추구하기 보다 반듯함, 의를 추구하는 게 행복해지는 데 필수이다. 자비, 남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리고 마음의 정결이다. 마음이 지저분하면 불행하다.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성품을 가지고, 이런 관계 속에서 산다. 그때 행복하다!

이 복 있는 성품은 성령의 열매들과도 연결된다. 사랑과 희락은 마음이 가난하고 온유한 것과 통하고, 인내와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의로우면서 온유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가지는 인격이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무엇을 위해 있나?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올바른 기질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에게 심어주신 이 기질과 성품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게 돕는다. 이 여섯 가지 복이 바로 팔복 중 일곱 째 복인 화평의 복과 여덟째인 의를 위해 박해받는 복에까지 이른다. 화평을 이루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명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실 때 좋은 성품을 가지도록 부르셨는데, 마음 가난, 온유, 자비와 마음 청결이다. 그런 중에 더욱 두드러지게 하나님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시는 성품은 화평하게 하는 성품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평화에서 온다. 그리스도인은 화평하게 하도록 부름받았다. 평화를 이루는 일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부르실 때 요구하시는 가장 복된 성품이다. 여러분은 평화를 이루며 사는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은밀한 자기만족을 채우려고 불화를 일으키며 사는가? 그리스도인 성품의 가장 빛나는 열매는 화평하게 하는 성품이다!

구약의 대표 위인 모세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었다. 지난 주간에 읽은 말씀 중에 히브리백성들이 모세가 계명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 늦어지자 기다리지 못하고 금으로 된 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하는 죄를 저지르는 대목이 출애굽기 32장에 나온다. 하나님은 너무 기가 막히셨고 화가 나셨다. 다른 일도 아니고 자기들이 질서 있게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계명과 법률을 일러주히는 때이다. 모세를 불러 40일 동안 계시를 받고 있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을 하다니!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9-10) 그때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면서 목숨을 걸고 중보기도를 드린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2:32) 모세가 이렇게 전력을 기울여 화평케 하는 일을 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셨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할 때는 어땠는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화평케 하는 기도를 드리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50명의 의인부터 시작하여 10명의 의인을 찾으시나 그 땅에는 그조차 없었다. 결국 다 멸망하셨으나 아브라함을 보아서 조카 곳을 구원하셨다.’

우리 주 예수님은 화평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평케 하셨다. 아담의 범죄와 배신으로 죄와 죽음이 인류에게 들어왔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단절되었고 낙원에서 쫓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한 삶을 사시고, 고난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하셨다. 이 모든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평화의 다리였다. 자신을 드려 죄값을 치루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를 만족시키시고 저주의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아무 값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선물로 하나님은 평화를 주셨다.

 

웨슬리의 후예인 감리교도의 사명

그리스도께서는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다. 아무 값도 요구하지 않으시면서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는 일을 하도록 부탁하셨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웨슬리와 초기 감리교도들은 이 사명을 엄청난 힘으로 감당했다. 초기 감리교도들은 연회에 참가하고 흩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관해 질문하였고, 그것을 연회록에 기록해 두었다. “메드디스트라고 불리는 설교자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러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국가, 특별히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그리고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성서적 성결의 전파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변혁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성서적 성결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온 인류를 사랑하는 것, 즉 이 땅 위에 하나님의 평화를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성결을 통하여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매주일 예배에 나올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다시 고백하고 구원과 행복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이상과 죄와 죽음과 마귀의 저주에 매여있지 않을 것이다. 주 안에 있는 자들은 행복하다! 예수님이 선포한 팔복의 말씀은 바로 이 점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는 가까운 이웃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 사실 가까운 이웃과의 화평이 더 어렵다. 그들은 평생 우리와 함께 할 것이며, 매일 우리가 부딪치는 형제요 자매들이다. 먼저 가족이다. 여러분은 가족들과 평화를 누리고 있는가? 왜 가족들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가? 우리가 복음 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복음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 그리하면 가족과의 화평이 찾아올 것이다. 또 한 교회의 교우들이다. 의외로 믿음의 가족들, 천국을 향한 길벗으로 부름받은 한 교회 식구들과 화평하지 못한 교우들이 많다. 왜 교우들과 평화하지 못하나? 자기중심주의 때문이다. 배려와 환대가 부족하다.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에게 철저하라.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우리는 나그네와도 화평해야 하고, 원수에게까지 평화를 선포해야 한다. 내 편하고만, 친구하고만 평화를 누리는 것은 불신자들도 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방인과 원수에게도 평화를 선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렘브란트의 명화 돌아온 탕자는 러시아 상크페테르스부르크 예르미타지 미술관에 있다. 이 작품은 헨리 나웬의 그림 감상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나웬은 무릎 꿇은 탕자의 등을 주목했다. 등 위에 강조된 것은 아들을 포옹한 아버지의 커다란 두 손이었다. 두 손은 크기가 서로 다른데, 한 손은 크고 넓적하고 한 손은 약간 작고 섬세하다. 렘브란트는 아버지의 손과 어머니의 손을 함께 그려넣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공의로운 마음과 어머니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납하시고 품어주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화평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 모두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 행복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말 한마디로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나를 지키기 위해 남을 비난하고 험담하여 공동체의 화합이 깨지게 하고, 먼저 양보하고 희생하면 될 텐데 한사코 자기 이익만을 주장함으로, 결국 화평을 깨고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진정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그분의 은혜를 어디에서 구할 수 있나? 어떻게 해야 대속의 피가 뿌려지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져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오를 수 있을까? 웨슬리는 은혜 주심에 대해, 그 은혜를 기다리고 누릴 수 있는 수단에 대해 설교하였다. 표준설교 12은혜의 수단이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성찬을 은혜의 수단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 이외에도 금식과 선행,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대화가 은혜의 수단이다.

우리가 이 은혜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금식하며 성경말씀을 읽고 설교를 귀기우려 들을 때 은혜가 임하게 되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구할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샘솟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해주신다. 은혜로써만 사랑을 행하게 되고, 사랑의 실천이 있을 때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 화평케하는 자의 아름다운 성품이 우리 가운데 자리잡게 되고, 위대한 하나님 나라가 내게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끝으로 정말 조심하라! 우리 안에 내적 외적 거룩의 발전이 있다면, 그리하여 부족하나마 나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평화가 이루어진다면, 자기 자랑의 구실을 삼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계기로 삼으라! 화평케 하는 감리교도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된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우리교회와 여러분이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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