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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전쟁참여 (창14:8-16) [2020년 6월 28일,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2020-06-27 12:32:39
박신진 목사
조회수   104
설교일 2020-06-28
설교말씀 창14:8-16
설교제목 아브람의 전쟁 참여

아브람의 전쟁 참여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14:8-16

2020628[성령강림후 넷째주일]

 

요즘 자녀들을 군대 보낸 집에서는 염려가 많을 줄로 안다. 우리쪽에서 북한으로 보내는 전단 풍선에 대해 김여정이 분노한 성명을 발표하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남북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중심에 서있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버린 것이다.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재작년에 맺은 남북평화협력을 위한 선언들을 다 부인하면서 적대세력으로 대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북한 언론에서는 남한을 향한 분노어린 집회와 언사들이 앞을 다투어 발표되었다. 그러자 청와대는 전에 없이 강경한 논평을 발표하였고, 국방부도 침범할 시 엄단하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발표하였다. 미국도 항공모함을 우리지역으로 이동시키고, 폭격기를 띄웠으며 북한을 샅샅이 살피는 엄청난 성능의 정찰기가 상공을 감시하게 하였다. 일촉즉발, 전쟁 위기를 느끼게 하는 한 주간이었다.

모두가 염려하며 냉전시대가 오겠구나 하는데, 어쩐 일인지 지난 주간에는 김정은이 모든 군사작전을 연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방 비무장지대 여러 초소로 군인들을 전진시켜 위협하듯이 다니게 하고, 서해안 방공포대의 위장막이 제쳐져 있어 발포를 준비하듯 하던 것도 다시 원위치가 되는 모양새다. 강경태도로 대응하던 우리 행정부와 군부도 자제하는 듯한 논평을 발표하였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지만, 분쟁과 전면전의 위기는 넘어가는가 싶다. 남북 정치하는 사람들! 국민들 좀 안심하게 언사와 행동을 조심해줬으면 좋겠다!

한국전쟁 70주년을 지나고 있다. 전쟁은 인간사에 가장 큰 비극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터지지 말아야 한다. 전쟁을 막지 못하는 정부, 전쟁을 조장하는 정당은 존재 이유가 없다. 전쟁이 터지면 그때는 개인의 행복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아무리 사람이 개인적으로 열심히 노력해도 사업도 공부도 가정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게 된다. 전쟁은 이겨도 남는 것이 별로 없으며, 지면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만다. 상대가 못되게 한다고 전쟁을 불러서는 안 된다. 속이 터져도 전쟁을 막는 게 상수다.

 

아브람의 전쟁 참여

그러나 고대에는 전쟁이 일상이었다. 아브람 시대에 큰 전쟁이 있었다. 부족끼리 영토분쟁 하는 소규모 전쟁이 아니었다. 현재 아랍지역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동맹을 맺고 군사를 동원하여 멀리까지 원정을 가는 대규모 전쟁이었다. 엘람이라는 나라의 그돌라오멜은 큰 왕이었다. 그 지배영역이 가나안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소돔이나 고모라 왕들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쳤다. 무려 12년 동안 조공을 바쳤는데, 13년 째 되던 해 주위 나라들이 엘람에 반발하기로 작정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배반하는 가나안의 부족들을 징벌하러 주위 세 나라와 연합하여 침공했다. 소돔 주위의 다섯 나라 역시 그들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모았다.

지금 이라크와 이란 지역에 있던 네 나라와 팔레스틴의 다섯 나라가 전쟁을 하게 된 것이다. 소돔 연합군은 어떤 전략을 세웠는가 하면, 엘람 연합군이 오면 역청구덩이가 많은 지역으로 피신하여 적군을 빠지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그곳이 석유가 많이 나는 곳이라 아스팔트 같은 역청 구덩이가 많았다. 그런데 그돌라오멜의 군사들은 역청 구덩이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요단 동편의 길이 좋은 곳으로 신속하게 내려왔다. 그리고 밑으로 에돔 땅까지 공격한 후에 다시 위로 올라오면서 소돔과 고모라를 공격했다. 그러자 소돔 연합군이 준비했던 역청 구덩이에 오히려 자기 군사들이 빠져 죽고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쳤다.

소돔과 고모라는 전쟁에서 크게 패배하였고 모두 포로로 끌려갔다. 여기에 아브람의 조카 롯의 가족도 잡혀가고 재물도 많이 빼앗겼다. 롯은 소돔 지역을 선택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삼촌 아브람은 어떤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눈에 좋은 대로선택했던 사람이다. 롯은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의 계획 안에 하나님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다. 롯은 하나님도 생각하지 않고 삼촌 아브람의 입장도 고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 결과 롯의 인생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전쟁이 들어왔고, 큰 위기를 당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브람은 어떻게 반응하였나? 소돔은 롯이 삼촌을 밀어내고 먼저 선택한 장소다. 롯은 자기만 아는 버릇없는 조카였고, ‘맞아도 싼 놈이었다. ‘에이, 그 자식! 자기만 이기적으로 지키려고 하더니,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렇게 말할 만도 하였다. 그러나 아브람은 롯을 위해 군사들을 동원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롯의 가족과 그 재산을 도로 다 찾아왔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롯의 잘못된 선택과 아브람의 신실함을 보여준다.

 

롯의 잘못된 선택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만을 선택한 롯은 결과적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는가! 자기를 하란에서부터 데리고 나와 인도한 삼촌을 생각하면 롯은 삼촌께서 먼저 선택하세요!” 해야 마땅했거늘, 그러지 못했다. 사람은 아무리 다급하고 자기 이익이 보여도 경우에 맞게 행동하고 남과 함께 공평하게 결과를 나누어야 한다. 롯은 번번이 자기 이익대로 먼저 약삭바르게 택했다. 그 당시에는 물이 넉넉하고 비옥한 초지로서 누구라도 탐을 내었던 소돔과 고모라 땅을 먼저 선택하여 큰 이익을 얻었지만, 결과적으로 롯은 가장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세상에는 두 가지 지혜가 있다. 하나는 물질적으로 따지고 남보다 더 큰 것을 선택하는 세상의 지혜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다. 세상의 지혜는 숫자와 크기로 판단하는 지혜이다. 보이는 것으로 경험을 통해 정하는 것이다. 어려움이 없을 때 이런 세상의 지혜가 잘 통하는 듯이 보인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를 위주로 결정하는 지혜다. 롯은 항상 하나님의 지혜보다 세상의 지혜를 위주로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롯이 망한 이유가 어디 있나? 그가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고 인간의 지혜를 택한 데 있다. 물론 세상의 지혜도 필요하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 오면, 한계상황에 부딪히면 인간의 지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믿음, 이것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아브람이 훈련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지혜와 믿음으로 사는 능력이다. 롯은 그런 영적인 감각이 없었기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롯은 하나님을 믿지만 전적으로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소돔이라는 현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 소돔 사람들이 당하는 심판을 같이 당하였다.

 

아브람의 신실함

아브람은 이 상황에서 얼마든지 롯의 형편을 외면할 수 있었다. 아브람이 개입할 상황이 아니었다. 전쟁은 너무 컸고 조카는 자기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다. 아브람은 아무 책임이 없었다. 그러나 신실한 아브람은 조카의 형편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지려고 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성품, 책임지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인애라고 한다. 아브람은 인애의 사람이었다. 전쟁에서 도망친 자를 통하여 롯이 잡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조카의 형편을 못 본 척하지 않았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13-16)

다섯 왕이 싸웠지만 이기지 못한 전쟁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길 수 있었나? 불가능한 싸움이었으나, 롯이 자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 자기는 골육이므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전쟁에 뛰어들었다. 아브람은 훈련시킨 정예병을 이끌고 엘람 연합군의 일부를 급습하여 조카와 가족과 그 재산을 다 찾아왔다. 자기의 모든 것을 기울여 상대방을 책임지는 것, 이것이 하나님 믿는 자의 인애이다. 하나님 백성은 이 인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계산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 십자가 지신 그 사랑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선교사로 파송했으면, 어떻게 해서든 그 임무를 완수하도록 기도하고 책임지고 도와주는 것이 인애이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 어려운 교회, 외면하지 않는 것이 인애이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목숨을 걸고 히브리 정탐꾼을 숨겼을 때, 그들 또한 라합과 그 식구들의 생명을 지켰다. 이것이 바로 인애다. 아브람은 인애로써 조카인 롯을 지켰다.

우리에게는 이런 인애가 있는가? 하나님은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참여의 주님이시다. 세상이 죄로 가득할 때 바라보고만 있지 않으시고 아들을 보내시어 죄를 대속하시는 분이시다. 무모할 정도로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분이시다.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들 가운데 나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못 본 체하고 지나는 냉담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전쟁에 참여하는 아브람의 모습을 기뻐하셨다. 그래서 아브람이 공격할 때 적들의 마음에 큰 두려움이 임하여 도망치도록 하였다.

아브람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인가? 영웅심인가, 영토를 확장하거나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한 것인가? 아니다. 신실한 사랑이었다. 이 사랑이 아브람으로 하여금 전쟁에 참여하게 하였고, 그것이 하나님의 도움을 이끌어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 신실함에 움직이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대부분의 일들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인애를 가지고 신실한 모습으로 일할 때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아브람이 전쟁에 참여할 때가 있듯이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교인 중에 누가 시의원이나 시장,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경우처럼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투표하는 것, 누구를 돕는 것도 정치 참여이다. 조카가 가족들과 함께 포로로 잡히고 망하게 생겼는데도 모르는 척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 수 없다. 이처럼 사회가 급변하여 사람이 필요하고 국가에 할 일이 많은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거룩함을 지킨다면서 무책임하게 보고만 있으면 안 된다. 투표에 동참하고 누군가 정당한 정치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교인들도 자기 소신을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꼭 성공하여 잘 봉사하기 바란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교분리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여 이익을 얻거나 권력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경계하고, 또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통치를 손쉽게 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생겨난 것이다. 종교도 하나님 뜻에 맞게 사람을 구원하고 이롭게 하는 데에 초점이 있고, 정치도 결국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 둘은 서로 견제하면서 협력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가 종교화되거나 종교가 정치화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다.

심방하다가 한 권사님 전화에 딸깍!” 무슨 문자가 온다. 보시더니 아유, 이런 것 때문에 요즘 골치아파요!” 하신다. 상황을 보니까 신앙인인 지인이 어떤 문제에 대하여 정치권을 비난하고, 문제를 확대하여 거짓 뉴스를 퍼뜨리는 문자를 보낸 것이다. 각자 개인의 자유로운 판단이 있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거나 과장하고 폄훼하여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이웃을 사랑하여 전쟁을 막고 세상에 평화번영을 가져오는 데에 여와 야가 어디 있으며, 진보와 보수가 어찌 문제가 되겠는가! 아브람이 지혜롭게 결단하여 조카의 전쟁에 참여하여 가족을 구원해냈듯이, 정치적인 일에 참여하더라도 바르게, 절제되고 분별력 있게 참여해야 한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은 한국기독교회를 대표한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치우치고 과격한 정치입장을 표명하여 기독교 전체의 이미지를 크게 흐리고 있다. 이분의 원 의도와는 달리, 이런 편파적인 태도가 교회와 복음에 대한 반감을 일반사회에 널리 퍼뜨려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젊은이들은 이 사람을 막 비난하면서 기독교를 오해하고 비하하는 말들을 퍼뜨리고 있어서 얼마나 전도에 장애물이 되는지 모른다.

사람이 보수일 수도 있고 진보일 수도 있으며, 여와 야, 좌와 우의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다. 크리스챤이라고 어떤 정치입장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기본적인 상식과 교양의 범주를 벗어나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욕설과 파당짓기로 흐를 때 하나님을 배반하는 정치가 되고 만다. 크리스챤의 정치참여는 아브람의 전쟁참여의 정신, 인애의 마음에 비추어 지혜롭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아브람 같은 신실한 형제애가 있는가? 하나님 같은 인애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쓰고, 기꺼이 세상일에 참여하는가? 어설픈 판단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입장으로 남을 가르치려 하거나, 정치 말단에라도 참여하여 어떤 이익이라도 얻으려는 이들은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웨슬리는 회심한 후 기도하는 일과 말씀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남는 시간을 전적으로 사회의 어두운 곳을 돕는 일에 헌신하였다. 초기 속회운동도 사실 이웃을 돕기 위한 1페니 모으기에서 시작된 신앙실천운동이다.

여러분, 이웃을 위해 지역을 위해, 선한 정치를 위해 참여하는 것은 자유이나, 제발 예수님이라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하셨을지 지혜롭게 분별하여 참여하라! 지금도 앞장서 정치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면서 정치권과 애쓰는 공무원들을 함부로 비난하여 전 사회에서 교회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도록 하는 이들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아브람처럼 형제에 대한 인애를 가지고 사회와 민족을 위해 정치라는 전쟁에 참여하여 진실하게 봉사하는 이들은 복이 있다! 주 안에서 좌와 우, 남과 북을 아우르는 형제사랑의 인애가 승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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