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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닥쳤을 때 (마태14:13-21) [2020년 8월 2일, 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2020-08-01 17:04:49
박신진 목사
조회수   20
설교일 2020-08-02
설교말씀 마태14:13-21
설교제목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가 닥쳤을 때

마태14:13-21

202082[성령강림후 아홉째주일]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아쉽게 여기는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대가 다산 정약용은 1801년부터 18년까지 유배생활을 했다. 그의 나이 마흔에서 쉰일곱까지의 세월이었다. 남편이 있지만 그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아내와 아버지가 있지만 함께 해주지 못하는 자녀들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지냈다고 한다. 그의 나이 마흔 하나일 때, 강진이란 시골에 유배당해 있으면서 막내아들이 병으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가 제게 돌아오셔도 발진이 나고 아버지가 돌아오셔도 마마에 걸릴까요?” 네 살짜리 막내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어머니에게 했다는 말이다. 머나먼 곳에 유배 중이던 아버지가 옆에 있다고 병이 나을 리는 없겠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자신의 병이 아버지가 함께 하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다산은 결국 그 막내아들 농장이란 아이를 이듬해 180212월에 잃는다.

아들이 죽었어도 유배지인 강진에 묶여있는 처지가 기가 막혔지만, 아들을 품속에서 꺼내 흙구덩이 속에 집어넣고비통하게 울었을 아내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아들이 죽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비였던 다산은 아들의 무덤에 묻어줄 글 농아광지를 써서 보내주는 것으로 슬픔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언제 태어나고 죽었으며 생김새와 특징은 어떠했는지 기록한 글이라고 한다. 아들의 짧은 생애의 흔적을 기록하여 애도하는 것이었다.

그 글에서 다산은 자신이 보낸 두 개의 소라 껍데기를 보고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는 아들을 생각하며, 죽었어야 하는 것은 자신인데 아들이 죽었다며 한탄했다. 아홉 명의 자식 중 다섯이 죽고 막내까지 죽었다. 너무 기막힌 운명이었다. 고통스런 마음과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가득한 농아광지는 지금도 남아있다. 오늘 우울한 조선조말의 한 가정얘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우리 삶에 이런저런 불행과 위기가 끊일 사이가 없음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아들의 이 말이 마음에 걸린다. “아버지가 제게 돌아오셔도 발진이 나고 아버지가 돌아오셔도 마마에 걸릴까요?” 질병과 위기에는 더욱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가 필요하다!

 

오늘 읽은 말씀은 복음서에 너무나도 유명한 그 말씀, 오병이어 사건을 보여준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광야의 식사 이야기다. 빈들의 잔치가 벌어졌다는 내용이다. 이 복음서의 이야기를 그려놓은 그림을 보면 보통 푸른 초장에 평화롭게 사람들이 둘러앉았고 예수님이 한 아이의 도시락을 들고 기도하시는 평화롭고 멋진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오병이어 사건이 있었던 이날의 예수와 제자들의 풍경은 그리 한가롭지 못했다. 굉장한 위기가 시작되어 시련의 광풍이 막 불어오던 때였다. 마태복음의 맥락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1214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오늘 14장의 5천 명 먹이는 기적 사건 얼마 전에 유대사회에서 발언권이 강한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예수를 죽일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안식일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유대종교인들과 유대지도자들은 예수가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유대교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은 오병이어의 기적 바로 앞에 세례 요한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사람이고 마지막 선지자로서 조금도 타협하거나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영의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했을 때 세례요한을 따르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신약연구가들은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에게 온 사람이 3-4명에서 절반 가량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처음에는 예수님 제자들보다 세례요한 제자들이 더 많았고, 차츰 그 중에 상당한 인원이 예수 주위로 몰려오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헤롯의 새 부인 헤로디아의 딸의 요구로 단두되어 죽었다는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보게 되었다. 분명히 세례요한을 따르는 광야의 경건주의자들이 많았다. 한때는 유대사회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세력이었다. 그런데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을 죽이고 그 아내 헤로디아를 새 부인으로 받아들였다고 세례요한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그 때문에 미운털이 박혀서 감옥에 갇혔던 것이다. 그러다가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이 많이 온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추었고, 기분이 좋아진 헤롯이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자, 딸이 엄마와 공모하여 헤롯과 헤로디아의 혼사에 가시노릇을 하는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 하니 그대로 처형하여 소반에 머리를 얹어 주었다. 세계역사에 기록될 만한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다. 자기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했다고 이렇게 잔인하고도 충격적으로 죽인 예는 그렇게 흔치 않다!

이 즈음에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켜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위대한 말씀을 전하는 때였다.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신하들에게 이는 세례요한이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이런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마태 14:2). 오늘 성경은 한편으로는 예수 복음운동이 막 일어나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핍박과 살해위협이 일어나고 있었다. 새롭게 일어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수운동에 대해서는 예수를 죽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데다, 세례요한을 죽여서 민심이 흉흉할 때, 문제는 헤롯 당국까지 예수를 세례요한이 살아난 것으로 간주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한 유대사회에서도 예수를 대적하는 무리들이 생겼고, 헤롯 당국도 세례요한과 관련하여 예수와 그 무리들을 위험하게 보기 시작했다.

예수의 복음 운동에는 많은 위기가 있었다. 본문 무리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헤롯왕과 로마당국은 이 무리들을 위험하게 보고 있었다. 언제 데모하다가 나라를 뒤집을지도 모르는 무리들이었다. 그 무리들은 병들고 배고픈 무리들이었다. 정말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의 사역과 생애에 큰 위기가 닥쳤다. 세례요한이 그랬던 것처럼 처단당하고 뿔뿔이 흩어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뻗어나갈 것이냐 하는 갈림길이었다. 예수님 공생애의 큰 위기상황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이걸 보면 우리도 위기를 만날 때어떻게 할지를 알 수 있다. 위기는 변화의 기회다, 대개 위대한 일은 위기를 겪으면서 이루어진다.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주님은 확실히 보여주신다!

 

1. 먼저, 위기가 닥쳤을 때 예수님은 주저앉아있거나 물러서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위기 때에 전진하셨다, 활동하셨다! 위기 때의 예수님의 행동방식, 그것은 지엽적인 데 매달려있지 않고 담대하였고, 크게 보고 전진하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13절을 보자,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지금 예수님은 무슨 소식을 들으셨는가? 주님오실 길을 예비하신 위대한 선지자,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 세례요한이 헤롯 왕의 생일에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이다.

아마 우리 같으면 주저앉아서 며칠을 충격 속에 헤매었을 것이다. 적어도 하루 이틀은 의욕을 잃고 낙심 가운데 빠져있었을 것이다. 존경하는 세례요한의 죽음 자체가 충격이거니와, 어떻게 죽었는가 생각해보면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바른말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가 연회석상에서 술에 취해 약속한 대로 그 자리에서 명령하여 목을 잘라서 소반에 담아 가져오다니! 이것은 당시 복음운동과 예언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경고요 사건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서,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배를 타고 떠나셔서 따로 빈들에 가셨고, 무리들이 따라와서 본격적인 예루살렘 십자가 사역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신다.

요즘 교계와 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까, 코로나19가 위기로 다가올 때 주저앉아 코로나 핑계를 대면서 아무 일도 안하는 교회와 사람들은 점점 후퇴하고 있고, 이런 때에 더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히 준비하여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람들은 알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교회도 이때야말로 더욱 기도할 때요, 이웃 형제들을 돌아볼 때이며, 가정을 일으키고 사업을 새롭게 하며, 믿음을 새로이 하여 출발할 때이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 때문에 나단 선지자의 질타를 받고 그때 생겼던 아이가 하나님이 치셔서 심하게 앓는다.(삼하12) 다윗은 금식하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기가 이레 만에 죽는다. 이때 신하들은 다윗왕에게 그 소식을 알리기를 꺼려했다. 아기가 죽은 것을 알면, 다윗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했을 때 다윗은 깨끗이 씻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하고 국정을 돌보았다. 여러분은 위기의 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전진하라, 행동하라! 위기를 만났을 때 예수님처럼 전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2. 위기가 닥쳤을 때, 예수님은 또 어떻게 하셨는가?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셨다. 공감하시는 그리스도! 이 점이 정말 훌륭하고 따라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다. 예수님이 빈들로 가시니까 무리가 여러고을을 거쳐 걸어서 따라갔다(13). 이때 예수님은 지금 내가 어떤 마음 상태인데, 왜 따라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14)’ 하셨다. 불쌍히 여겼다. 여기서 이게 굉장히 중요한 단어인데, 헬라어로는 스플랑크논이라고 쓴다. 나의 내장, 이란 단어에서 왔다. ‘공감한다. 같은 마음을 갖는다는 뜻이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업과 직장이 어려움을 당했고 당할 것이다. 직장에서 실직한 사람도 보았다. 너무 장사가 안돼서 폐업을 고려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여행업이나 유흥사업들은 아무래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럴 때 소통과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뭐 그까짓 것 가지고 그래?’ 남의 사업이라고 이렇게 쉽게 말하기보다는 정말 힘들지, 잘 하고 있어, 조금만 더 힘을 내.’ 진심이 담긴 이런 격려가 얼마나 힘을 주는 것인가!

예수님은 자기 속도 속이 아니었지만, 먼 길을 따라와준 사람들을 보고 그들과 공감하고 같은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먼저 그 중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위기를 만나면 사람들은 한사코 혼자 있으려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도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이렇게 하셨으나, 무리가 듣고 따라가자 그들을 불쌍히 보시고 병자를 고쳐주셨다. 어려울 때, 위기가 닥쳤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있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혼자 있게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부부가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면 어려움은 반감되어 금방 극복할 수 있다. 어려울 때 부부의 대화와 합심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어려울 때 많은 얘기를 나누고 마음을 통해야 한다. 사업적으로 어려울 중요한 사업파트너와 공감하고 소통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사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성실하게 사업을 운영하여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고 싶어하는데, 밑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려울수록 대충 하고 쉬려고만 하면 그 사업이 제대로 되겠는가? 공감과 소통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무리들과의 공감이 질병을 고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가져온 원동력이 되었다. 불쌍히 여기시는 것, 공감하는 것에서 병고치는 기적이 따라왔다. 주님은 능력의 주시다! 그러므로 주님과 공감하고 상통할 때 질병이 떠나가고 온전케 되는 역사가 이뤄진다!

우리교회는 장로님들과 담임목사가 비교적 대화의 줄이 항상 유지되고 있다. 이것이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위기 속에서도 헤쳐나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된다. 공감과 소통을 하되, 특히 위기를 만나거든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형편을 살펴주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라! 가정에서도 위기의 때에 아내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걸 보고 아내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고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고, 직장에서 어려울 때 잘 해나가는 걸 보고 그 사람과 마음이 통해 결혼을 약속하는 사람도 보았다. 공감하고 소통하라!

 

3. 위기가 닥쳤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 19절을 보니,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누시고 전하셨다! 떡과 고기가 예수님에게서 제자들에게로, 제자들에게서 무리들에게로 전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복하여 위대한 음식을 만드시는 기적의 주인공이시다. 예수님이라면 가능하다. 예수님은 광야의 배고픔을 면하게 하실 영원한 양식의 공급자이시고, 참된 해결자가 되신다.

주님은 제자들이 이곳이 빈들이고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서 먹을 것을 찾아 먹게 하자고 한다. 유대인의 관습에는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당연히 먹을 것을 대접해야 한다. 그런데 주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6)고 하신다. 제자들이 당황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17) ‘이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런 항변이 들어있는 대답이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시는 일을 감당하시도록 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바로 예수님의 기적과 구원을 무리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이다. 왜 제자들을 세우셨는가?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을 먼저 누리고 그 받은 은혜와 축복을 무리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이다. 예수님은 두루 다니시면서 가르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셨다(9:36), 그리고 많은 무리를 먹이셨다. 이것을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게 하신 것이다. 나누고 전하라! 그러면 작은 도시락 하나로 5천 명이 먹을 것이다!

밥은 먹고 다니니?’ 요즘 TV 프로에 나오는 이름이다. 그런데 교계에서 어플로 이런 제목을 활용하고 있다 한다. 마음의 배가 고프고 외로운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게 찾아가는 교회의 손길이다. 영의 양식은 공급받고 있느냐? 오늘 예수께서 주시는 광야의 식탁을 누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러분! 예수님이 주시는 양식과 은혜를 우리가 먼저 받고 모두에게 나누어주자! 말씀은 나눌 때 더욱 풍성해지고 심오해진다. 양식도 나누고 전할 때, 위대한 기적이 나타나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것이다! 교회는 제자들이 나누고 전하는 곳이다!! 여러분이 그런 제자가 되라!

 

주님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코로나 위기는 더 이상 우리 삶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 죽일 음모가 꾸며지고 있으며, 세례요한은 비참하게 죽은 위기의 때, 예수님은 움추려 있거나 숨어있지 않으시고 전진하였고 행동하셨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따라 이웃 마을로 이동해갔다. 위기의 때, 예수님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을 고치심으로, 공감하고 소통하셨다. 공감과 소통은 위기를 헤쳐가는 비결이 된다. 위기의 때,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을 나누시고 전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뜻대로 제자들은 떡과 물고기를 나누었을 때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최용신은 감리교신학대학의 전신인 협성여자신학교의 학생이었다. 원산에서 자란 부잣집 딸이었고, 원산 루씨여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이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샘골교회에 가서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몽운동을 벌였다. 특별히 문맹퇴치, 여성 교양을 위해 열심히 계몽운동을 했다. 지금의 안산 반월공단과 시화호가 있는 동네다. 지금 지하철 상록수역 옆에 샘골교회가 있었다. 최용신은 그곳에 가서 오직 예수 사랑, 예수 복음을 전하다 과로해서 장중첩증이라는 병으로 26세의 젊은 나이로 죽는다.

그의 스승이 김교신이고, 김교신 제자 중 한 명이 류달영 선생이다. 류달영 선생은 서울대 농대 교수였는데, <최용신소전>이라는 책을 썼다. 작가 심훈은 <상록수>라는 책을 썼고 이것이 영화로도 나왔다. 내가 감신 다닐 때 감신기숙사가 충정로에 있어서 학교까지 한 걸어서 한 15분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그 기숙사가 바로 예전 협성여자신학교 자리이다. 그 아름답고 유서 깊은 신학교 건물을 우리가 졸업한 후에 팔고 냉천동 교사를 더 짓는 데 썼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아깝다.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 귀한 전통의 자리에서 신학과 목회의 꿈을 꾸었던 것이다.

최용신 선생이 죽기 전, 공부도 할 겸 신병 치료도 할 겸 일본 고베신학교로 유학을 간다. 그때 남긴 글이 그가 남긴 몇 개의 글 가운데 하나이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예수 사랑 없는 가정은 불행의 산실이다. 예수 사랑 없는 민족은 멸망한다. 예수 사랑 없는 사회는 부패한다. 예수 사랑 없는 국제평화는 허구이다.” 그는 호강하고 좋은 혼처에 결혼해서 귀부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부잣집 딸의 위치를 내려놓고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비치는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위기를 만난 민족과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도 일하자!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도 공감하고 소통하여 하나 되어 나아가자!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도 생명의 양식을 나누고 전하자! 십자가의 복음을 회복하고 예수 사랑의 정신으로 전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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