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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쫓아내는 교회(행8:4-8) [2020년 11월 22일, 성령강림후 마지막/왕국주일]
2020-11-21 19:45:32
박신진 목사
조회수   311
설교일 2020-11-22
설교말씀 행8:4-8
설교제목 귀신을 쫓아내는 교회

귀신을 쫓아내는 교회

8:4-8

20201122[성령강림후 마지막/ 왕국주일]

 

사마리아교회는 귀신을 쫓아내는 교회였다. 여기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예루살렘교회에서와는 달리 활발하고 강력한 선교가 이뤄지는데 기적이 일어나고 더러운 귀신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는 일이 일어났다.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성령을 받아 방언역사가 일어나고, 병 낫는 기적과 삼천 명이 예수믿고 돌아오는 일은 있었으나, 귀신이 떠나가는 일은 기록되지 않았는데, 사마리아교회에서는 복음의 말씀을 전하니까 귀신이 떠나갔다. 7절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라고 되어 있는 걸 보니, 귀신의 피해가 컸던 것 같다.

교회는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맞다! 교회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 그리스도는 현세와 내세를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초월적 영역에까지 그리스도의 능력이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그리스도의 일을 하니까, 당연히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귀신의 영향을 안 받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다. 평소에는 그런 것을 인정도 하지 않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정말 두려울 때면 귀신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귀신의 영향은 폭넓게 퍼져있어서 요즘 그런 것들을 해서 현상유지나 할 수 있을까 싶은 퇴마사, 축귀술, 최면치료, 마음치료 같은 것이 엄청나게 성업 중이다. 점쟁이 찾아다니는 사람에 박수무당에게 점치거나 부적 부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난 주간에 들은 얘기인데, 어떤 교회에 권사님이 예전에 그런 일에 관계가 있는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부적을 써주었는데, 그 내용이 아주 천한 욕설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참 황당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불교의 혜민 같은 이들도 그렇게 책이 많이 팔리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호응하게 된 것도 귀신은 아니지만 마음치료같은 분야를 건드리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현대인들에게 이 문제는 깊이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다. 상처받은 마음, 병든 마음, 눌린 마음들을 고치려고 야단이다.

 

이 문제를 말할 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마리아교회가 귀신을 쫓아내는 선교로 시작했다고 해서 현대교회가 귀신 문제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목회자나 교인들은 신앙에 있어서 귀신문제를 너무 지나치게 적용하고 있다. 지난 주간의 다니엘기도회 간증에서도 그런 면을 보인 분들이 있었다. 귀신을 모신다는 박수 무당을 예수 믿도록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모든 교회의 사역을 다 귀신사역으로 풀어가는 것은 조금 지나친 것이다.

욱하는 나쁜 성질이나, 잘 삐지고 상처 잘 받는 것을 영의 세력이나 귀신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음란의 영, 노름의 영, 술 중독의 영, 악습의 영이 있다고도 한다. 모든 잘못된 것은 귀신이 역사하는 것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귀신을 제어하면 다 해결된다는 논리이다. 그리스도가 귀신을 이긴다는 것은 맞는 얘기이나, 모든 문제를 다 거기에 연관시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영적인 문제가 특별히 시급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할 때 일거에 해결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위의 모든 문제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생활과 인간관계를 다 바꾸어주어야 해결되는 문제도 있고, 아주 어렵고 풀리지 않는 난제들은 인생 내내 가지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성경에서도 천사와 마귀, 사탄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런데 오경이나 예언서에서 사탄이나 천사에 대한 언급은 흔치 않고 비중이 아주 작다. 사탄과 천사론이 크게 대두된 것은 주전 2세기였다고 알려져있다. 그때는 포로시기가 지나고 이스라엘이 재건될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로마의 강력한 세력이 등장할 때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하라는 마가복음의 말씀은(13:14) 종말의 때를 언급하는데, 그 절망의 때에 사탄이 역사함을 말하고 있다.

절망의 때, 시련의 때였다. 악한 자들과 이교도들의 권세는 점점 강해지고 성도들은 박해 당하거나 순교를 당하며, 믿음을 지키고 살기 어려웠다. 더 가혹한 세력의 등장과 무서운 핍박이 닥쳐오는 시대였다. 그러자 성도들은 모든 것을 영적으로 풀었다. 말하자면 현실 세계가 엄혹하고 힘드니까 모든 것을 영적인 세계로 도피시킨 것이다. 사탄은 히브리어다. 사탄의 역사와 천사론이 강하게 등장한 게 바로 이때다. 절망의 때, 힘든 상황에는 신앙을 영적인 문제로만 다 해석하고, 문제를 종말과 초월적 세력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현실은 수수께끼이다, 우리가 할 수 없는 문제다, 알고 보면 영적인 세계에서 다 정해진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의지하고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마리아교회처럼 귀신을 쫓는 역사를 오늘의 교회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런 영적 문제로 보이는 사탄주의, 귀신론의 문제를 우리는 믿음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해야 할까?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드리겠다. 성서는 할 수 없는 강력한 세력들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것들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역사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도 다 하나님께 맡긴다면서 하지 않는 것은 역사와 인생에 대한 무책임이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구원파 이단의 주장이다.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마땅히 인생과 역사에 대한 책임을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지금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병이 심각하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마음의 감기라고 할 정도로 흔하면서도 힘든 병이고, 공황장애를 비롯하여 귀신 역사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마음의 병이 얼마나 종류도 많고 나타나는 현상도 다양한지 놀랄 지경이다. 남에게 얘기하지 못하지만 식구들은 죽을 지경으로 힘들어하는 여러 가지 마음 병들이 있다. 어떤 것은 사탄의 역사가 분명해 보이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뇌의 질환이나 기질, 혹은 감정이나 대인관계의 문제로 나타난다. 이 심각한 마음의 병을 어떻게 해결하며, 사마리아성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치유가 이뤄지게 할 수 있을까?

어떤 목회자들은 믿음의 힘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마음의 병이 워낙 다양하고 깊고 해결하기 쉽지 않으니까,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귀신 역사로 모든 문제를 다 해석해버린다. 귀신론을 크게 전파하였던 성락교회 K목사 같은 이들은 심지어 발이 삐거나 몸이 쑤시는 것도 귀신의 역사로 단정하였다. 그가 전파한 베뢰아성경공부는 사탄론으로 모든 성경을 풀어 가르치고, 귀신쫓는 사역을 행하였다. 그들의 논리는 분명하다. 모든 것이 사탄의 역사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진 권세와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사탄을 이기면 모든 문제는 풀려버린다는 것이다.

사탄론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마음과 영혼을 완전히 집중한 뒤에 강력하고 권위있게 그리스도의 능력을 선포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경우에 효과가 있다. 우리는 삶의 모든 문제에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고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사마리아성의 귀신들린 이들을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귀신을 쫓아내어 낫게 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는 훨씬 깊은 성찰이 필요한 말씀이다. 한 마디로 분별력 있게 적용해야 할 말씀인 것이다. 우리가 주전 2세기 종말론과 사탄론의 부흥시대에 살고 있지 않고, 합리적인 생각과 정보화시대의 다양성을 가지고 사는 21세기의 현대인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귀신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음의 병과 사탄의 역사에 대한 치유와 해결은 결국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로 할 수 있지만, 그 치유를 시행하는 과정은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때로 강력한 축귀술을 시행하여 통성기도하며 소리 질러 마귀야, 물러가라! 귀신들아, 떠나가라!” 물리쳐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많은 경우에 오늘처럼 설교함으로 말씀을 전하고, 생활의 변화와 인간관계의 변화, 사랑의 돌봄과 인내의 세월을 통해 치유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해야 할 때도 있다.

 

먼저, 복음을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귀신들은 물러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되, 시대에 맞게 정확하게 해석하여 전해야 한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4-5) 복음을 계속 바르게 전하면 모든 마음의 병도 다 물러간다.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평안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듭 전하며 계속 전할 때 귀신은 떠나가고, 마음을 누르고 사로잡는 허깨비는 사라진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띠고 태어난 존귀한 존재이지만, 죄 때문에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죄인이 되었다. 인간은 낙원을 잃어버리고 죽음과 질병과 고난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비관적인 운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게 하심으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에서 사함받아 구원을 누리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새로운 존재가 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부활생명을 가지게 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부활은 확증되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 복음을 자꾸만 전하면, 점점 마음의 병이 떠나간다. 귀신이 사라진다.

원주제일교회의 장로요 의사였던 문창모 장로는 젊은 시절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였다. 하루는 경찰서 유치장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정말 무섭게 생긴 철장 안의 한 남자가 계속 문장로를 째려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수사경찰에게 조용히 물어보니 그 사람이 아주 유명한 깡패인데 아무도 못 건드린다는 것이었다. 말씀을 전하는데, 그 사람이 귀를 기울여 잘 들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문장로는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잘 들었소?” 하니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과 구약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 마음에 양약이 되어 큰 유익이 있으니 더 들어보겠소?” 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문장로는 철장 쪽으로 다가오라고 하여, 그 깡패의 귀를 꽉 붙잡고 복음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남자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자기는 그동안 잘못 살았노라고 하며 바르게 살겠다고 하더란다. 복음은 마음을 고치고, 심령을 변화시키며, 우리 안에 있는 귀신을 물리친다!

 

, 고난을 이길 때 마귀가 물러간다. 어려운 상황에 눌리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낼 때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를 계기로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더욱 심해졌다. 믿는 이의 소란이나 사건들만 문제삼았던 소극적인 억제에서 이제는 적극적이고 잔혹한 박해가 시작되어, 잡혀가고 매 맞고 죽임을 당하였다. 그 박해로 예루살렘 교회는 뿔뿔이 흩어졌다. 큰 박해는 예루살렘교회를 큰 교회로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지방으로 흩어지게 했다. 새 이스라엘이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스스로 소멸되도록 흩어놓았다. 히브리파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에 남아있었으나, 헬라파 성도들은 남아있지 않고 다 자기 연고지로 흩어져갔다.

고난은 마음의 병을 키우고 귀신을 성하게 만든다. 사마리아 성은 아주 무시당하던 성읍이었다. 유대인들은 포로시기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민족을 배반하고 이민족과 섞여버려서 혼혈 잡종이 되었다고 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교도이자 분열주의자로 그들을 정죄했다. 성전에도 들이지 않고 예배에 절대 참여시키지 않았고 혼인도 금하였다. 오랫동안 동족으로부터 영적인 냉대를 당했던 곳이 사마리아다.

빌립이 그 도시에 복음을 전했다. 빌립과 스데반 같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는 사도는 아니고 선출된 집사들로 봉사와 복음 전파를 위해 쓰임받았다. 그들도 능력이 나타나 예수 이름으로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켰다.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직분을 받은 신수직(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이나, 집사는 사람들이 선정하여 맡긴 선출직이다. 그들은 신분상의 제약도 있었고, 지역도 영적으로 냉대받는 지역으로 많은 약점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 약점과 고난을 이기고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는 사역을 행하였다. 그리스도를 전파했고, 그에 따라 표적을 행하였다. 표적 행하는 것은 부수적인 역사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되는 사역이다. 사마리아 교회는 구원과 치유가 함께 일어남으로, 그 도시에 큰 기쁨이 있었다(8).

상황과 조건의 제약을 받으면 귀신을 쫓아내고 승리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우리 인생의 상수요 기준이 되신다. 그러므로 고난이든 역경이든, 앞이든 뒤이든 따지지 말고, 복음 안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를 선포할 뿐이다. 그때 우리 삶에서 귀신이 쫓겨나가며, 구원이 있고, 평안이 있고, 승리가 있다!

 

셋째로, 귀신을 내어쫓으려면 은혜의 기름을 부어야 한다. 매일 성경을 읽거나 쓰고, 암송하며 기도하면 귀신이 덤벼들지 못하고, 귀신이 들어왔더라도 떠나가게 된다. 교회의 기도모임이나 신앙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면 귀신을 쫓을 수 있다. 중보기도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하면 마귀가 제어된다. 은혜받는 모임이나 은혜로운 일에 참여하며 주의 도우심을 구하라!

마귀는 성령의 불을 끄고 구원받은 기쁨을 빼앗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 한 부분이다. ‘설명자가 기독도의 손을 끌고 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봤습니다. 이 방 한쪽 벽에서는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는데, 옆에 서있는 한 사람이 많은 물을 연방 끼얹어 불을 꺼버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은 꺼지기는커녕 더욱 세차게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기독도가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설명자가 대답했습니다. “이 불길은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는 은총입니다. 이 불을 꺼버리려고 물을 끼얹는 자는 마귀인데, 당신도 보다시피 마귀가 아무리 애를 써도 불길은 더욱더 세차고 뜨겁게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를 보여드리지요.” 하고 말한 설명자는 기독도를 데리고 벽 뒤로 돌아갔습니다. 벽 뒤에는 기름통을 든 사람 하나가 서서 몰래 그 기름을 불길로 향해 계속 끼얹고 있었습니다. 이때 기독도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설명자가 대답했습니다. “여기 이 분은 그리스도십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이미 넣어준 은총을 보전하기 위해서 그는 은총의 기름을 계속 불에 끼얹는 것이지요. 마귀가 아무리 그 은총을 없애버리려고 애쓰지만 예수께서 이렇게 하여 인간들의 영혼은 언제까지나 자비심을 품고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무너진 인간관계의 틈으로 마귀가 들어와 역사하므로, 인간관계를 빨리 회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잘 지켜야 한다. 가족들의 상처입은 인간관계를 예수의 보혈로 치유받으라! 부부 사이, 부모자식 사이, 형제들 사이에 맺힌 아픈 상처와 무너진 인간관계를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치유받고, 담대히 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할 때 귀신은 더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떠나갈 것이다.

 

고양시에서 목회할 때 어느 주일에 권사님이 이웃집 가족들을 데리고 나왔다. 신 받은 소녀를 가족들이 데리고 나온 것이다. 자기들은 어린 딸이 신딸이 되게 하고 싶지 않은데, 벌써 신을 받아 이상한 말을 하고 사람들의 과거를 족집게로 맞추며, 귀신의 역사를 하지 않으면, 이유없는 병을 앓는 것이다.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작은 아이인데, 눈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 목사님이 저걸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철렁 하였다.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로 하였다. 그러자 의외로 마음이 침착해졌다. 저녁예배 드리던 때, 주일 오후에 교우들 20여 명을 먼저 보내고 교회일을 빨리 하고 따라갔다. 찬송을 부르고 난리가 났다. 어떻게 알아서 보혈의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준비기도 했다. 나는 준비한 말씀을 읽고 전한 후에, 그 소녀에게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다. 귀신 나가는 증거가 나타나고, “나는 예수에게 졌다. 이제 나가겠다!” 뭐 그럴 줄 알았는데, 무릎꿇고 간절히 기도를 받더니, “눈에 침침한 비늘이 벗어지고 머리 아픈 것이 낳았습니다.” 직감적으로 하나님이 귀신을 떠나게 하셨음을 알았다. 완전히 신내림을 벗어나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했다!

사마리아에서 뿐아니라 하나님은 믿음의 공동체마다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마음의 병과 육신의 질병을 고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붙들고 전하라! 고난의 환경에 지배당하지 말고 믿음으로 환경을 극복할 때 귀신은 떠나간다. 기도하고 말씀 보며 은혜의 기름을 부으시는 주님을 의지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모든 귀신은 떠나가고, 온갖 마음의 병도 다 물러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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