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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 몸을 입으신 하나님 (요1:14-18) [2020년 12월 20일, 대림절넷째주일]
2020-12-19 11:31:46
박신진 목사
조회수   46
설교일 2020-12-20
설교말씀 요한1:14-18
설교제목 아기 예수, 몸을 입으신 하나님

아기 예수, 몸을 입으신 하나님

1:14-18

20201220[대림절 넷째주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는 성탄절

영화 타이타닉은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운 감동을 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장면이 주인공 로즈와 잭의 뱃머리 장면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 로즈는 망해가는 가문을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억지로 결혼을 약속하고 자유롭지 않은 자신의 삶을 비관하는데, 타이타닉호에서 만난 잭에게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 잭이 뒤에서 로즈를 잡아주는 동안 로즈는 높은 뱃머리에서 팔을 새처럼 활짝 벌리고 이렇게 외친다! “I’m flying, Jack!” “, 나 지금 날고 있어~” 그 장면은 누구에게나 정말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그런데 그 장면 바로 앞에 로즈가 처음에는 두려워서 뱃머리에 서지 못한다. 달려나가는 엄청나게 큰 배의 맨 앞, 바다 위에 서기가 얼마나 무서울까! 그때 잭이 묻는다, “나를 믿어?” 자기를 믿으라고, 염려 말고 믿으라는 것이다. 로즈가 잭을 믿고 그를 의지하여 뱃머리 위 바다 한가운데 설 때, 두려움이 사라지고 그 유명한 대사를 외친 것이다! ‘, 나 지금 날고 있어!’ 믿음은 신뢰하는 용기다.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고, 처음이요 나중이시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때 두려움과 슬픔과 방황이 사라지고 평안과 자유를 얻는다.

이번 주간에 성탄절이 있다. 오늘은 성탄절 전 주일이다. 아기 예수가 우리에게 탄생하셨다! 중요한 것은 아기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분과 믿음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로즈가 뱃머리에서 날아오르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잭을 신뢰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님을 바라보라, 주님을 신뢰하라,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 그러면 성탄의 기쁨으로 날아오를 것이다. 독수리가 창공을 뚫고 날아오르듯이, 두려움 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가 아닐까?

 

화육의 의미

원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수준, 하나님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재하실 수 없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우리는 죽는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실 수 없다. 우리와 다른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루살이가 아무리 멋지게 날아도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사귈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영원하시며, 전능하시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

불교 승려와 선교사가 산길을 걷다가 그만 선교사가 실수로 개미집을 밟고 말았다. 생명이 중요하니까 개미집을 수리해주려 했으나 회복이 되지 않았다. 선교사가 승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개미에게 사과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승려가 말했다. “죽어서 개미가 되면 됩니다.” 윤회를 믿는 승려 입장에선 맞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런데 성탄절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다. 몸을 입으신 하나님, 바로 화육의 교리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시작한다. 말씀, 즉 로고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쓰는 표현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 존재로서 로고스는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존재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로고스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현된다. 창조 전에 로고스가 있었다. ‘길 도자로도 쓴다. 태초에 가 있었다.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와 같은 수준이다. 도가 육신이 되었다. 태초부터 있었던 조물주요 창조주, 신적 본성을 지닌 로고스가 육체가 되었다. 여기서 육신이란 말은 고깃덩어리 육체를 가리킨다. ‘말씀이 사람이 되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 것은 높은 로고스가 비천한 육체가 된 것을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레이튼 포드 목사님은 영향력 있는 설교자이다. 서부 아프리카 다카 공항에서 우연히 프랑스 출신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선교사는 지난 10년간 모슬렘 지역에서 일했다. 레이튼 포드 목사님 일행 중 한 명이 10년 선교 기간에 얼마나 많은 회심자가 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10년 동안 2명이 회심했습니다.” 하였다. 일행은 한결같이 선교사가 10년이나 일했는데, 2명밖에 전도하지 못하다니, “도대체 왜 계속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오히려 선교사는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이곳에 왜 있느냐고요? 바로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이 선교사의 대답이 레이튼 포드 목사님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육체가 되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한 선교사가 10년 동안 두 명을 전도했을 뿐이지만 선교지의 온갖 고난을 감당하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육체로 오셨다. 훌륭하고 거룩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육체인 인간, 욕심 많고 이기적인 탐욕과 죄악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과 같이 육체가 되셨다. 이 화육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이다! 아기 예수는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다. 아기 예수의 육체가 되심으로 하나님은 역사 속에 오셨고, 인간 문화로 나타나셨다. 높은 보좌에 우리를 올라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낮아지셔서 우리처럼 육체가 되시고 우리와 동행하셨다! 육신을 입으신 교리’, 화육교리는 기독교가 역사와 세상을 구원하는 종교가 되는 데 중요한 교리이다. 하나님이 육체가 되셨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이유이다.

 

그 영광, 충만한 은혜와 진리

14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육체가 되어 오셨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다. 그 영광을 보다니! 이것이 사도 요한의 훌륭한 점이다. 사도 요한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예수님 모든 모습을 다 보았다. 남루한 옷이나 기대에 어긋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배고프시고 목마르시고 때로 화도 내시고 그러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예수님은 말년에 사랑하는 제자들이 다 배신하고 떠나는 실패한 지도자였다. 예수님의 인기도 한때였다. 모든 유대인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차라리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몸을 입으신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예수 믿는다는 게 뭘까? 육신을 입으신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처럼 오늘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지금 독생자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고, 역사의 한 대목, 지금 내 문화 내 생활로 찾아오셨다는 것을 믿고, 그 사람, 그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님이 굉장하고 엄청 멋있게 생겼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화가들은 예수님이 못생겼을 거라고 한다. 어떤 그림에서 예수님을 세상 고뇌를 지고 힘들어하는 약한 인간으로 그렸다. “이 사람을 보라!” 요한은 매일 함께 지내는 그 사람,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기 예수, 은혜와 진리의 충만이다! “충만함!” 신성의 완전계시를 말한다. 영지주의자 이원론자들은 몸을 입으신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육신이 되신 예수는 신성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그들을 단호히 부인하면서, 몸을 입으시고 생활 속으로 들어오신 그 평범한 예수가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이라고 선포한다! 은혜의 충만이요, 진리의 충만이시다! 예수는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완전히 드러난 최고의 하나님 그분이라는 것이다.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신 나사렛 예수가 은혜의 무한한 공급자가 되신다.

16절에서 요한은 다시 강조한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영지주의자들이 산상변화나 예수님의 부활에서 잠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것과는 달리, 요한은 탄생부터 승천까지 예수의 모든 순간, 모든 사역, 모든 존재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보았다고 증언한다. 달로 치면 보름달이고, 그릇에 점점 넘치는 가득함을 말한다. 예수님에게 완전함이 있다! 지혜와 권능과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들어 있다는 말씀이다.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계속, 매일, 상황마다 새롭게 부어지는 은혜를 말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기도로써 대화하며,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을 묵상하면 은혜 위의 은혜가 있다! 무한한 은혜가 몸을 입으신 예수에게서 우리에게 흘러들어, 넘치는 은혜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다 잃어도 예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예수만 있으면 모든 것을 잃어도 괜찮다. 왜냐하면 예수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그에게서 모든 것이 계속 무한히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예수와 함께하면 죄를 이기게 되며, 예수와 함께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예수와 함께 하면 형제를 사랑하고, 삶이 변화되며, 사람을 얻고 물질을 얻고 건강을 얻을 것이다. 예수와 함께 하는데도 그 모든 것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물론 어렵지만 예수님이 주신 평안함과 행복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성탄절은 예수 되찾는 축제이다!

 

율법과 은혜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졌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 ‘주어졌다와 왔다의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율법은 모세가 만들어서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며,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번역에도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것(given)이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came)이라고 한다.

마틴 루터 말대로 율법은 하나님의 왼손이요, 은혜는 하나님의 오른손이다.’ 교회에서도 율법만 너무 강조하면 지나치게 엄격한 교회생활이 되고, 은혜 쪽으로만 가면 하나님 앞에서 버릇없는 교회가 되고 만다. 율법과 은혜를 잘 조화시켜야만 온전한 복음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은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은혜가 율법을 이긴다는 뜻이다. 모세의 율법을 따르다 보면 죄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에 눌려 율법의 종이 된다. 그러나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자녀의 자유와 평안이 있다.

술과 노름에 중독되어 패가망신하게 된 사람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자르고, 담뱃대를 꺾고, 혈서를 쓰고, 갖가지 노력을 하지만 죄짓고 회개하는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노력을 다 포기하고 두 손 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순종하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 무엇이든 한번에 성자가 되고, 한번에 완성하려 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작은 것부터 말씀대로 행하면, 자기도 모르게 변화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고 부유해도 하나님 나라 질서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이상 율법의 종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다. 율법의 결말은 사망이지만, 은혜의 결말은 생명이다. 내 인생에 복음시대를 여시려고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으니, 이 성탄에 아기 예수와 함께 은혜의 시대를 열자!

 

독생자 하나님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보았다 하지만 못 본 것이다. 짐작하여 느낀 것이고 체험한 것이고 고백한 것일 뿐이다. 육신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33:20,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뿐 보지 못한다고 구약은 말한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사람의 형상으로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고 대화하시고 함께 거하신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화육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본다!

예수님은 제자 빌립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보여달라고 하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 하셨다. 성경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이 나오고, 예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가르침이 나온다. 우리가 그것을 읽고 깨닫는 동안 영적으로 예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니 하나님을 이미 만난 것이다. 우리 영이 이미 하나님을 만났는데, 무엇을 또 보겠다는 것인가? 사람들은 보았다 하고도 보지 못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만나고 그 가르침을 만난 자들은 이미 하나님을 본 것이다.

아기 예수에게서 우리는 독생하신 하나님을 본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오늘의 사람들에게서 몸을 입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 대열에 여러분이 서기를! 그 하나님 나라 운동에 여러분이 참여하기를 축복한다.

 

2015723일 새벽 5시반, 미국 뉴저지의 한 식당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두 남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여자가 이들에게 쪽지를 건넸다. “두 분의 아침값은 제가 계산할게요.” 이 여성은 식당에서 7년째 일하고 있던 종업원인 24살의 리즈였다. 밤새 식당 일을 한 후 가게 청소를 하고 퇴근하려던 리즈는 우연히 두 남자의 대화를 들었다. 팀과 폴이라는 소방관이었다. 폴은 지난밤 창고에 난 불을 끄기 위해 12시간 동안 진화작업을 했다. 동료였던 팀은 밤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폴을 데리고 식당을 찾았던 것이다.

폴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감동한 리즈는 영수증 위에 다음과 같이 썼다. “두 분의 아침값은 제가 대신 계산할게요. 모두가 도망쳐 나오는 곳으로 뛰어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는 두 분께 정말 감사드려요. 당신들은 용감하고 든든한 분들입니다. 오늘은 푹 쉬세요!” 소방관들은 이 메모를 핸드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며, “이 식당에 간다면 그녀에게 많은 팁을 부탁합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그런데 얼마 뒤 소방관 팀은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리즈가 사실은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리즈의 아버지는 사지마비 환자였고, 그런 아버지를 위해 리즈는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아버지를 돌봤던 것이다. 또한 리즈가 그런 아버지를 태울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팀은 다시 한번 페이스북을 통해 리즈의 사연을 전했다.

이 소식은 페이스북을 통해 급속히 퍼졌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소방관들에게 친절을 베푼 리즈의 이야기에 감동한 사람들은 기부에 나섰다. 단 하루 만에, 원래 목표금액이었던 17,000달러의 3배가 넘는 53,000달러, 우리 돈으로 대략 55백만 원의 돈이 모금되었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일하는 형편에서도 친절을 기꺼이 베풀었던 리즈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다. 바로 우리 이웃의 마음과 생활 속에 사람이 되어 계신다.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아기 예수는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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