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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바울! (빌3:13-16) [2020년 12월 27일, 성탄절후 첫째/ 송년주일]
2020-12-27 12:29:57
박신진 목사
조회수   41
설교일 2020-12-27
설교말씀 빌3:13-16
설교제목 달려라, 바울!

달려라, 바울!

3:13-16

20201227[송년주일]

 

올해 나온 책 중에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책이 있는데, 코로나 시대를 진단하고 극복할 방향을 찾는 석학들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코로나19 시대에 사람은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숙주가 되었다. 그래서 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혼돈을 헤쳐 나가려면 세 가지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한다. 생태백신, 행동백신, 그리고 화학백신이 그것이다. 이제라도 생태계를 자연의 모습으로 지켜가자는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데에서부터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를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둘째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행동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편 가르기에 거짓과 정죄를 일삼는 행동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내년에는 백신주사를 맞아 바이러스의 위협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백신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생태를 지키고 사회를 살리는 인간의 행동백신이 없이는 인간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송년주일이다. 어느덧 2020년 한해가 다 지나가고 이제 달력 넘길 일만 남았다. 보통 망년회 모이느라 바쁜 시기인데,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모든 모임이 원천 봉쇄되고 말았다. 요즘은 망년회가 일본어식 표현이다 해서 송년회로 순화시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주일은 왠지 송년회라는 순화된 표현보다는 그냥 우리 마음이 깃들어있는 망년회로 불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코로나가 덥쳤을 때는 이게 뭐야?’ 하는 식으로 만만하게 보았다. 독감이 심한 게 왔나보다 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끈질기고 강했다. 마스크 대란을 거쳐 해를 넘기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제는 백신확보 전쟁까지 생전 처음 들어보던 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엇보다 실제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경제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니 올해는 싹 잊어버리고 싶다. 술자리 망년회 말고, 기독교 망년회, 말씀 망년회 하자!

망각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은혜요 축복이다. 비극과 슬픔과 고통을 잊어버리라! 한해를 보내며 사람들이 망년회를 하는 것은 잊어버리자는 간절한 염원의 표현이다. ‘잊을 망해 년을 써서 지난 한 해, 괴롭고 힘든 일을 잊어버리자는 뜻이다. 제대로 완전히 잊을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버려야 할 것은 기억하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 아니겠는가! 이제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잊을 것을 잊어버리는 망년의 은혜를 누려야겠다.

 

바울의 권고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기 위한 전제가 바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으면 앞으로 달려가기 어렵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에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씀이다.

바울은 많은 일들을 기억하며 감옥에 갇혀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의 앞에 영광스러웠던 기억과 고난의 경험, 섭섭하고 속상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과거에 얽매어 있기에 인생은 너무 짧고 할 일은 너무 많다. 노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지금 더욱 달려가겠다고 고백함으로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살 것을 권고한다. 왜 잊어야 하는가? 달려가려고!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15-16) 과거에 매여 있지 말고 미래를 향하여 가기 위해 현재에 충실하라는 사도의 권면은 비단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말씀만은 아닐 것이다.

 

고통과 서운함을 잊자

사람들이 너무 똑똑한 것이 문제다. 현대인들이 정신병이 많다. 너무 잘나서 그렇다. 좀 잊어버리라. 특히 고통과 서운함은 잊고 한해를 보내기를 바란다! 고통스러운 일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지침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고통을 기억할수록 대개 힘이 들고 낙심이 될 때가 많다. 고통을 잊어버리라. 잊지 못한다면 고통은 극복되지 않은 것이다. 실패의 경험, 가난하고 배고팠던 일들, 질병의 아픔, 소외와 고독의 시간들, 배신의 아픔들을 잊어버리라. 자존심 상하고 말로 상처받은 것은 잘 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잊어버리자! 망각은 구원으로 가는 길목이다.

섭섭했던 일들을 잊어버리라. 어떤 사람이 내게 한 말이 상처가 되었거나 기대한 만큼 해주지 않아서 섭섭한 것을 마음에 깊이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섭섭한 것은 우리 마음과 뇌리에 강한 파장과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마음에 거듭 새기지 말고 다른 일을 하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그것을 잊도록 하라! 섭섭증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나만 손해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다. 롯은 식구처럼 돌보아 주었던 조카였다. 그런데 가나안 들이 펼쳐져 있을 때 롯은 아저씨 입장은 생각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먼저 물이 넉넉하고 양떼를 먹이기 좋은 들판 소돔과 고모라를 택해 버렸다. 이런 괴씸한 놈이 어디 있나? 아마 몇 년은 그곳이 목축이 잘 되어 롯 가족은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섭섭한 마음은 풀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의 삶을 사는 데 큰 지장을 받았을 거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런 마음을 전혀 갖지 않았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채워주셨다.

고통과 섭섭한 일에 대한 기억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 부부 간에도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가게 되지 않는다. 한두 번의 결정적인 실수나 잘못은 잊어버려 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더구나 수없이 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 섭섭했다고 두고두고 기억하고 문제 삼는다면 피차에 인생이 너무 피곤해지지 않을까? 해를 보내며 마음을 크게 가지고 말씀에 의지하여 망년하라!

의외로 부모자식 관계에 고통스럽고 서운한 과거를 잊지 못해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릴 적 섭섭하게 한 엄마, 가정에서 제 역할 못해준 아빠에게 대한 상처와 섭섭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두고두고 가족 안에서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와 생활에 그늘져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시부모나 장인장모에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가족 화목에 얼마나 지장을 주나! 뭘 선물을 사려다가도 마음이 식어버린다. 섭섭함을 풀어야 부부관계, 가족관계도 회복될 수 있다. 자식이 섭섭하게 했다고 그걸 풀지 못하고 꽁한 부모들도 적지 않다.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꼴보기도 싫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명절에 와도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지난 한 해 동안 잊지 못하는 상처와 섭섭함이 있는가? 오랜 아픔과 상처인데 지난해에도 해결 못하고 묵은 상처로 또 지나가는 문제가 있는가?

 

고통스런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받았던 상처도 내가 극복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운 법이다. 그때로 돌아가지 않는 한 힘들고 섭섭했던 사실 자체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자꾸 새기면 더 깊어지고 아파진다. 세월과 함께 잊으라, 이제는 잊을 때가 되었다. 그러니 성령님께 망년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잊으셨다. 그리고 그냥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있거나 섭섭한 모든 분들에게 이 시간 성령님께서 잊어버리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란다. 올해의 달력을 넘겨버릴 때 이 모든 기억도 잊어버리기를 축복한다!

 

실수와 죄책감을 잊자

자기의 실수와 죄책감에 매여 앞을 향해 전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너무 많다! 잘못했던 일들을 잊어버리라. 왜 지나가버린 과거의 잘못에 매여 괴로워하고 있나?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이니까 실수하고 잘못하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뼈아프게 기억하고 그것 때문에 평생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있다. 젊은 시절에 잘못 살아서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자녀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경우도 있다. ‘나는 행복해서는 안 돼. 나는 이렇게 편히 살수 없어.’ 하면서 자책하는 마음을 가지면 늘 평안이 없다.

촉망받는 성악가였던 어떤 여성은 중요한 자리에서 노래를 하다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큰 실수를 했고, 그 뒤에 무대공포증,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오랫동안 노래를 못했다. 훌륭한 재능을 썩히다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겨우 무대에 설 수 있었는데, 많은 젊은 세월을 보내버린 뒤였다. 한때의 실수를 잊어버리고 그냥 노랠 불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러분이 하는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큰 잘못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었다고 해도, 해가 바뀔 때는 잊어버리고 나가야 한다. 더 잘해서 해결해야지, 그걸 아파하고 미안해하느라 아무 것도 못하면 해결되지 않는다.

내 잘못 때문에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다. 내 실수 때문에 너무 큰 아픔과 상처를 당한 사람이 있다. 그럴 수 있다. 삶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정의한 홉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늘 이기거나 지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잘 되면 어딘가에 우리 때문에 눈물 흘릴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교회 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밟아 죽인 벌레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다 자책하면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또 남의 잘못도 잊어버려야 한다. 내 맘에 들고 참아줄 만한 사람하고만 살려 한다면 결국 우리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나는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남한테 피해도 받지 않으면서 살 거야.’ 이러는 사람들은 결국 많은 사람을 잃게 될 뿐이다. 잘못하는 사람들도 잘하는 일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잘하는 사람도 잘못하는 일이 없지 않다. 잘못하는 것과 잘하는 것들 중에서 잘못은 잊고 잘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아껴주면 살라. 얼마나 우리 인생이 아름다워질까!

신앙생활도 죄책감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내가 너무 잘못해 드렸기 때문에 나는 그분들의 뜻을 받들어 교회에 열심히 나가야 돼- 하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진정한 기쁨과 은혜가 없다. 무거운 부담감이 지배한다. 잘못을 기억하여 교훈을 삼되 그 아픈 결과는 잊으라. 실수와 죄책감에 매여 있는 인생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잘못한다고 밀쳐내는 사람들, 세리와 죄인과 창녀들과 친구로 지내셨다. 왜 그랬을까? 예수님의 눈에는 잘못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가 보였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도 있다. 생명에 관한 문제나 신의에 관한 문제 중에 어떤 것은 돌이켜지지 않는 것이 있다. 참 뼈아프다! 그러나 그런 잘못을 포함하여 모든 잘못은 다 용서할 수 있다. 잘못 자체는 없어지지 않지만, 세월과 함께 다 잘한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용서의 공간에서만 우리는 존재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 주님 앞에 설수 있었을까? 목숨 바쳐 우리를 살리신 주님의 사랑으로 잘못했던 일들을 잊어버리라. 이웃과 친구와 가족에 대한 나의 잘못도 잊고, 내게 행하여진 남의 잘못도 잊으라. 교훈은 새기고 기억하라. 그래서 한번 걸려 넘어진 말뚝에 다시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라. 그러나 잘못과 그 잘못이 준 악영향은 이제 잊으라. 묵은 해가 가지 않는가! 새해가 밝아오질 않는가!! 잘못을 잊는다면 우리는 새해를 진정으로 새롭게 맞이할 것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잊자

이루지 못한 꿈을 잊어버리라. 세월은 흐르고 기회는 지나간다. 그때 그걸 했었더라면 좋았을 걸... 뼈에 사무칠 만큼 아쉬운 기회와 꿈은 두고두고 우리에게 짐이 되고 아픔이 된다. 가지 못한 대학, 이루지 못한 사업, 행하지 못한 말과 일들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현재를 충실히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공부 잘하고 잘생긴 부잣집 아들이 중요한 시험에서 일등을 놓치자 마음을 못 잡아서 방황하다 죽고 그 때문에 남은 가족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의 드라마도 있다.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데 머무르지 말고, 다른 기회를 찾아 나서면 되는데...

이루지 못한 사랑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많다. 중년이 되어서까지 과거의 사랑을 그리워한다든가, 이루지 못한 꿈을 늘 아쉬워하며 비관적으로 사는 사람은 인생에 지혜롭지 못한 거다. 지나가버린 기회, 어쩌면 큰 인연이 닿았을뻔 했던 사람들, 내 인생에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을 일들, 그것은 인생을 혼란시키는 신기루일 뿐이다. 이제 잊어버릴 때가 되었다.

과거는 돌아올 줄을 모르고 미래는 날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아쉬운 꿈을 접고 새로운 꿈을 만들어야 하는 때다. 사도 바울은 뒤에 잊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하였다. 그에게도 가말리엘 문하생이요 로마인으로서의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을 버리고 주님 주신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감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구하고, 온 세계에 주의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생애는 가시밭길과 같았다. 먹고 사는 게 어려웠고, 감옥에 갇히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만약 바울이 율법주의자요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기 권리를 이루려고 고생스러운 전도자의 삶을 포기했더라면, 온 세계를 향한 인류 구원의 대업은 멈추거나 늦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망의 그늘진 곳에서 살다 죽었을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강조하셨다. 세월은 거꾸로 흐르는 물과 같아서, 부진즉퇴(不進卽退)이다. 나아가지 않으면 물러서게 된다.

내가 수십년 목회를 하면서 보니까, 대부분 인생은 두 번째 꿈이 진짜 꿈이 될 때가 많다. 첫 번째 꿈은 신기루처럼 우리의 마음을 빼앗다가 사라지고 만다. 첫 꿈에 실패했지만, 다음에 나오는 꿈으로 우리 인생은 아름답게 달려가게 된다. 달려라, 바울! 바울 사도도 하나님이 주신 새 꿈으로 무장하기 위해, 율법학자로서의 꿈, 로마시민으로 출세할 꿈을 배설물과 같이 버려야 했다.

 

달려라, 바울!”

고통과 서운함을 잊자. 실수와 잘못을 잊어야 한다. 좌절된 꿈도 이제는 내려놓고 잊어버리라. 진정한 망년 뒤에 진정한 신년이 온다! 성령 안에서 잊고 새롭게 시작하라! 그때 저기 밝아오는 새해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올해의 질병과 불경기와 혼란을 우리는 잊어버릴 것이다. 이처럼 잊어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삶에 주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달려라, 바울!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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