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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마가2:18-22) [2024년 10월 27일, 종교개혁주일]
2024-11-12 15:00:57
박신진 목사
조회수   22
설교일 2024-10-27
설교말씀 마가2:18-22
설교제목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마가2:18-22

20241027[성령23주일/종교개혁507주년]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주의자들의 표어다. 개혁의 자는 가죽이다. 가죽을 벗기는 것이 개혁이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 개혁인지 모른다. 그런데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사람이나 교회나 개혁하지 않으면 지저분해진다, 개혁을 미루면 성장이 잘 안된다, 개혁하지 않으면 병들거나 결국은 죽는다. 개혁은 아프다, 힘들다, 그러나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개혁해야 한다.

오늘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7년이 되는 종교개혁주일이다. 개혁을 말하면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골치 아픈 문제를 들고 나와 신앙생활을 피곤하게 하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혁은 단순히 교회 지도자들이나 개혁주의자들만 관심하는 문제일 수 없다. 시대가 무섭게 변화되었다. 안에서부터 개혁의 요구가 일어나고 있다. 개혁의 과제는 미룰 수 없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너무 낡았고 때가 많이 묻어있고, 무기력하고 병들어 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형편이다. 그만큼 교회와 우리 신앙이 개혁을 요구하는 때가 되었다.

예전에는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고 부흥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부흥을 말하던 분들, 부흥사들은 절대 개혁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개혁과 부흥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요, 상충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교회와 신앙이 개혁되지 않고는 진정한 부흥, 지속적인 부흥이 안 된다. 또한 부흥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개혁도 말로만 끝난다. 개혁과 부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개혁 안에 부흥이 있고, 부흥 안에 개혁이 있다.

역시 이 모든 변화에는 복음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성령께서 주관하셔야 한다. 요즘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복음을 잊어버리고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을 때, 개혁을 말하다가 복음이 변질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한다. 또한 성령을 따라 행해야지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오직 주님 중심, 성령 주도의 개혁이 이뤄질 때 교회는 새로워지며 지속적으로 부흥되고, 그 안에서 모든 성도들은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새 시대가 되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자!!

 

유대인들은 포도주가 늘 식탁에 올라왔고 포도주 저장법을 익숙하게 알고 있었다. 오래된 포도주는 헌 부대에 담겨있는데, 그것은 이미 발효가 끝나고 숙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포도주는 왕성하게 발효가 되고 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헌 부대에 둘 수가 없고 새 부대를 사용해야 했다. 만약 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는다면 굳어진 헌 가죽부대가 맹렬한 발효가 이뤄지는 새 포도주를 감당할 수 없어 부대가 터지는 사고가 난다. 그러면 부대도 버리고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물을 때 해주신 말씀이다. 또 이 말씀의 앞부분에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다가 바리새인인 서기관들에게 비난받으시는 내용이 나온다. 옛 관습, 그들의 전통으로는 경건한 종교인은 금식해야 했고, 세리나 율법에 규정된 죄인들과는 함께 자리를 하지 않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옛 시대의 낡은 가죽부대인 것을 아셨다. 예수님의 오신 때는 금식할 때가 아니라 축제할 때였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하는 때였다. 새 시대의 새 복음,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으면 가죽이 터져 못쓰게 될뿐더러 포도주도 몽땅 버리는 사고가 일어난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 복음은 새 삶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구 시대의 율법적인 기준이 예수님의 복음에는 합당하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이 시대와 교회는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우리 마음이 외치는 것을 들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이 시대에 과감하게 물어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래 정신에 맞는 내용이고, 방식인가?’ 예수님이 가시는 믿음의 길과 다르게 가거나, 멀리 떨어져있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인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리하여 주님의 길이 우리 가운에 분명히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첫째, 금욕의 종교에서 축제의 종교로 개혁되어야 한다. 엄숙한 종교적 신앙에서 기뻐하고 축제하는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왜 당신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혼인집 손님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복음은 금욕의 종교가 아니라 축제의 종교임을 천명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슬픔과 탄식, 엄숙한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감사와 감격, 기쁨의 노래와 춤, 활기 있는 축제를 향해 나간다. 잘 믿는 사람들이 너무 심각하다. 이것 저것 된다 안 된다 따지기만 한다. 우리 신앙생활에 감동이 있고 감격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이제, 즐거워하는 교회, 축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신랑과 함께 있는 잔치에서는 기뻐해야 한다. 주께서 주신 은혜와 행복이 넘치는데, 종교적인 엄숙함을 꾸밀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적인 문화배경에 전해졌기 때문에 유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엄숙주의이다. 종을 땡 땡!”, 그것도 세 번 치고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 방식이 오랫동안 예배 시작 형식이었다. 예배를 시작할 때 조금 무겁게 시작한다. 우리교회의 찬양시간을 맨 처음에 둔 것과 설교 후 찬양하는 것은 이런 것을 조금 극복하려는 것이다. 장례식과 같이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한다. 이러니, 살아있는 예배가 아니고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버린다. 신랑이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은 예수와 함께 감격하라, 예수와 함께 마음껏 행복하라, 즐거워하라는 말씀이다. 신앙은 감격이며, 예배는 축제다!

이미 교회는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 축제의 종교를 향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이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기쁨과 축제를 향하는 교회의 흐름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고 담대히 나오라! 감동하고 감격하는 성도가 예수 안에서 생명력을 얻고 믿음이 점점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는 오랫동안 춤추며 노래하는 기쁨을 예배와 축제 속에 간직하고 있다. 감리교를 시작했던 요한 웨슬리도 그의 동생 찰스와 함께 노래하는 감리교회의 전통을 살려왔던 것이다. 오래 된 옛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감격과 기쁨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에서 뜨거운 감사를 회복하고 감격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감격과 감동을 잃어버렸다. 말씀을 듣다 감동받아 몸이 떨리고, 새벽기도하다 아침까지 눈물을 뿌리던 그 감격이 어디 있는가? 은혜 가운데 함께 오늘을 노래하며 즐기고 기뻐하는 것은 절대 불신앙적인 육신적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천국의 삶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감격하고 감사하라, 서로 사랑하며 지금 여기에서 복되게 살아가라! 금욕의 종교에서 축제의 종교로! 그것이 이 시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둘째, 획일적인 신앙에서 다양한 신앙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옛날에는 백의민족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교회 나올 때 가능하면 유채색 옷을 입지 않고, 하얀색이나 검은 색의 무채색 옷만을 입었다. 예수님의 복음은 전통의 내용을 지키는 획일적인 종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는 개방과 용납의 종교이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금지된 사람과 세리를 멀리할 것을 가르쳤으나,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시키러 왔다고 하신다. 오늘의 말씀 앞뒤에는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말씀과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딱딱한 전통이나 권위에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자리에 다양한 사람에게 열려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빈야드교회를 시작했던 죤 윔버는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가는 것은 세속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세속의 노래와 분위기를 예배에 접목시키고, 청년들이 놀기 좋아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다. 카페나 나이트클럽 같은 데가 청년들과 만나 복음을 얘기하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청년문화를 이해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청년들이 교회로 돌아오고 주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하여, 그분이 담임하는 교회가 얼마나 부흥했는지 그 마을 주민보다 교인들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물론 교회는 거룩함을 지켜야 하고 경건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믿는 사람들이나, 세속 문화에 대하여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종교적인 교만함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용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지만, 표현은 다양하고 다 달라서 무한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교회가 노인대학을 시작할 때, 교회 나오라는 방편으로 노인대학을 준비하지 말고 노인들을 섬기는 순수함으로 나아가자 할 때 모두 기쁘게 동조해주셨는데, 그 때문에 동네 노인들이 많이 참여하였던 기억이 있다. 교회에서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에는 조용하라, 순종하라는 것이 미덕이지만, 이제는 경우에 맞게 자기 소리를 내라, 참여하라, 봉사하라는 것이 미덕이다. 다양한 사람들, 여러 가지 다른 분위기도 용납할 때 온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속회와 선교회는 믿지 않는 형제자매들에게 문을 열고 그들을 초청하며 따뜻하게 영접해야 한다. 교회는 언제나 불신자에게 그 자리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셋째, 과거지향적인 신앙에서 미래지향적인 신앙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살아있는 복음은 시대를 따라 새 옷을 입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려 하기보다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경험이 많고 평생을 믿음으로 헌신한 어른들을 배나 더 존경해야 한다. 한편, 노장들은 평생 교회를 주관하려 하지 말고,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교회의 중심에 서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노장들과 젊은이들은 서로 협력하고 동역해야 한다. 젊은 일꾼들을 빨리 키워야 한다.

나는 시카고의 윌로우크릭교회를 몇 번 방문했었다. 그곳은 빌 하이벨스 목사가 청년 시절에 자기 후배 청년 몇십 명으로 시작한 교회이다. 그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다른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교회를 이루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교회는 청장년과 청년이 중심을 이루는 교회가 된다. 그때 위대한 힘을 발휘하여 정말 새로운 형태의 교회문화를 세워간다. 그 교회가 초창기부터 시작한 ‘seeker's service'(구도자예배)는 세계적으로 열린 예배의 모델이 되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교회는 동해삼척지방의 제일 오래 된 교회이면서도 청년들 모임이 잘 이뤄지는 교회이다. 우리교회는 주일 오후 2시에 어른들이 모이는 예배와는 별도로 청년예배가 열려있다. 청년들이 열심히 모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흡하다. 강원대학이 가까이 있으니 그들을 복음화시켜야 한다. 교회는 청년들을 위해 기회를 주어야 한다. 기독교 청년문화를 세워가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 안에 청년들을 활성화시키고, 청년들이 좀 나서도록 자꾸 북돋워 줘야 한다.

기독교가 너무 전통에 안주하고 있다. 미래를 향하여 문을 열어야 한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비개성화의 길을 걷고 있는 기독교가 창의성과 모험성이 인정받는 풍조를 일으켜야 한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자. 과거로 돌아가려는 회고적인 기독교에서 미래를 향하여 펼쳐가는 꿈이 있는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 요즈음도 정통, 원조 하면서 과거로 돌아가려는 기독교를 본다.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들, 청장년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선배들이 한분 두분 은퇴하고 나니 올해부터 지방에서도 내가 제일 선배가 되었다. 그런데 후배들, 목사들이나 교인들을 보면 너무 기가 빠져있다. 너무 무기력해 보인다. 조금만 튀면 자꾸 면박을 주고 비판을 해대니까 이제 일어설 기력이 없어 보인다. 일어서라!! 교회 안에 있는 젊은이들이여! 하나님은 기독교를 새롭게 하라고 젊은이들을 부르신다.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들고 일어서라!!

 

감독을 역임하신 고 장기천 목사님은 인간 역사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큰 세력이 있다고 하시면서, 하나는 자연과학이고 하나는 종교라고 하였다. 우리가 일본보다 역사도 길고 높은 문화수준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찌하여 지난 날 일본의 지배를 받고 시달려왔을까? 자연과학이 그들보다 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역사는 또 다른 힘에 의해 유지되는데, 그것은 종교이다. 과학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데 비해 종교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 과학과 종교는 이렇게 서로 보완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도덕수준이 높아지고 인간 정신이 고결해지려면 종교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종교가 타락하고 그 본분을 잃어버려서 사회의 불신을 받는다면 어찌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 나라의 자연과학은 많이 발전하여 세계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되었다. 그러나 정신문명은 그에 못 미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요시아 왕은 어릴 때 왕이 되어 나라를 맡게 되었는데, 성전이 너무 낡고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을 큰 문제로 느꼈다. 그래서 성전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전 골방을 치우다가 그 속에서 오랫동안 처박혀있던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요시아는 율법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종교를 개혁하여 새 시대를 열게 되었다. 507년 전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유럽에서 일으킬 때 오직 말씀으로!”를 중심으로 세웠다. 성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다. 이제 이 나라의 정신혁명을 이루기 위해 말씀으로 돌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개혁할 때의 자는 가죽 () 자이다. 개혁이라는 말의 뜻은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가죽을 벗겨서 새 가죽을 입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죽을 벗기려면 아프고 힘이 들기 때문에 틀림없이 반대에 부딪친다. 그러나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시대가 이미 개혁을 요구하고 있고 개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다 개혁을 이룬 후에 우리도 따라가려고 하면 늦는다.

예수님의 복음은 축제의 종교요, 개방의 종교요, 새 시대의 종교이다. 감격이 있는 신앙, 다양한 신앙, 미래지향적인 신앙이 예수의 복음이다. 이 복음으로 잔치하는 교회, 더불어 사는 다양한 교회, 젊은이들을 품는 교회가 되자!! 그때 우리 모두가 교회에서 개혁과 부흥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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