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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란 무엇인가? (누가15:20-24) [2026년 9월 20일, 성령강림후 열일곱째주일]
2026-09-20 12:52:32
박신진 목사
조회수   3
설교일 2026-09-20
설교말씀 누가15:20-24
설교제목 추석이란 무엇인가?

추석이란 무엇인가?

누가15:20-24

 

2026920[성령강림후 열일곱째/ 추석앞주일]

 

서울대 김영민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칼럼은, 2018년 추석에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글이었다. 밥을 먹다가 음식을 한가득 입에 물고서, “나는 누구인가?” 소리내어 말해본다면 함께 밥 먹던 사람들이 수저질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그 사람을 쳐다볼 것이다. 추석이 다가오면 부모님을 포함한 친척들이 새삼 왜 결혼 안하냐? 직장은 잘 다니냐귀찮은 질문을 할 텐데, 당숙이 너 언제 진급할 거니?”라고 물어보면, “곧 하겠죠, .”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대답해보라는 것이다.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이지요?” 대답하라는 것이다.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대답해보면 어떨까? 정말 친척 조카가 이러면 엄청 당황할 것 같다. 이 얘기는 어떤 일들이 있을 때 우리가 나의 생과 일들에 대하여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라는 말이다. 그러면 쓸 데 없는 일에 오지랖 부리며 사는 허세와 낭비를 버리고 본질에 충실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겉으로 드러나게 말해서 주위 사람들 걱정 살 필요는 없고, 속으로 혼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짐으로 본질에 가까운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추석이란 무엇인가>. 고향 찾는 날일까? 부모님 돌아보는 날일까? 저녁달을 보며 조상을 생각하는 날인가, 아니면 배부르게 먹고 노는 날일까?

신부님 두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과속으로 달리는데 교통경찰이 세워보니 신부님들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봐주려고 아실만한 분들이천천히 다니십시오, 사고 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부님이 걱정 마십시오.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아이구! 그럼 스티커를 끊겠습니다. 3명이 타는 것은 위법이거든요.” 하였단다. 여러분도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과 함께!” 안전하게 다니시라!

 

오늘의 성경말씀은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일찍 달라고 하였다. 그는 집을 멀리 떠나 사업한답시고 설쳐 대다가 다 탕진하고 말았다. 돌아가려니 죄송하고 있으려니 대책이 없어, 할 수 없이 떠돌다가 돼지우리에서 돼지먹이를 함께 먹어야 하는 짐승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아들이라 하지 말고 삯일하는 일꾼으로 써달라고 해야겠다고 하면서 돌아간다. 아버지는 속 썩이다 다 털어먹고 온 아들이지만 잔치를 하면서 기뻐한다는 말씀이다.

누구나 이 둘째 아들처럼 집 떠난 경험이나 부모님 말씀을 거역한 경험, 혹은 청소년 때나 청년시절 방탕한 경험 한 번쯤은 있다. 성서의 이야기와 때와 장소나 상황은 좀 달라도, 누구나 사람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있다. 신앙생활 착실하게 하는 사람들도 그 마음속을 살피면 이런 둘째 아들의 심정이 아주 없지는 않다. 목사의 가정에서 자라 자신도 목사가 된 내 경우도 드러나게 문제아로 행동한 적은 없어도 생각해보면 내면적으로 그 비슷한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뉴저지의 드류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이정용 박사는 그런 경험을 자기 책에서 쓰고 있다. 1950, 그가 십대일 때, 본래 집이 부자였다고 한다. 이북에 토지개혁이 있고 땅을 다 빼앗겨 가난해서 고등학교에 갈 기회가 없어서, 대신 여섯 달 동안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가 기술을 배워 철강공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부지런하고 똑똑하게 일하여 그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뽑혀 러시아에서 철강을 공부할 수 있는 유학생으로 추천이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청년 이정용은 러시아로 가게 되었어! 러시아로 가게 되었어!” 하면서 좋아서 집으로 뛰어 들어왔는데, 어머니는 의외로 무슨 소리야, 아들아!” 하면서 동조해주지 않으셨다. 어떻게 자기가 철강연구원이 되기 위해 유학 추천이 되었는지, 이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자세히 어머니께 설명을 했지만 어머니는 행복해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아들이 당신 곁에 있으면서 동생들을 돌봐주기 원하셨다. 저녁 내내 어머니와 다투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먼 나라로 떠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셨다. 결국 정용은 어머니 뜻을 거역하고 몰래 유학을 가기로 정한다.

떠나기로 한 날 아침에 어머니 깨기 전에 일어난다고 밝기도 전에 일어났지만, 어머니는 벌써 깨어있었다. 아들에게 다가오시며 정말 가야겠니?” 아들은 조용히 끄덕였다. “네게 아침밥을 지어주게 해다오.”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말씀하신다. “아니어요, 어머니! 기차가 일곱 시에 떠나고, 역에 닿으려면 한 시간은 걸릴걸요.” 그러자 어머니는 보따리에 먹을 것과 옷가지를 챙겨 주셨다. 동구 밖까지 나와 보내면서, 잠깐 서게 하시고는 숨겨놓았던 돈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넣어 두어라. 도착하거든 편지하고, 빨리 돌아오너라. 매일 너를 기다리마.” “, 어머니, 걱정 마세요!” 어머니가 아들을 품에 안고 작별을 하는데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야해요, 어머니.” 아들은 서둘러 동쪽으로 가며 말했다.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대합실은 거의 비어있었다. 평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역 대합실이 북적였는데 이상하게 여기면서 표를 끊으려고 다가갔다.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웅기 가는 표를 예매했어요!” 유니폼을 입은 한 아저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정부의 명령으로 모든 예약은 취소되었어!” “왜요?” “남조선하고 전쟁이 시작되었대!” 그 아저씨의 대답이었다. “남조선이 아침 일찍 우리를 공격했어. 집에 가서 있는 게 나을 거야. 얼마간은 여행을 할 수 없어.” 이 말은 청년 이정용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동시에 러시아로 가려던 꿈을 빼앗아가 버렸다.

어머니하고 작별하던 장소까지 돌아왔을 때 이 젊은이는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었다. 6월 하순이라 옥수수가 제법 자랐는데, 마침 밭에서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자기만 성공하겠다고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고 고집을 부리다가 작별까지 했는데, 다시 돌아오니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했겠는가! 어머니에게 가서 부르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어머니에게 전쟁 소식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조선하고 전쟁한대요. 전쟁이 일어났단 말이어요.” 아주 머쓱하게 이 말을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일하다 말고 아들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들에게로 다가와 꼭 안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집에 돌아오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네가 집에 돌아오다니!” 아들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다시 얘기를 해도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한 손에 호미를 잡고 한 손에 아들 손을 잡고 너무 즐겁고 평화롭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오직 아들만을 원하셨던 것이다. 이정용 박사는 그때 어머니와 들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경험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노라고 고백한다.

 

나중에 누가복음 15장을 읽고 이 일을 회상할 때, 이정용은 스스로가 방탕한 아들과 같이 어머니께 죄지은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통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아들에 관심을 가지고 아들을 원했다. 또 아들이 자기를 배반하고 떠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그냥 돌아온 아들을 기쁨으로 받아주었다. 누가복음 비유 말씀의 아버지처럼 아들이 무엇을 했는지 따지지 않고 그냥 돌아온 아들 보는 기쁨에 압도되어 좋아했을 뿐이다. 이것이 모든 이 땅의 부모님 심정이 아닐까?

모든 자녀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지만 모든 부모는 항상 자식을 먼저 생각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뭔가 세속적인 것, 다른 것이 내 삶에 기쁨을 주고 자유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 바깥으로 나가보면 좋지 않을까, 계속 생각한다. 내게 얼마나 유익이 될까, 내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얼마나 즐겁고 기분 좋고 내 마음에 맞을까? 우리는 바람 난 사람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들떠서 산다. 내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인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아버지 말씀대로 순종하면 생명과 평안이 있는데,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여러분도 각자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내 경우에, 거룩한 울타리 교회 안에서 예배를 돕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살면서도, 집 떠나는 둘째 아들과 같은 마음일 때가 많다. 자기만족, 자기 성취에 관심을 주로 가지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지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고 더 큰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새로운 것, 다른 것, 심지어 세속적인 것까지 그리워하였다. 이미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거룩하고 기쁘며 충만한지 체험하였으면서도, 하나님 아닌 것들을 추구하고 그리워하느라 마음으로 아버지를 배반하고 거룩한 집을 떠나는 생활을 거듭하고 있다.

늘 예배하고 찬송이 넘치고 항상 기도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무언가 성공이 주는 만족,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 또는 물질적인 보상이나 명예, 세속적인 쾌락까지 추구하지 않았던가! 한 마디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아들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그런 주님과의 동행하는 믿음에 더욱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자꾸 사람들의 인정이나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아버지 집을 떠나려 하였다.

꽃집 주인이 꽃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고, 떡집 일꾼이 떡 맛있는 줄 모르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이 타성에 젖고 형식화되어버리면 주님과 함께 하는 아버지 집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를 잊게 된다. 고스톱을 쳐도 가책이 되고 술 한 잔을 마시려고 해도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 사업을 할 때도 자기 맘대로 하는 데 걸리는 부분이 많다. 고급 화장품을 쓰거나 비싼 옷을 사 입고 싶어도 마음에 자유가 없다. 어디 가서 노는 데에도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죄도 마음대로 못 짓는다는 식이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등질 때 우리는 이미 집 떠난 둘째 아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전도사일 때, 시골 교회에서 오랫동안 크게 충성한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진지하게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도사님, 나는 솔직히 예수님 믿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할 때가 많이 있어요. 자유롭게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애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너무 마음에 제약을 많이 받아요!” 큰 교회로 말하면 장로 권사 이상으로 열심히 충성하는 여선생님이라 깜짝 놀라고 약간 실망스러웠었다. 후에 생각해보니 누구에게나 그런 둘째 아들 심리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주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기쁨과 은혜로운 삶이 방탕한 세속의 거리에서 노는 기쁨에 비교할 수 있는가! 바람을 피우거나 노름을 한들, 어디 명품 물건을 사서 걸치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온들, 어찌 주님께 예배드릴 때의 만족과 아름다운 찬송에서 주는 위로, 깊은 기도에서 오는 능력보다 나을 수 있을까! 돈에 미쳐 사람의 마음을 돈으로 환산하는 미친 세상, 결국 모두가 자기만 위하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어 그리도 미적거리는가! 방탕한 둘째 아들이 되어 아버지를 속이고 집을 떠난다 한들, 무어 그리 위대하고 멋있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아는가? 우리는 영적으로 볼 때 세상이 약속하는 헛된 기쁨과 소망에 파산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런 절망과 파산이야말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진정한 축복이다!

깊은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세속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세속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라, 주님 품으로 확실히 돌아와야 할 때라는 말씀을 드린다. 믿는 이의 아름다운 기쁨과 축복으로 돌아오라!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 집을 떠나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 해봐도 남는 것은 허무와 슬픔뿐이다. 인생에서 무엇을 얻을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나의 아들아, 호기심이란 악에 주의할지어다. 유익 없는 일에 분주한 사람이 되지 말지어다.’ ‘행복이란 결코 이 세상을 어리석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칭찬을 받는 것과 같은 종류는 아니다.’(토마스 아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중에서) 그렇다. 주님을 떠나 멀리 가려고 하지 말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라.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배신과 죄악을 묻지 않고 당장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베풀고 기뻐하실 것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리운 부모님을 만나는 명절이다.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는 계절, 착한 자녀가 되기로 다시 다짐하는 명절이다. 여러분이 주님께로 돌아가 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삶의 실패와 고난과 근심이 그치고 진정한 평안과 위로와 기쁨이 회복될 것이다. <노란손수건>의 주인공 빙고 얘기로 설교를 마친다.

 

빙고는 무거운 죄를 짓고 중형을 받아 감옥에 갇혔다. 결혼한 아내가 있었는데, 금방 돌아올 기약을 할 수 없는 죄인이니 기다리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 재혼하라고 하였다. 자기는 그리 알고 포기하겠노라고그런데 교도소에서 모범수로 인정받아 가석방되어 4년 만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가석방 결정이 되자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가석방되는데 만약 과거를 용서하고 자기를 받아준다면 마을 어귀의 커다란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달라고, 버스를 타고가다 마을 입구의 참나무에 노란 리본이 달려있으면 용서의 표시로 알고 아내에게 돌아가겠고, 만약 노란 리본이 없으면 용서받지 못한 줄 알고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 버리겠다고, 아무 원망도 하지 않고 아내가 어떻게 하든 자기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고.

어떻게 되었겠는가? 빙고가 마을 어귀에 다가갔을 때 참나무에는 수십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이 달려있어서, 마치 노란 나무 같아 보였다. 용서받은 빙고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행복하게 살았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고향가는 날, 그리운 부모님 뵙는 날이다. 집을 떠나 외지를 떠돌았던, 방탕한 둘째 아들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잔치를 벌였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자. 마음의 고향, 영원한 성전의 언덕 위에 노란 리본을 달고 기다리실 주님께로 돌아갈 때이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20) 예배와 말씀으로 주님을 찾으며, 찬송하고 기도하는 신앙생활의 기쁨으로 돌아오라! 그때 이 땅 위에서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고, 영원한 천국에까지 그 영광과 기쁨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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