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설교전문

설교전문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전도서7:11-14) [2026년 9월 27일, 성령강림후 열여덟째주일]
2026-10-03 12:11:49
박신진 목사
조회수   4
설교일 2026-09-27
설교말씀 전도서7:11-14
설교제목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전도서 7:11-14

2026년 9월 27일 [성령강림절후 열여덟째주일]

 

두 사람이 낯선 산길을 걷고 있었다. 한 사람은 걸음이 아주 빨랐다. 갈림길이 나와도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이쪽일 거야.” 하면서 힘차게 걸어갔다. 다른 사람은 걸음이 조금 느렸다. 갈림길에 서면 잠시 멈추었다 가곤 하였다. 지도를 펴 보고, 주변의 산세를 살피고, 자신이 지나온 길도 돌아보았다.

앞서가던 사람이 말했다. “그렇게 자꾸 멈추니까 늦는 거야. 빨리 가자.” 그런데 한참 뒤에 문제가 생겼다. 빨리 가던 사람은 목적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자꾸 멈추던 사람은 좀 늦었지만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멈춰서서 지도를 보는 사람이 늦기만 한 것 같았는데, 사실은 제 길을 찾아 바르게 갔던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할 줄 아는 것이다. 우리는 형통하면 생각하지 않고 달리기 쉽다. 일이 잘되면 내가 길을 잘 선택했다고 섣부르게 판단한다. 반대로 어려움이 찾아오면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부터 한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전도서 7:14) ‘되돌아보아라’ 라는 말씀은 예전 번역에는 ‘생각하라’로 되어 있다. 영어번역에도 NIV에는 ‘concider’라고 되어 있다. 곤고한 날을 무조건 피하라고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돌아보라”고 한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잠시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내게 무엇을 보게 하시는가?”를 묻는 사람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침 일찍 동네를 뛰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부자를 보면서 자꾸 웃었다. 아버지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자기 자신을 한번 쓱 살펴보았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계속 뛰었다. 사람들이 또 자기들을 보고 웃는 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옆에서 뛰는 아들을 살펴 보았다. 역시 이상이 없었다. 계속 뛰었다.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다' 생각하면서... 그런데 사람들이 또 자기들을 보고 웃는 것이다. 그러자 아버지는 멈추어 서서 아들과 함께 확인을 하였다. 그러자 아뿔싸 튀어나온 발 쪽으로 뭔가 보이는 게 있는 거다. '아니 이럴 수가!' ... 이 아버지가 보니 글쎄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나온 것이다. 길옆에 앉아 숨을 고르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집에 가서 신발 좀 가져와라." 한참 있다 돌아온 아들 말하기를, (숨을 헐떡이며) "아버지 소용없어요. 집에 있는 신발도 짝짝이예요." 생각 없는 부자의 이야기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한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생각할 줄 알기 때문이다. 좋은 생각을 가지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생각을 가지면 나쁜 사람이 된다. 요즈음 좋은 생각이건 나쁜 생각이건 생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리 생각하기 싫어해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생각을 씨뿌리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씨뿌리면 습관을 거두며, 습관을 씨뿌리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씨뿌리면 운명을 거둔다.' 여기에서 인간의 인격과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제일 먼저 시작되는 요소가 바로 생각이다. 생각에서부터 행동이 비롯되고, 행동이 반복될 때 습관이 나오며, 좋은 습관을 많이 가지게 되면 인격이 좋아지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위대한 운명을 개척하게 된다.

그러니 좋은 생각, 바른 생각을 키우는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공격한다. 예수 제자였던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넣은 것이 바로 마귀이다. 생각의 문을 지키면 결코 마귀에게 지지 않는다. 마귀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미운 생각과 파괴적인 생각, 비애와 슬픔의 생각을 집어넣어 사람들로 하여금 진이 빠지게 하고 그만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자녀들을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기도를 한다. 좋은 학교, 좋은 성적, 좋은 직장, 좋은 배필, 좋은 집과 많은 돈을 벌기 원한다. 그러나, 자식들이 좋은 생각을 가지도록 기도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좋은 생각, 밝은 생각을 가진다면 얼마나 그들의 삶이 아름다워지겠는가!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좋은 생각을 가지게 해달라고, 나쁜 생각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 가운데 하나는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 된다는 관념이다. 한편으로는 '예수만 믿으면 다 잘된다'는 생각이 굉장히 좋은 믿음 같다. 그러나, 예수만 믿으면 만사형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칫하면 예수보다 만사형통을 더 믿기 쉽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함께 계신데도 불구하고 만사 중에 하나만 불통해도 낙심을 하고 좌절을 하며 방황한다.

전도서는 우리에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가르쳐 준다. 여러분 놀라운 지혜가 아닌가! 하나님 믿는 사람들에게 형통함과 축복과 승리는 귀한 것이지만, 어쩌면 실패와 고난과 곤고함이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 곤고한 날에 비로소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떤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며, 우리 인생은 곤고한 날에 어떻게 믿고 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한다. 불평하라, 원망하라, 핑계하라, 도망하라, 시비하라- 가 아니고, 생각하라-이다! 왜 곤고한 일, 실패, 역경, 고난, 무의미가 우리 인생 중에 있을까? 왜 인생을 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곤고와 고난과 실패와 고통도 또한 주시나? 형통과 승리와 합격과 영광과 행복만을 주실 수는 없는 것일까?

형통한 날이 있는가 하면 곤고한 날도 있다. 평안한 때가 있는가 하면 어려움을 겪는 때도 있다. 우리의 믿음은 이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형통함과 곤고함이 교차함으로 균형잡힌 인격이 나오게 되고, 거기에서 균형잡힌 인생이 된다. 중동의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햇볕만 계속된다면 사막만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둘을 병행하게 하셨다. 그러니 우리도 인생에서 이 둘을 다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푸른 초장 시원한 물가에서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광야와 사막에서 어떻게 걸어갈 것이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곤고한 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본문은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한다.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한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고난의 때에 가져야 할 중요한 지혜를 가르쳐 준다.

 

먼저, 알지 못하게 하셨음은 겸손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다 알았다 하는 어리석은 사람과, 잘 모르겠다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기독교 교리도 요즈음 '거듭남의 교리, 하늘로부터 오는 진리' 운운 하며 진리를 거저 가져다 줄 것처럼 요란하게 선전하는 사람들은 거의 이단이요 사이비이며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고난이 닥쳐올 때 고달프고 힘들 때 우리는 낙심하고 혼란을 겪는다. 그때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무게 앞에서 "야, 잘 모르겠다" 하며 사람은 비로소 겸손해지고, 이렇게 함으로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또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포기할 줄도 알고 받아들일 줄도 아는 사람이다. 요즈음은 무한경쟁과 쟁취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포기하거나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이다. 큰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엄청난 풍랑을 만났다. 얼마나 풍랑이 심한지 오래 배를 항해하던 선원들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죽을까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배에는 어떤 한 부인이 자기 딸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다 죽을까봐 야단법석인데, 이 부인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있었다. 어찌되었든 배가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였다. 한 선원이 어떻게 이 부인이 풍랑 속에서도 그렇게 평온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여 배를 내려서 부인에게 물어보았다.

이 부인은 자기 사정을 얘기했다. 이 부인에게는 딸이 둘 있었는데, 둘째 딸은 그만 얼마 전에 죽었다. 이 어머니는 지금 큰 딸에게 가는 길이었다. 이 부인은 풍랑이 일어 죽게 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죽으면 둘째 딸한테 가겠구나. 죽으면 둘째 딸한테 가고, 안 죽으면 큰 딸한테 가겠지.' 그러니 아무 두려울 것도 없고 당황할 것도 없더란다. 살아도 죽어도 기다리고 있는 딸에게 가는 것이다. 고난의 때에 잘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우리에게 얼마나 ‘다른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제발 우리 모두가 포기할 줄도 알고 받아들일 줄도 아는 미덕을 배우기를 기도한다. 세월이 지나고 때가 이르면 포기해야 할 때가 온다.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는 말씀은 또한 현재에 충실할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형통할 때는 기뻐하라는 말씀도 같은 뜻이다. 옛날에 잘 살았으면 뭘하나? ‘우리 부모가 이렇게는 살지 않았는데’ 그러고 있으면 무슨 유익이 있나? 지금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충실하라. 서양 속담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시작할 때이다' 하는 게 있다. 학생들은 성적에 따라 울고 웃는데, 성적이 떨어졌다고 자학하면서 마음을 잡지 못해 방황하느니, 지금의 성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부터 충실한 것이 낫다.

장사하는 사람들, 매상 안올랐다고 한숨 푹푹 쉬면서 오는 손님들 짜증나게 하지말고, 매상 안오른 대로 거기에서 충실하게 음식 잘 만들고 손님들 친절하게 대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 생각을 좀 해보라! 조금 어렵다고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정신 차리게 하신다.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금부터 열심히 하라!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형통한 길을 곧 주셔서 행복하게, 기뻐하게 하신다.

 

곤고한 날에 생각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히3:1에, 믿는 도리의 구주시오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다. 고난을 당하고도 주님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소망이 없다. 고난을 당하고도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매를 맞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식과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을 잘 살아오면서 승승장구하는 한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인생을 힘차게 잘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단다. “저의 장인어른 덕분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장인이 도대체 뭐하는 분이냐고 불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새벽마다 아내가 교회에 엎드려서 ”아버지, 아버지!“ 하시니 하나님이 장인어른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의지하고 열심히 사니까 잘 되더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이 주님을 늘 생각하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어야 하겠으나, 특별히 고난을 겪을 때, 곤고한 날에 주님을 생각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고난을 받으며 주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복이 있다.

 

다하라 요네꼬라는 일본 기독교인의 간증집 <산다는 것이 황홀하다>가 있다.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중 2때부터 불행이 오기 시작했다. 뇌일혈로 어머니가 쓰러져 고 2때인 10월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녀는 고3이었을 때 전동차로 뛰어들었다.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왼팔과 두 다리를 잃고 오른팔도 세 손가락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녀가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병실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에 날마다 병실에 찾아오는 미국인 선교사와 통역하는 동갑내기 일본인 청년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비참한 인생에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비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녀의 아집을 버리게 하셨다. 장애를 입은 사실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비뚤어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시며 그 상처를 싸매어 주셨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황홀한 삶의 기쁨을 가르쳐 주셨다.

그녀는 복음을 전해준 그 일본인 청년과 결혼한다. 지금은 목사가 된 남편의 아내로서, 두 딸의 어머니로서, 일본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살아간다. 의족으로 만든 두 다리로 마치 정상인처럼 걸어다니고, 세 손가락만 남은 오른쪽 한 팔을 가지고 모든 일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기 전에 생각을 먼저 쓰신다. 인생에는 형통한 때도 있고, 곤고한 날도 있다! 형통할 때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을 당할 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 1)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2)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시며, 3)현재에 충실하게 하시며, 4)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신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주님 안에서, 믿음을 회복하고 행복한 삶의 길로 나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기 바란다. *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828 질그릇에 담는 보배 (고후4:7-11) [2026년 10월 4일, 성령강림후 열아홉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10-03 5
827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전도서7:11-14) [2026년 9월 27일, 성령강림후 열여덟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10-03 4
826 추석이란 무엇인가? (누가15:20-24) [2026년 9월 20일, 성령강림후 열일곱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9-20 70
825 실라같은 친구 (행17:1-10) [2026년 9월 13일, 성령강림후 열여섯째주] 박신진 목사 2026-09-12 72
824 이미 이뤄진 하나님나라 (누가17:20-21) [2026년 9월 6일, 성령강림후 열다섯째/ 왕국절 첫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9-09 83
823 마음에 드는 사람 (삼상16:6-13) [2026년 8월 30일, 성령강림 열넷째주일/왕국절] 박신진 목사 2026-09-09 71
822 베드로, 물위를 걷다! (마태14:22-33) [2026년 8월 23일, 성령강림후 열셋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22 117
821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출애6:10-13) [2026년 8월 16일, 성령강림후 열두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15 123
820 우리는 진흙, 주는 토기장이 (사64:4-9) [2026년 8월 9일, 성령강림후 열한째주일/ 광복기념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8 140
819 환난을 이기는 믿음 (시20:1-9) [2026년 8월 2일, 성령강림후 열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154
818 풀밭과 물가로 인도하신다! (시23:1-6) [2026년 7월 26일, 성령강림후 야홉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116
817 복 받는 백성이 되는 길 (창25:21-34) [2026년 7월 19일, 성령강림후 여덟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124
816 주의 말씀- 발에 등, 길에 빛 (시119:105-112) [2026년 7월 12일, 성령강림후 일곱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8-01 120
815 맥추절 축제 (출23:14-17) [2026년 7월 5일, 멕추감사절/ 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7-04 211
814 두려움이 없는 믿음 (마가5:25-36) [2026년 6월 21일, 성령강림후 넷째주일] 박신진 목사 2026-06-20 208
1 2 3 4 5 6 7 8 9 10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