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 설교일 | 2026-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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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말씀 | 시46:4-7 |
| 설교제목 | 참된 교회 |
참된 교회
시46:4-7
2026년 10월 11일 [성령강림후 스무째주일]
한때 수도권 사람들은 생활의 필수 요소로 크고 좋은 교회에 나가는 것을 쳐주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학군 좋은 데 잘 지어진 아파트, 널리 알려지고 월급을 많이 받는 직장, 그리고 품위를 만족시켜 줄 유명한 교회에 나가는 것을 일등시민의 조건으로 쳐주었다. 90년대까지도 그 말이 통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사람들은 요즈음 만나면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요즘도 교회 다니냐?” 웃으라고 하는 소리인데, 웃을 수가 없다. 지난달 감리교회의 잡지인 <기독교세계>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교역자 임면 공고에서 미파와 휴직이 부쩍 많아지고, 폐쇄하거나 통합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10월은 열매맺는 달이고, 종교개혁주일로 마감이 되는 달이다. 루터는 왜 부패한 기독교와 유럽사회를 향하여 개혁의 종을 울렸을까? 젊은 마르틴 루터도 가슴 속에 교회는 무엇이냐, 바른 신앙이란 어떤 것이냐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삶의 자리에서 이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였다. 그러다가 교회의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판매하고 있는 면죄부를 중심으로 95개 조항에 달하는 공개질의를 성문에 붙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논란이 일어난 끝에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결국 루터가 하려고 했던 일은 참된 교회상을 찾는 일이었다. 무엇이 참 교회이며, 무엇이 참 신앙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던 끝에 교회는 개혁되었고, 신앙은 새로워졌다. 교회다운 교회, 참된 교회가 무엇인가? 오늘 이 문제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려 한다.
최주훈 목사라고,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가 있다. <루터의 재발견>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하나 실렸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교회는 오래 전에 제롬이라는 사람이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역 성서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였다. 잉글랜드 사람도 독일 사람도 프랑스 사람도 다 자국어가 아닌 라틴어로 된 불가타역 성서로 낭독하고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해야 했다. 당시 라틴말은 인문학을 공부하는 지식인들이 쓰는 말이었다. 뭔가 라틴말이 권위있게 들렸던가 보았다. 그러니 일반 대중은 성서를 읽거나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대 라틴어를 모르는 민중이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받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니 성경을 모르고 배울 기회도 없는 사람들은 성화를 숭배하고 성찬을 절대시하는 미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대중들은 예배당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으로 복음서의 단편적인 내용들을 짐작하는 정도였다.
당시 한 아버지가 잉글랜드에 살았다. 그는 성경을 제 나라 말로 읽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라틴어를 모르는 어린 자녀들에게 모국어인 영어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었다. 비극은 아버지가 그 꿈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소신에 따라 주기도문을 영어로 번역하여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외의 다른 언어로 된 성서를 소지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법이 그들을 옭아맸던 거였다. 결국 이 일로 인해 무려 7명이나 화형에 처해지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최주훈, <루터의 재발견>, 2017) “이게 실화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분명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자기 모국어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교회가 성도를 죽이는 슬픈 코미디의 시대!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 이전 시대였다.
시편46편은 시온시편이라고 분류되지만 교회에 대하여 노래한 시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와 돌보심을 노래하는 이 시편 중간과 뒷부분은 하나님의 성소를 노래하는 부분이고, 이 부분을 잘 상고하면 오늘날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성소를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므로, 참된 교회의 모습을 여기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상고하면서 우리교회도 참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성경을 보니까, 참된 교회는 은혜의 시내가 흐른다. 4절을 보자.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성소에 시내가 나뉘어 흘러든다. 시내 한 줄기만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줄기의 시냇물이 풍성하게 교회로 흘러든다고 시편은 노래하고 있다. 한 줄기가 아니고 여러 줄기의 은혜의 강! 그래요! 교회다운 교회는 기본적으로 은혜의 강물이 흘러야 한다. 기쁨의 시내가 흘러야 한다. 사랑의 시냇물이 풍성히 넘쳐흘러야 한다.
교회가 너무 메마르면 안 된다. 교회가 광야 같이 메마르면 어디서 터지든 문제가 터진다. 사람은 다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있는 한 문제는 있다. 그러나 교회에 시내가 흘러넘치면 그 문제가 다 씻겨 버린다. 광야 같은 세상은 메마르고 물이 없고 곤고하며 길을 잘 찾을 수 없다. 그러기에 생명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교회는 기본적으로 은혜와 사랑의 시내가 흐르는 곳이기에 이곳에서는 풍요롭고 넉넉하며 서로 상통하고 즐겁다. 그러기에 교회에 들어오면 모든 존재가 다 생명을 얻고 더 얻어 생기 있고 즐거운 모습으로 변화된다!
오래된 사진들을 좀 정리하기 위해서 사진첩을 뒤적이다보니 예전의 추억들이 막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경기도에 있을 때 어리고 경험도 별로 없었으며 아이들도 어려서 복잡했지만, 교회에 은혜와 사랑의 강물이 풍성히 흘러 넘쳤다! 교회만 오면 즐겁고, 모이기만 하면 기뻤으며 헌신하고 봉사하고 수고하는 게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다. 교회 안에 은혜와 사랑의 강물이 흘렀었다. 10년 목회하고 아이들하고 원주에 원로목사님이 은퇴하는 교회의 후임으로 옮겨갈 때에 교인들이 이임을 발표하고 두어 주 지나는 동안 하도 울어서 정말 힘들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도 생생한 감각으로 그때 그 교회가 교인들과 함께 은혜의 강물을 마시며 사랑의 교제 가운데 하늘나라를 경험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교회도 강같이 은혜가 흐르는 교회이다. 더 풍성히 은혜의 강물이 흐르게 하라!
가장 좋은 것은 은혜의 샘물이 철철 흐르게 하는 것이다. 교회에 시내가 흐르게 하자! 은혜의 시내가 흐르기 시작하면 저절로 교회가 정화되고 새로워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목사에게서만 시내가 흐르기를 바라지, 교인들이 시내를 흘려보내려고 하지 않는 데에 깊은 문제가 있다. 샘이 마르고 시내가 그치면, 아무리 청결하고 의롭게 살아도 결국 지저분해지고 갈등이 생기며 문제가 일어난다. 하나님은 은혜의 주님이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흘려보낼 수 있도록 여러분이 열린 문이 되어 은혜의 통로가 되시라! 기쁨으로 봉사하고 사랑으로 헌신하면서 세상에서보다 교회에서 더욱 시내가 흐르도록 하라! 목사님은 말씀을 충실히 전하고 교인들은 풍성하고 넉넉하게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 생명의 능력이 여기에서부터 나타날 것이다.
‘주여! 우리 교회에 시내가 나뉘어 흐르게 하옵소서! 주의 종과 온 교인들이 자기 자리에서 은혜와 사랑의 샘물을 흘려보내게 하시고, 처음 믿는 사람들과 동네사람까지 은혜와 사랑의 샘물을 흘려보내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는 참된 교회운동은 교회에 은혜와 사랑의 여러 시내가 흐르도록 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오늘 성경을 보니 또, 참된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5~6절을 보자!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세상은 흔들리지만 하나님이 도우시며 소리를 내시는 하나님의 성은 흔들리지 아니한다. 오늘 시편에 의하면 성소 즉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이른 아침부터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곳이며, 하나님이 소리를 내시는 곳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 음성만 들리고 하나님의 소리만 나타나니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사람들이 자기의 귀가 가려워서 가려운 데를 긁어달라고 하는 시대이다. 철저히 자기중심주의이다! 일찌기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풍조를 경고하였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3~4)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허탄한 이야기를 지껄이는 곳이 아니다. 디모데전서에 말씀하신대로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하)
교회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하라! 그래야 교회가 흔들리지 않는다. 자꾸 자기 말을 높이면 교회가 흔들린다. 사람 말이 들리고 세상 말이 들리고, 자기 이익, 자기 주장, 자기 견해, 이런 것을 자꾸 내세우면 교회가 흔들린다. 참된 교회, 말씀 위에 기초한 교회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흔들려도 교회가 흔들릴 수 없는 것은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며 하나님이 소리를 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소리를 내시면 땅이 녹는다! 더 이상 무엇이라 떠들 자가 없다! 교회로 하여금 진리를 말하게 하고, 그 어떤 소리도 거기에 대적하지 않도록 하자! 이게 바로 참된 교회로 나아가는 길이다! 오직 말씀으로!!
왜 이렇게 소리가 많을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오늘날 종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사무엘이 성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윗이 예언자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솔로몬이 성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드로가 요한이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소리를 발하시고 우리가 그 앞에서 떨며 순종할 때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이런 교회가 세상 가운데 설 때 세상도 흔들리지 않는다! 10절을 보니까,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도록, 그분의 음성만 들리도록 말씀 앞에 겸손히 조용히 입을 닫고 있기 바란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2)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쇠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말씀으로 말씀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말씀으로) 내가 살리라!>
성경을 보니, 참된 교회는 피난처가 된다. 7절을 보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만군의 여호와, 세상 가운데 가장 높고 힘 있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다! 야곱의 하나님은 족보가 있는 하나님, 관계가 있는 하나님, 무언가 우리와 연관되어 계신 현실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우리 피난처가 되신다!
피난처 혹은 산성!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이것을 굉장히 찾고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가 아니고 사실은 ‘피난처를 찾습니다!’ 이다! 피할 곳, 안전한 곳, 쉴 곳을 사람들은 간절히 찾고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그냥 죽지 않고 여기 저기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 되지도 않은 소리로 죽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고, 무언가 피할 곳, 안전한 곳을 엄청나게 찾는다고 한다. ‘이 산 저 산 둘러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시121:1) 그런 마음인 거다!
피난처를 찾는 사람, 안전한 산성을 찾는 사람에게 교회가 피난처가 될 수는 없을까? 교회다운 교회는 피난처를 찾는 사람에게 피할 곳과 쉴 곳을 주는 교회이다! 교회는 죄인들이 피할 곳이 되어야 한다. 죄인이라고, 잘못했다고 정죄하지 말자! 비난하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죄인이니까 교회에 온 거 아닌가? 죄인들이 교회 와서 정죄 당하고 무시당하고 사람 취급 못 받으면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하나? 절대 죄인들을 정죄하지 말고 기도해 주어야 하는 곳이 교회다! 왜? 교회다운 교회, 참된 교회는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약자가 교회 와서 왕따당하면 안 된다. 장애인과 환자가 존중 받고 우대받는 곳이 참 교회이다! 파산 당한 자, 자신의 실수로 어려워진 사람, 소외된 자를 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남편한테 대우 못 받는 여자가 교회 가서도 무시당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상처받은 사람 싸매주고,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사회 문제, 어려운 사람을 다 감당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을 내치지 않고 이해하고 받아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에 오면 안전하다, 편안하다, 이렇게 되어야 참 교회이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피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보호가 살아있는 든든한 산성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좀 너그럽게 마음을 가지라. 예수께서 죄인들을 용납하신 것처럼, 잘난 사람을 요구하는 교회가 아니라, 있는 사람 그대로를 잘난 사람으로 인정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자! 교회 부흥은 가진 사람, 생긴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 병든 사람 없는 사람이 모여서 이룬다. 이 사람들이 점점 든든해지고 병이 낫고 삶이 풍성해져서 이루어 가는 것이 교회 부흥이다! 피난처이다, 안식처이다, 길 잃은 이들의 보금자리요, 거할 곳이 없는 나그네들의 기댈 곳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교회들은 이 표어를 붙들고 역사를 이어왔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지 않도록 교회다운 교회의 본 모습을 회복하자!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 모두 열린 마음, 열린 문이 되어 나부터 은혜의 강물을 교회 안으로 흘려보내도록 하자. 남의 시냇물이 좋으니 나쁘니 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작은 시내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흘려보내도록 하자! 하나님만이 말씀하시도록 하고 우리는 조용히 순종하여 흔들리지 않는 교회를 세우자!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 때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교회를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게 하자! 외로운 자, 방황하는 나그네가 머물 수 있는 곳, 하나님의 빛이 항상 비취는 곳이 되게 하자!
이렇게 하여, 루터가 세우고 싶었던 교회를 우리 땅에 세우자!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 하나님이 세상의 주님이심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하나님 나라를 날마다 넓혀가는 곳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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