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전문
| 설교일 | 2026-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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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말씀 | 고후13:11-13 |
| 설교제목 | "안녕!"이라고 말합시다. |
“안녕!”이라고 말합시다!
고후13:11-13
2026년 11월 1일 [성령강림후 스물셋째/ 박신진목사 삼척제일교회 고별주일]
1950년에 죽은 조지 버나드 쇼는 자기 묘비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노벨문학상까지 탄 사람다운 촌철살인의 묘비명이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고야 마는구나 하는 말이기도 하고, 종말을 잘 준비했나 하는 자기 성찰이 들어있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 내년봄 은퇴를 앞두고 6개월 안식년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랑하는 삼척제일교회의 17년 사역을 마감하는 나도, 어쩐지 이런 마지막 말을 남겨야 할 것 같다. ‘아! 그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우물쭈물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
매년 추수감사절이면 설교 중에 사랑하는 가족들, 자녀들 영상 메시지를 보거나, 교우 가운데 특별한 간증을 듣는 시간을 가지곤 하였다. 올해는 추수감사절 두 주 전 주일인 오늘 저의 아내가 고별인사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하여 내가 부탁해보았다. 사실은 제 아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저와 결혼하여 목사의 아내가 된 후에 감신 여성지도자 2년제 과정을 졸업했기 때문에 심방전도사나 상담가의 자격이 있으므로 설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저를 내조하느라고 한번도 강단에 서지 않은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짧은 시간이나마 아내에게 마이크를 넘겨보겠다.
[오진숙 사모 인사, 찬양]
많은 기억이 떠오른다. 2010년 7월 중순에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한달이 못되어 삼척제일교회에 부임할 때, 여러 교우들의 눈동자가 마치 종이를 뚫을 듯이 우리 가족을 향하여 집중되는 첫 예배를 드렸었다. ‘아, 새 목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구나!’ 하였는데, 어느덧 세월이 지나, 이제 나는 떠나고 후임목사가 다음주일에 부임하게 되었다. 새벽마다 함께 하였던 기도모임을 기억하고, 매달 주의 은총을 되새기는 성만찬과 찬양대의 아름다운 성가곡과 찬양팀의 은혜로운 찬양들을 기억한다. 교우들과 세 번의 성지순례를 비롯한 선교지 여행도 잊을 수 없고, 대소사에 같이 하며 함께 웃었고, 더불어 눈물 흘렸던 것을 어찌 잊을까! 사랑하는 장로님들, 권사님들과 교우들을 천국 환송해 드렸다. 역대 교구장들과 대심방, 가정심방, 환자심방도 좋은 추억이고, 남녀선교회와 함께 했던 여행이나 전교인체육대회 행사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야외예배도 즐거웠고, 교회학교와 함께 했던 일들도 다 귀했다.
코로나 때 정말 심각했다. 주일예배를 성전에서 드리지 못하고 영상예배로 드려야 할 때의 그 참담함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에도 세상을 살리는 교회의 사명을 잊지않고 방역에 앞장서 노력했던 일은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임기 중에 가장 촉망 받았던 장로님 가운데 교회를 떠나는 분도 있었고, 다른 곳에서 이사나 다른 사정으로 우리교회로 와서 장로님으로 충성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담임목사 부부가 여선교회와 오해와 마찰이 있어 한때 여러가지 말과 감정표현들로 괴로워했던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교우들이 사고나 질병으로 돌아가실 때였다. 그중에서도 부목사 가족이 헤어지고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고야 말았을 때 우리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이제 떠나면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부딪쳐 복음과 믿음으로 이기고 나갔던 것은 정말 불행중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러분! 그때 힘들었지만 잘 하셨다,
우리교회는 연회에서 선정한 최우수 전도상을 받는 영예를 맛보았다. 그해 6월의 전도대회를 위해 준비하였던 전도작정주일, 가두전도대, 선교회별 거점전도주일! 드디어 전도대회를 열었을 때 당일 151명이 등록하여 교인이 되었고, 그해 우리교회는 200명 가까이 전도되어 등록하였다./ 2011년부터 교회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교회를 건축할 계획을 가지고 장로님들과 함께 몇 달을 삼척전역을 살피며 후보지를 물색하였으나, 잘 알아본 결과 마땅한 교회부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리모델링을 해야할까도 심각히 고려하였다. 그러나 기본 건물이 옛날식으로 지어져서 리모델링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씨름한 결과 담임목사는 교우들에게 이번에 교회건축이나 레모델링을 하지 않는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보이는 교회는 두 번의 수리로 잘 사용할 수 있게 하고, 다시 짓지는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는 교회, 영적인 교회를 바르게 크게 짓도록 하자고 하였다. 그 이후로 우리교회는 교회다운 교회, 모범되고 균형있는 참 교회가 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이번에 최장기시무 담임목사를 원로로 추대하고, 후임목사를 청빙하여 모시는 과정을 볼 때, 우리교회가 많이 성숙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지역사회를 위해 성장하고 성숙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러분과 교회를 떠나면서 몇가지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다. 먼저 바른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라는 부탁을 드린다. 보통 교회에서는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교회 나온 사람들을 무제약적으로 축복하신다고 용기를 주는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않았고, 구원과는 관계도 없이 사는데, 구원받은 자로 착각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철수라는 아버지를 둔 꼬마 소녀가 있었는데, 누가 이름을 물어보면 꼭 “전 김철수 씨의 딸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소녀의 엄마가 하루는 소녀에게 그건 잘못된 대답이라고 알려줬다. 어느 일요일에 소녀가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이 소녀를 보며 말했다. “너 김철수 씨의 딸이구나, 맞지?” 그러자 소녀는 말하기를,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우리 엄마가 아니래요.” 이런 경우와는 다르겠지만, 내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들인가? 무엇으로 시험하고 확증할 수 있을까?
우리가 너무 쉽게 구원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매우 위험한 착각이다. 입으로 시인만 해도 되고, 종교 활동에 참여만 하는 것으로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위험한 확신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원인이다. 비윤리적이고 반복음적인 생활을 버젓이 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고 ‘나는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신앙이라면 이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랑이 없는 편협한 인간관계를 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품기보다 할 수 있는 대로 남을 걸고 넘어져서 결국 자기만 옳다는 걸 나타내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많은 신앙인들이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경말씀대로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제일 잘 믿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비극적인 불행한 현실이다.
이제 여러분을 떠나면서 부탁드린다. 예수 잘 믿으시라! 여러분 속에 살아있는 생생한 관계로 예수를 모시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지 않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교회에서 그럴 듯하게 생활할 수 있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잘 믿는 것처럼 꾸밀 수도 있다. 신학대학 교수 한분이 감리교단의 영성 훈련에 참여하였다. 거기에서 모든 과정을 마친 이들에게 ‘예수’ 기념 브로치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그만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훈련 마치기 직전에 ‘예수’ 브로치를 다시 찾았다. 마지막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에 이 신학대학 교수는 자기가 잃어버렸던 ‘예수’ 브로치를 다시 찾아서 기뻤다고 하면서, 더 놀라운 사실은 잃어버렸던 예수님을 자기 마음 속에서 다시 만난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 없이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예수 잃어버렸으면서도 가장 잘 믿는 척 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별하면서 “안녕!”이라고 말하자는 말씀을 결론으로 드린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둘째(혹은 셋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고후13:11-12) 그리고 이어 나오는 말씀, 축도의 모형이 된 13절의 말씀으로 고린도후서는 끝난다.
여기 바울이 마지막으로 전한 이별의 인사는 세 가지다. 첫째는 기뻐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위로를 받아 평안하라는 말씀이며, 셋째는 입맞춤으로 문안하라는 것이다. 기뻐하라는 것은 ‘rejoice’ 함께 기쁨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함께여야 하고, 표현되어야 한다. 헤어지면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함께하실 것입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뻐하라! 또, 늘 그렇듯이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문안하되 깊은 마음을 나누는 입맞춤으로 문안하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했으니 말씀대로 순종해야 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입맞춥시다!” 이러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그렇게 하면 나는 요즘 유행하는 독감 걸려서 이사할 때 실려가야 할 것이다. 고대근동지역와 그리스지역은 문안인사가 가벼운 입맞춤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적용하면 무엇일까? 마음을 다하여 안녕! 하는 것이다.
‘안녕’은 아무 탈이 없음을 의미하는 한자어인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히 쓰는 인사말이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둘 다 사용하는 인사말이라는 점이다. 헤어질 때 ‘안녕’의 존댓말로는 "안녕히 계세요" 와 "안녕히 가세요"가 있다. "안녕히 계세요"는 말하는 본인이 어딘가로 갈 때 주로 쓰이고 "안녕히 가세요"는 상대방이 어딘가로 갈 때 주로 쓰이는 표현이다. 정확히 말해 만날 때는 안녕한지를 물어보는 것이고 헤어질 때는 안녕을 바라는 것으로, 반말로 쓸 때는 안녕의 뒷부분이 생략되는 것이다.
뜻 자체는 평안하게 지내는 것을 의미이므로 인사말로 쓰이는 것을 직해하면 실제로는 ‘안녕히 가세요/계세요.=(헤어지므로 다시 만날 때까지) 평안한 삶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안녕을 기원하다'라는 말도 있으며 고어로는 '강녕'과도 유의어다. 이 외에 슬픔이나 아쉬움의 뜻을 담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헤어질 때도 많이 쓰는 말이다 보니 이별의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안녕!‘이라고 말하는 것은 건강과 평안과 기쁨을 기원하는 말이요,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런 뜻도 있다.
우리 삼척은 오십천에 둘러싸여 있다.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한번 흐른 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흔적이 남는다! 하류로 내려가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 모든 돌은 둥글게 되고,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평안으로 돌아가리라! 우리의 시간도 인생도 그렇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한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고별설교의 결론은 ‘예수 잘 믿으라!’는 것이고 ‘기뻐하고 평안하라!’는 것이다. 그 말씀을 우리 식으로 풀어 여러분에게 전한다. “‘안녕!’이라고 말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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